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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에 ‘혹’이 났어요.

‘국민의 삶은 국가의 책임’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4-20 13:48:36
“옴마아~~ 이규재 손가락에 혹이 났어요오~~~
피부과 시러여! 주사 시러여!
이거슨, 혹이 났네~~ 혹이야, 혹!”

거실에서 들려오는 규재의 호들갑에 깜짝 놀랐습니다.
키 180센티미터, 몸무게 82킬로그램의 스무 살 청년의 다급한 ‘혹’ 외침에 뛰어가, 귀한 외동아들의 손가락을 붙들고 덩달아 호들갑을 떨며 ‘혹’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어디? 어디? 혹이라니!!! 어디, 어디...’

규재의 오른손 중지의 첫 번째 마디에 뽈록하게 딱딱한 굳은살이 보였습니다. 연필을 쥐는 그 자리에 꽤 두꺼운 굳은살이 생겼습니다.

‘아~ 규재야! 이건 혹이 아니라 굳은살이라는 거야. 연필을 쥐고 글씨를 많이 쓰면 이 부분만 힘에 눌려 살이 두꺼워져서 굳은살이 생기는 거야. 이건 피부과에 안가도 되고, 주사도 맞을 필요 없으니 걱정 하지 마.’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규재는 연필 시러해여~ 연필이 옵네여어~ 연필 없습니다아~”를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쿠! 상황 설명을 단어 하나하나의 뜻 그대로 이해하는 규재 특성상, 본인이 납득 못하는 단어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해결하고 싶은 강박이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규재는 글씨를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도 연필을 쓰지 않습니다. 항상 볼펜으로, 그것도 파란색 볼펜만 고집하여 글씨를 쓰거나 밑그림 스케치를 합니다.

지우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못 그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행여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림이 그려졌을 경우에는 종이를 교환할망정 지우개로 지우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 규재만의 룰이 있습니다. (규재가 연필을 안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닿으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렇게 ‘파란색 볼펜’이 일상생활인 규재에게 굳은살에 대한 설명을 ‘연필을 쥐고...’ 라고 했으니, 단어를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뇌변연계 시냅스가 수초화 되어있지 않은 규재에겐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자기가 싫어하고 쓰지도 않는 연필을 쥐어서 생긴 굳은살이라니!
규재의 ‘무한도돌이표 반복떠버리’ 증세는 엄마가 연필이라는 단어를 파란색 볼펜으로 고쳐서 다시 설명하고 나서야 멈췄습니다.

‘네가 그림 그릴 때나 물감 칠할 때, 파란색 볼펜이나 마카 작업이나 붓, 나이프를 꽉! 세게 쥐고 그림을 그리니까 여기에 살이 눌려서 각질이라는 살갗이 두꺼워 진거야.’

악력 조절이 잘 안 되는 규재의 그림 습관 때문인지 아니면 그림 그리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단한 굳은살로 휘어져 보이는 중지를 쳐다보고 있으니 야릇한 감동 같은 것이 전해져 왔습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울퉁불퉁 발가락 사진에서 느껴지는 인내와 노력의 시간을 짐작케 하는 숭고한 아름다움과 규재의 굳은살이 겹쳐져 연상되는 것은 어미의 over sense(오버 센스) 일까요?

규재의 손가락에 생긴 굳은살을 보는 순간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들이 즐거움만은 아닐 것이라는...
그림을 그리다보면 나름 어설프지만 완성도를 위한 피곤함도 있을 것이라는...
그림을 그려야만 강박에서 편해질 수 있는, 스스로의 톱니바퀴를 멈출 수 없는 고단함이 있을 것이라는...
장애가 있다고 창작에 대한 열정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폐성장애라고 해서 능력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비장애인들보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더 강할 수 있다는 진실이 마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이규재의 굳은살 손가락. ⓒ김은정 에이블포토로 보기 이규재의 굳은살 손가락. ⓒ김은정
요즘 규재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보고 있으면 고민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장애예술인의 82%이상이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장애예술인 약 1만 명 중 97%가 예술 활동에 대한 수입이 없다는 현실을 보면, 이 그림이라는 예술을 규재의 삶이자 생활로 이어지게 해서는 안 될 듯한, 부모로서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더욱이 규재가 가지고 있는 자폐성장애를 고려한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금처럼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규재의 미래 시간들을 위한 다른 지원 사업으로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
성인기에 막 들어 선 규재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요즘 머리가 무겁습니다.

며칠 전,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방귀희 회장님의 인터뷰를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방귀희 회장님은 장애예술인들이 마음껏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장애예술인 공공쿼터제도’ 와 ‘장애예술인 후원고용제도’가 골자인 ‘장애예술인 지원법률’ 제정을 위해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기사를 읽으며, 가까운 미래에 규재가 물감비와 캔버스 값 정도는 스스로 조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갖추어질 수 있을까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해 보기도 했습니다.

예전과 비교해 보면 분명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현재 ‘지원’ 위주의 정책이 ‘직접 참여’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정부는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허울뿐인 커뮤니티케어를 앞세운 궤변일 뿐... 자폐성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는 현시점의 복지 정책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지금도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 촉구를 위한 전국장애인부모연대의 릴레이 집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되어가지만 정부의 이행 의지박약과 예산 부족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실행 불가능한 유명무실한 껍데기 법조항으로 전락하기 일보직전인 위태로움을 알리고, 또한 발달장애인들이 열린 지역사회 속에서 자신이 설계,선택한 개별자립생활을 지원받으며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길 원한다고 외치는 부모들의 절규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발달장애에 대한 지원은 국가의 책임이다’라는 명제가 정당한 권리가 되어 돌아오길 바라며, ‘지원’의 복지이든 ‘참여’의 복지이든 사회보장제도의 본질은 ‘국민의 삶은 국가의 책임’에 있음을 강하게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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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은정 (bokttin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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