이응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포토존에서 남들과 조금 다른 외모를 가진 그녀의 가족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생각했다. 어쩌면, 장애엄마인 나와 내 아이보다 남들과 다른 민족성과 외향을 가진 그녀와 그녀의 딸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기는 조금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고…

장애를 가지고 오랜 시간 이 땅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다름’에 대한 감각적 인지적 민감도는 과민할 정도로 높은 것에 비해, 그에 대한 수용도는 턱없이 낮다는 것을, 나 자신이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리라.

아직도 단일민족 프레임에 연연하는 한국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외모, 다른 민족성, 다른 언어는 이질감을 일으키는 대상이며, 심지어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이 되려고, 일을 하려고, 공부를 하려고, 또 다른 여러 이유로 이 땅에 살게 된 다양한 민족성을 가진 사람들을, 우리 사회는 ‘다문화’라는 다분히 폭력적인 또 다른 프레임에 가두고는, 그들의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키면서 한국사회에 ‘적응’하기보다는 한국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동화’되기만을 끊임없이 강요한다.

그들의 이마에 ‘다문화’라는 레이블을 딱딱 붙여 분류하고 구별해 놓고는, 한국인처럼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섞여 살라니…

이건 좀 어불성설 아닌가?

최근 미국에서는 자신의 뿌리 찾기가 유행이다 ⓒ중앙일보

요즘, 미국에서는 DNA 검사를 통한 자신의 뿌리 찾기가 유행이라고 한다.

이민자의 나라라고 불리며, 다양한 민족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잡탕밥이나 짬봉밥 처럼 한데 섞여 살면서, 갈등과 불협화음도 많지만, 그럼에도 제법 오묘하고 그럴듯한 매력을 발산하기도 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DNA검사는 입 안쪽을 면봉으로 문질러 밀봉하여 보내면 된다 ⓒ중앙일보 (심재우기자)

자신의 침을 면봉에 묻혀 밀봉하여 유전자 검사 회사로 보내고 한화로 약 10만원 정도의 비용만 지불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안에 자신의 유전학적 민족 배경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검사로, 자신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민족의 피가 흐른다는 걸 알고 놀라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것과 전혀 다른 자신의 유전학적 민족성에 당황하기도 한단다.

독일인과 히틀러를 증오한다던 사람의 몸에서 독일계의 피가 흐른다거나, 자신이 순수혈통 백인이라고 굳게 믿던 사람에게서 동아시아계의 유전학적 민족성이 발견된다든지… 뭐, 이런 식이다.

이 검사의 유행은, 미국사람들이 근거 없는 인종 편견을 버리고, 백인 우월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이 검사를 받아 보고 싶다.

혹시 누가 알겠는가?

한국인으로 살면서도 한국어보다 영어로 싸우는 것이 더 편하고, 많은 경우, 한국적 문화와 사고에 불편감을 느끼기도 하는 나라는 사람의 유전자 속에 한, 중, 일은 물론이려니와, 혹시, 저 멀리 네덜란드나 페르시아계의 피가 흐르고 있을지…

이런 관점에서, 우리 반의 그 엄마와 이응이 친구도 ‘다문화 엄마’, ‘다문화 친구’가 아닌, 그저 ‘필리핀계 한국인’이면 족하다고 본다.

잠자리에 누워 조곤조곤 들려주는 이응이의 말에 따르면, 친구의 외모도 외국인 같고 아이 엄마도 영어를 기본적으로 사용하니, 처음엔 몇몇 친구들이 ‘야, 너 영어 할 줄 알아?’라고 많이들 물었다고 한다.

물론, 아이들의 호기심은 나쁜 것이 아니다.

민족적 다양성이 그다지 높지 않았던 우리나라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있어, 우리와 외모가 조금 다른 아이는 당연히 낯설고 외국 사람 같이 느껴질 수 있고, 다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지 그저 궁금했을 뿐이리라.

마치, 장애로 인한 외모의 다름과 신기한 보조기기들에 대해 악의 없이 호기심을 담아 묻는 아이들의 순수한 질문이 나쁜 것이 아니듯이, 이 친구에게 영어 할 수 있냐고 묻는 것 역시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가 그것을 불편해 하거나 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 다양성과 다름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와 민감성은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침대맡에서 조곤조곤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응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이응아! 혹시, **이가 친구들이 그렇게 묻는 것을 불편해 하거든, 친구야 **이가 자꾸 물어보면 불편해 하니까 우리 그만 물어보자고 말해줄 수도 있어. 물론, 이응이가 하고 싶다면 말야.’

‘응, 엄마, 그런 일이 다시 생기면 한 번 해볼게.’

다름에 대한 열린 마음과 포용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 노력해보자,(여러 인종의 바비인형 모습). ⓒ은진슬

우리 아이들이 장애인이나 나와 민족적 배경이나 성적 지향성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갖느냐는, 부모나 교사 등의 친근한 어른들이 그들에 대해 어떤 말 어떤 태도를 보여 주느냐에 전적으로 좌우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 엄마 아빠들부터 세상의 다양한 ‘다름’에 대해 열린 마음과 포용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살아온 시간과 겪어 온 경험이라는 견고한 프레임을 통해 체득된 가치관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 다양성에 관련된 책을 읽고 영화를 감상하며, 토론하고 배우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랑하는 내 아이가 그 존재 자체로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드는 지름길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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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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