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면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과외이다.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얻게 되는 책임감의 무게가 특별하게 여겨졌고 그래서 한때 특수교육과를 지망하기도 했었다.

친구들이 과외 학생 어머니와 입씨름을 벌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건 아니지만 과외는 여전히 낭만적인 용돈 벌이라 생각됐다.

숙명점역봉사단을 하면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 소속된 설리번학습지원센터를 알게 되었다. 그 인연으로 이번 학기 일대일 학습도우미 모집에 지원하게 되었고 어제(29일) 대망의 첫 수업을 마쳤다.

중학교 2학년 학생 국어 멘토링이었는데 내가 교사용 지도서로 설명을 해주면 학생은 본인의 점자교과서로 읽으며 수업하는 방식이었다. 집안 막내라 주변에 동생이 없었던 나는 중학생과의 소통이 마냥 행복했다.

한빛맹학교 지리를 잘 모르는 나를 마치 종달새처럼 이끄는 이 소녀는 수업 내내 참 맑았다. 어제는 교과서 첫 단원에서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을 복습했는데 학생이 시를 읽어나가는 목소리가 청아하고 좋았다.

사실 점역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페이지 입력과 소제목 입력을 자주 잊어버리곤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급하게 타이핑을 한 탓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지도 선생님들께 꾸중을 들었다.

어제 내 입으로 교과서 24페이지 펴라는 말을 꺼내고, 학생이 작은 손으로 만져 내려가는 그 수많은 점자를 보고 나서야 절감했다.

내가 생각 없이 입력하던 그 글자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 깨달았다. 앞으로 점역을 할 땐 이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임할 것이다.

<나룻배와 행인>을 마치고 안도현의 시 <살구꽃 지는 날>도 함께 복습했는데 점점 잊는 게 늘어가는 할머니의 모습을 살구나무에 빗대어 표현한 시였다.

학생은 수업시간에 치매에 대해 배운 내용을 말하며 “선생님, 치매에 걸리면 얼굴도 못 알아보고 예전에 살았던 집으로 가려고 한 대요!”하고 신기해했다.

그래서 나는 같이 사는 우리 외할머니도 치매라고 말해줬다. 눈이 동그래지며 “진짜 치매에 걸리면 그래요?”라고 묻는 천진난만함에 나는 웃으며 가끔 잊으시긴 하지만 모든 증상이 다 똑같이 그런 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우리 할머니는 드셨던 걸 잊고 또 드시려 하거나 엄마가 밥을 차려드렸는데도 안 차려줬다고 말씀하신다 했다.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시공주니어에서 나온 청소년 소설 이옥수의 <똥 싼 할머니>를 읽고 엄마한테 우리 할머니도 이러면 어떡하냐고 두려워했던 게 생각났다.

엄마는 “그러시지 않도록 기도하고 잘 보살펴드려야지”라고 대답했다. 시간이 흘렀고 변한 게 많지만, 여전히 그 마음은 똑같다.

어떻게 하면 나에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다음 시간까지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 학생을 만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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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준 칼럼리스트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학생이다. 숙명점역봉사단원, 평창동계패럴림픽 자원봉사자이며 시청자미디어재단에서 폐쇄자막방송모니터링단으로 활동했다. 대학생의 시각으로 장애인 이슈를 전하고 청년들의 장애인 운동과 봉사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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