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로 개를 개싫어했었다. 어릴 적 겪은 사건 때문이다. 큰아버지 댁이 2층짜리 주택이었는데, 마당에선 큰 개를 키우고 있었다. 볕 좋은 봄날로 기억한다.

마당과 통하는 큰 문을 열자 개가 집으로 침입했다. 사촌 형들은 바로 2층으로 도망쳤지만, 걷지 못한 내게 대피처는 두려움뿐이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지만, 개에 대한 공포감을 얻기엔 충분했다.

각인된 공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꼿꼿이 살아남았다. 심증에 대한 물증도 속속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몇 달 전 뉴스의 중심이었던 개는 이웃을 물어 죽이고, 지나가는 사람을 공격해 부상을 입힌 주체였다.

신체의 자유로 말미암아 위협에 대한 즉각적 대처가 가능한 비장애인들에게도 이럴진대 상대적으로 도피의 자유가 구속된 장애인들에겐 오죽하랴.

그럼에도 부인할 수 없는 건 오늘날 우리가 개민(犬民)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20%인 약 1000만 명이 애완동물을 키우고, 그중 비중이 가장 큰 게 개다.

그러니 개 복지도 이제 국회에서 챙길만한 사안이 됐다. 안 그러면 개를 키우는 유권자들의 표를 잡을 수 없다. 그러니 이제 투표를 개표함에 있어 중요한 건 개 표다.

한데 지금까지 우리는 개를 쌍욕 대하듯 대했다. 새끼 중에 가장 못된 새끼가 개자식이었고, 누군가에 빌붙어 사는 사람을 일컬어 그가 충성하는 집단이나 사람의 개라고 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해당 집단 혹은 상사들을 살리는 건 결국 거기에 종속된 개의 몫이다. 주인을 대신해 집을 지키는 것도 개의 영역이었다는 것은 장구한 역사가 증명한다.

삼포로 가는 길을 지나 오포를 넘어 완포(완전 포기)로 가는 청년들의 옆을 지켜주는 것도 요즘은 개가 한다. 더불어 워치 독이라고 하는 언론은 정말 개처럼 일해서 사회를 떠받치고 있고, 마약부터 시작해 범죄자들을 솎아내는 것도 개의 도움을 받는다.

만약 개가 없다면 세상은 개판 5분 전이 되리라 싶을 정도로 개만큼 인간에게 이로운 동물도 없다. 그래서 어찌 보면 개판이 살판이요, 개 팔자가 펴야 우리도 상팔자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개의 이로움을 직접 느낀 계기는 시각장애를 가진 후배와 함께 다니는 안내견과의 만남이었다.

상대적으로 몸집이 컸지만, 위협감은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순했다. 늘 후배의 눈이 되어 주었고, 가장 친한 친구로 옆에 있었다. 후배의 SNS도 안내견과 함께 한 사진으로 가득했다. 가족처럼 화목해 보였다.

덕분에 편견으로 인한 부끄러움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후배를 포함한 지인들과 찾은 카페에서다. 주인은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했다. 이해했다. 평소 카페에 개를 데려온 이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 경험 때문이다.

잠시 밖에 두는 것이 무슨 죄라도 되나 싶었는데, 함께 온 지인은 완강히 후배의 편을 들었다. 그리고 결국 안내견과 함께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건 내게 “휠체어에서 내려서 들어오라”는 것과 같은 요구였다. 장애인에게 보장구는 신체의 확장이 아니던가! 더구나 안내견은 무생물과 달리 감정을 가진 하나의 주체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훈련받은 생명체인데 말이다. 이러한 사고의 흐름은 카페 주인의 요구가 부당한 것임을 깨닫게 했다.

그 후배와 담소를 나누던 중 최근 한 국회의원이 한 “미친개” 발언이 주제에 올랐다. 그는 “개와 가족처럼 지내는 입장에서 내 가족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불쾌함을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예전에 읽었던 어느 인권강사의 글이 떠올랐다. 그가 강연에 갔는데, 한 정신장애인이 그러더란다. “소위 미친 사람으로 불리는 저로서는 ‘미쳤다’란 표현이 불쾌하다”고 말이다.

그날 한 신문에 실린 ‘국회가 미쳤다’란 제목의 사설을 보고서다. 평소 상투적으로 쓰던 단어가 누군가에겐 큰 상처임을 또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니 “미친개” 논평이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번 사건이 개에 대한 관념과 ‘미쳤다’는 단어의 감수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미친개에게 몽둥이’라는 문구는 결코 약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발상 그 자체가 악(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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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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