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이야기 나누는 은희 ⓒ최선영

"이게 아마 마지막 여행이겠지?."

"마지막은 무슨......"

마지막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은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은희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설렘이 계속 이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메모해 둔 준비물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봅니다. 무엇보다 아빠 약을 챙기는 것이 제일 중요했습니다. 밤이면 찾아오는 통증으로부터 지켜 줄 유일한 희망은 이 약이기 때문입니다.

"아빠 여행 가려면 컨디션 조절 잘 하셔야 해요."

혹시라도 여행을 못 가게 될까 봐 은희의 잔소리는 평소보다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그만 좀 하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면서도 아빠는 은희의 잔소리가 싫지 않았습니다. 아빠에게 은희는 삶의 전부였습니다. 그런 딸의 잔소리는 달콤한 노랫말처럼 아빠를 행복하게 하는 일상이었습니다.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고요.

15년 전, 은희의 열 번째 생일.

"엄마, 아빠는 언제 오세요?"

"곧 오실 거야. 조금만 기다려보자."

새벽 1시까지 아빠를 기다리던 은희는 울며 잠이 들었습니다. 아빠와 생일 케이크를 함께 먹고 싶었던 은희는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버렸습니다. 뒤늦게 들어온 아빠는 잠든 은희를 안아주며 미안해합니다.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보고 아빠 마음은 더 아픕니다.

아빠를 기다리다 잠든 은희 ⓒ최선영

새벽, 곤히 잠든 은희의 얼굴을 쓰다듬던 아빠는 두리번거리며 메모지를 찾아 짧은 글을 남깁니다.

"은희야, 여행 가고 싶다고 했지? 아빠 이번 일만 끝내면 함께 바다 보러 가자. 착한 공주 은희에게, 항상 미안한 아빠가."

잠에서 일어난 은희는 아빠의 짧은 편지에 하루 종일 방글거립니다.

"엄마, 아빠 일이 언제 끝날까요?"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 할 거야."

"알아요. 약속하면 늦게라도 아빠는 꼭 지키니까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아빠는 좀처럼 약속을 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기에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합니다. 그래서 은희는 아빠가 바다여행을 가겠다는 약속을 기다립니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아빠는 꼭 그 약속을 지킨다는 것을 알기에 기다리는 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어른스럽게 말합니다. 하지만 15년을 기다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빠의 약속은 회사가 부도를 맞으며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동업하던 아빠 친구는 회사 돈을 모두 들고 외국으로 가버렸습니다. 모든 책임은 아빠의 몫. 아빠는 돈을 잃은 것보다 고향 친구를 잃어버린 것이 더 충격이었고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을 현실에서 만나고 드라마와 달리 아빠는 오랫동안 회사를 다시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처음 몇 년은 많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모님 소리를 듣던 엄마는 가사도우미를 시작했고 회사 사장님이던 아빠는 제약회사 판매 직원이 되었습니다.

봄이면 장미향이 가득한 정원이 있는 은희의 집은 다른 사람이 주인이 되었고 은희 가족은 반지하로 이사를 했습니다. 햇살 가득한 맑은 공기와 만나던 아침은 더 이상 은희에게 없었습니다.

작은 창틈으로 겨우 새어들어오는 한 줄기 빛은 어두운 방을 밝혀주지 못했고 군데군데 생겨난 곰팡이의 습한 냄새는 은희의 호흡기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알레르기가 심해져 늘 감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여보, 은희가 이상해요. 낮에 감기약을 먹였는데도 열이 떨어지지가 않네요."

"해열제 한 번 더 먹여봅시다."

아파서 누워 있는 은희 ⓒ최선영

은희는 해열제를 먹고도 열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밤새 끙끙 앓던 은희를 업고 병원을 갔습니다. 열감기라며 병원은 해열 주사를 놓고 약을 처방했습니다.

은희는 다음날까지 고생을 하다 다시 다른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입원하고 치료받으며 은희의 열은 떨어졌지만, 소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한 번도 배신한 친구를 원망하지도 않았고 밑바닥 같은 현실을 비관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 역시 아빠의 그런 모습을 늘 말없이 지켜보며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용기를 건네주곤 했습니다. 은희는 단순 감기가 아니라 뇌수막염이었습니다.

후유증으로 청각 장애인이 되고 아빠는 처음으로 자신의 무능함을 탓했고 엄마도 아빠에게 쓴소리를 했습니다. 한쪽 귀는 그나마 보청기를 하면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아빠와 엄마를 위로해주었지만 그래도 아빠는 괴로웠습니다.

"아빠, 괜찮아요.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살아난 거라면서요."

은희는 아빠의 힘든 마음이 보였습니다. 그 어린 눈에 그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힘들지 않도록 더 씩씩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합니다.

"그래요, 당신 탓이 아니잖아요. 늘 당신의 삶을 존경했는데......,심한 말했던 거 미안해요. 진심 아니었어요."

엄마도 아빠의 마음을 토닥여줍니다.

아빠는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낮에는 약국으로 병원으로 열심히 약을 들고 다녔습니다.

엄마도 아빠와 함께 새벽에 일어나 우유를 집집마다 돌립니다. 힘들 만도 한데 운동하는 거라 생각한다며 씩씩하게 새벽마다 두 분은 잠든 은희 볼에 입을 맞추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예전처럼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은희의 건강을 위해 반 지하방을 면하고 싶은 게 당장의 목표였습니다. 5년의 성실함이 반 지하방을 벗어나게 해주었습니다.

내 집 마련의 길은 멀고 먼 이야기였지만 이사한 곳은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 따스한 보금자리였습니다. 마당을 한가운데 두고 세 가구의 현관이 타원을 그리며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넉넉한 마음으로 은희를 친손녀처럼 예뻐해 주시는 주인 할아버지 할머니가 은희는 참 좋았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현정이와 한 지붕 아래 산다는 것도 은희는 행복했습니다. 3년을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은희 대학 가면 아빠가 지키지 못한 바다여행을 떠나자며 여행적금을 들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꿈결처럼 희망으로 가득 채워진 시간이었습니다.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전까지.

봄꽃이 거리를 환하게 꾸며주고 있지만 새벽 공기는 아직 차게 느껴지는 4월. 엄마는 그날도 우유를 돌리기 위해 신문을 든 아빠와 집을 나섭니다.

집을 나서는 아빠와 엄마 ⓒ최선영

"오늘부터 전, 길 건너 주택부터 돌릴게요."

"왜? 여기부터 하고 같이 가지."

"우유 넣어달라는 집이 어제 열한 집이나 늘었어요. 그중에 한 집이 새벽 장사 나가기 전에 먹고 간다고 일찍 넣어달라고 해서요. 이제 저쪽부터 해야 해요."

"그럼 같이 가지."

"아니, 당신은 건너편에 구독자 없잖아요. 내가 저기 빨리 돌리고 오면 같이 다녀요."

"같이 하고 오면 되지."

"됐어요. 따로 하는 게 더 빨라요. 얼른 하고 당신 출근 준비해야 하잖아요."

그날 엄마는 왜 그렇게 혼자 가겠다고 고집을 했을까요..

어두운 주택가 골목길, 아무도 없을 이른 새벽시간. 그곳에서 만난 낯선 그림자에 놀란 엄마는 급히 도로 쪽으로 나오다 밤새 술을 마시고 흔들거리며 운전하던 차와 만났습니다. 음주운전자는 엄마를 남겨두고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 새벽은 은희에게서 엄마를 데려가버렸습니다.

엄마가 떠나고 아빠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탓을 자신에게 돌리며 엄마를 혼자 어두운 주택가로 보낸 그 날로 돌아가 후회하고 또 후회했습니다. 그 후회는 8년 전으로 돌아가 배신한 친구를 잡을 수도 있었는데 너무 쉽게 용서하고 보내버린 것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습니다.

여행의 꿈이 무기한으로 연기되었을 때도, 반 지하방으로 이사하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던 그날도, 귀가 들리지 않는 장애인이 되었을 때도 은희는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습니다.

여행은 언젠가 온 가족이 가면 되고, 조금만 참고 살다 보면 이사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보청기의 도움으로 아빠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장애인의 이름을 내 것으로 받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옆에 없다는 것은 참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살다 보면 해결되는 희망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악몽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은희도 아빠가 미웠습니다. 아빠 탓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은희는 자기 그릇을 제대로 챙길 줄 모르는 아빠의 사람 좋음이 싫어졌습니다.

엄마의 손길이 묻어있는 집, 엄마의 숨소리가 들리는 방에서 도저히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없어서 아빠와 은희는 계획에도 없던 이사를 합니다. 낯선 곳으로 가면 조금이나마 가슴에 묻고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이사를 했지만, 엄마와 함께 하지 않는 낯선 곳은 은희를 더 힘들게 했습니다. 낯선 느낌은 외로움이 되었고 가슴 한 곳이 뻥 뚫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빠도 그랬습니다. 어쩌면 은희보다 더 그랬습니다. 그럼에도 아빠는 은희를 보며 힘을 내야 했습니다. 은희처럼 마음껏 슬퍼할 수도 그리워만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 혼자 은희를 더 잘 키워내야 했으니까요. 그렇게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빠를 보며 은희도 힘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슬픔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고.

대학생이 된 은희와 아빠는 여행을 준비합니다. 여름방학 동안 바다만 보며 살자며 아빠와 은희는 한껏 들떠있습니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 은희가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서 발목에 깁스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행은 또 연기되었습니다.

"아빠 우린 여행은 가면 안 되나 봐."

"이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가면 더 좋겠지."

은희는 깁스를 풀고 2학년 새 학기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보냅니다. 고3보다 더 바쁜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은 과대표가 되면서 하는 일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은희는 하루 24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여행은 졸업 후로 미루었습니다. 아빠도 새로 시작한 일이 잘 되어서 당장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졸업을 앞둔 겨울. 아빠의 몸이 예전 같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요? 보약이라도 지어와야 하나?"

"보약은 무슨, 밥이 보약이지."

출근 준비를 하던 아빠가 쓰러진 것은 한 달 뒤였습니다.

"왜 이렇게 병을 키워서 왔어요."

의사선생님은 아빠를 나무라듯 말했습니다.

과로로 쓰러진 줄로만 알았던 아빠는 검사 도중 폐암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폐암 말기. 그흔한 기침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아빠는 폐암 말기였습니다. 아빠는 퇴원을 결정했습니다. 수술도 되지 않는다는데 항암치료하면서 남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낼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은희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마직막까지 무슨 희망이던 조금의 빛이 보이면 잡아보고 싶었습니다. 아빠와 은희의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한 번도 그렇게 고집을 보이 신적 없던 아빠는 이번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은희 역시 "아빠는 아빠의 인생이기 전에 내 아빠로서의 의무가 있잖아요."라며 살아야 하고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해보자고 했습니다.

결국 아빠는 은희의 말을 듣기로 했습니다. 항암치료를 하면서 은희는 어쩌면 아빠를 많이 힘들게 하는 선택을 했다는 생각에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항암치료는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든든하게 기댈 수 있던 아빠의 넓은 어깨는 안쓰러울 만큼 왜소해 보였습니다. 반찬이 없어도 밥 한 그릇을 뚝딱하시던 아빠는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입안이 다 헐어서 밥알 한 톨도 넘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빠 말씀대로 항암치료하지 말걸 그랬어요."

"아니야, 항암치료 안 하면 더 힘들다고 했잖아. 치료할 때만 그렇고 2주는 편하게 지내잖아."

"아빠. 여행 가자고 한 약속 꼭 지키세요."

"그래 지켜야지."

"지키시려면 빨리 나으셔야 해요."

아빠와 여행을 떠나는 은희 ⓒ최선영

6개월 후,

아빠와 은희는 손을 꼭 잡고 공항을 향합니다. 항암치료를 중단하고 아빠는 조금 기운을 차리셨지만 아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어쩌면 이대로 은희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여행을 떠납니다. 아빠가 힘든 줄 알지만 아빠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은희도 아빠 손을 잡고 여행을 갑니다.

"아빠, 15년을 기다린 거 아세요? 이번에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셨어요. 물론 제 탓도 있지만."

"미안하구나......"

"엥?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오히려 죄송해지는데. 그냥 오래 기다린 만큼 즐겁게 보내자는 의미로 말씀드린 거예요.^^ 아빠 잘못이 아니잖아요."

여행지는 바다가 예쁜 일본 오키나와. 아빠의 건강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은희는 가까운 곳을 가려고 했지만 아빠는 엄마와 신혼여행을 다녀온 오키나와로 가고 싶어 했습니다.

어쩌면 아빠의 마지막 소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은희는 병원을 찾아가서 여행 일정 동안 응급상황을 만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습니다.

"조금 무리하시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지금 환자분 상태가 어느 때보다 좋으신데, 아마 여행에 대한 의지가 버티는 힘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 길지 않은 여행이니 약 잘 챙겨주시고 잘 다녀오세요. 저도 저희 어머니 아프시다고 병원 침대에만 계시게 했었는데 떠나시고 많이 후회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니실 수 있을 때 많이 모시고 다니세요. 사실 의사로서 할 말은 아닌 거 아시죠?"

은희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아빠와의 여행을 즐기려 합니다. 아빠와 도착한 공항은 따스한 미소로 반겨주는 듯합니다.

비록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아빠도 은희도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오고 한 달 후 아빠는 그리운 엄마 곁으로 먼 여행을 떠나셨습니다.

조금 더 은희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랐지만 아빠는 엄마를 처음 만난 그 계절에 엄마를 다시 만나기 위해 은희를 홀로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던 아빠의 마음을 알기에 은희는 아빠를 보내드렸습니다.

준비 없는 이별을 남긴 엄마와 달리 아빠는 은희에게 시간을 주었습니다. 아빠와의 이별이 은희에게 절망이 되지 않도록, 그리움만 담은 눈물이 되지 않도록. 아빠는 떠나기 한 달전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남은 한 달을 보냈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며 하하 호호 웃어도 보고, 들고 온 기념품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마음은 그곳에 있는 아빠와 은희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하던 어느 날 은희 가족을 힘들게 했던 아빠 친구가 아빠 앞에 용서를 구하며 나타났습니다. 그때 경찰에 알렸다면 충분히 자기를 잡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냥 보내준 아빠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15년을 보냈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고 어떻게든 살려보고 싶어 미국으로 모시고 갔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머니 병원비를 대느라 빚도 많이 졌고 그 빚을 갚으려다 사채도 쓰는 바람에 그런 잘 못된 선택을 했다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빠는 그 친구의 손을 잡으며 내가 알던 내 친구가 맞아서 다행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이유였다면 회사를 팔아서라도 도와주었을 거라며 이제 잊어버리자고 했습니다. 은희는 딸처럼 시집도 보내고 할 테니 아무 염려 말라는 말에 아빠는 은희에 대한 남은 걱정을 내려놓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 걱정 없이 엄마 곁으로 간다고 설레하는 아빠를 보며 은희도 아빠와의 이별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이제 이별 없는 그곳에서 두 분이 행복하게 함께 하실 거라는 생각을 하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빠 친구는 은희를 딸처럼 보살펴주었습니다.

사랑하는 그와 여행을 떠나는 은희 ⓒ최선영

은희가 서른이 되고 아빠처럼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제 그 사람과 공항을 갑니다. 아빠가 엄마와 함께 했던 그곳으로 은희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갑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아빠와의 여행을 추억하며 또 다른 추억을 담으러 그곳으로 갑니다. 은희의 손을 꼭 잡았던 아빠의 따스한 느낌처럼 지금 사랑하는 그 사람도 은희의 손을 꼭 잡아줍니다.

두 사람을 반겨주는 그곳은 오늘도 아빠와 함께 했던 그날처럼 따스한 햇살이 가득 내립니다.

아빠를 추억하며 그와 함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난 은희는 그의 손을 잡고 환하게 미소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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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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