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들이 유튜브로 망명하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노스베이에서 진행 중인 여자 컬링 세계선수권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컬링 난민’이라고 소개한다. 외국 팀들의 경기를 중계하는 방송의 채팅창마저 한국어로 도배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사정은 이렇다. 대회 주최 측은 자체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동시간에 4경기가 열리는데, 이 중 한 경기 내지 두 경기를 송출한다. 한데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의 경기들에 비해 ‘팀 킴’의 일전(一戰)들은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

난민들은 차선으로 타국의 경기 화면을 틀어놓고 간간이 나오는 우리 팀의 활약상이 담긴 화면을 보며 위안을 달랜다. 더불어 주최 측이 홈페이지에 띄우는 문자중계 상황을 공유한다. 컬링을 보려는 처절한 노력이다.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건 한국의 경기를 편성하지 않은 주최 측 때문이 아니다. 평창이라고 쓰고 컬링이라고 읽어도 될 만큼 이번 올림픽과 페럴림픽의 키워드는 ‘컬링’이었다. 거의 전 국민에게 ‘영미’는 철수나 영희만큼이나 친근한 이름이 됐다.

빗자루로 진공청소기의 앞길을 진공으로 만드는가 하면 청소 안하는 남편에게 ‘영미’를 외치는 집도 있단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고, 그 모양새로 말미암아 곧 새 컬링장이라도 뚝딱 지어질 것 같았다. 하나 현실은 달랐다. 올림픽과 동시에 컬링에 대한 언론의 관심도 끝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한 케이블 스포츠 방송사의 발 빠른 대응으로 우리 팀의 예선 두 경기를 안방에서 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다. 넋 놓고 있던 방송사가 중계권을 사게 된 계기는 유튜브로 망명할 만큼 컬링에 관심을 갖게 된 팬들의 힘 덕분이다.

만약 평창의 성화와 함께 팬들의 가슴에서 활활 타오르던 컬링에 대한 열정도 사그라들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 은유적으로 ‘펜’이라 불리는 언론을 좌지우지하는 힘의 원천은 결국 ‘팬’들의 관심이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순간이었다.

‘펜’은 곧은 심지를 일필휘지(一筆揮之)할 권력을 지녔다. 미국의 연방대법관이었던 스튜어트 포터는 언론을 입법∙행정∙사법부에 이은 ‘제4부 권력’으로 명명(命名)했다.

언론인의 말이나 글이 많은 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한 사람의 인생까지 좌지우지 할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언론인에겐 사회의 어떤 부분을 조망할 것인가를 선택할 특권과 함께 그에 대한 책임도 수반된다. 그들이 쥔 펜의 심지가 곧아야 하는 연유다.

넘쳐나는 정보를 전달할 각종 스마트 기기들의 발전과 보급은 기존 언론의 한계를 해체했다. 누군가를 살리거나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이젠 일반 시민들도 누리게 됐다는 의미다. 방송사들의 홀대에도 페럴림픽의 일부 경기를 내 손 안에서 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평창에 간 지인들이 소셜미디어(SNS)의 방송기능을 활용해 실시간 영상들을 공유하지 않았더라면, 왕의 간택을 받으려 노심초사하는 궁녀들 마냥 기존 언론들이 방송해주길 기다려야 했을 테다.

하나 여전히 개인보다 기존 언론의 힘이 더 세다는 현실이 변하진 않았다. 쇠귀라는 걸 알면서도 그 옆에서 경을 읽던 이를 감히 무식하다고 비판만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감사히도 세기의 나이테는 장애인들과 함께 사는 것이 올바른 상식임을 사람들의 사고체계의 범주 안에 넣었다. 덕분에 아이스하키나 컬링 등 페럴림픽의 일부 종목들은 지상파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선수들이 선사한 메달들의 감동은 보너스 그 자체였다.

집단지성의 상식은 장애인들이 즐기는 스포츠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쯤 되니 권력의 장기인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 든다.

세계선수권처럼 전 세계가 주목하는 대회가 있는 일반 컬링에 비해 마땅한 대회도 보이지 않는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의 불씨는 꺼지기 일보직전이다.

그럼으로 이제 다시 언론에 기대할 수밖에 없다. 평창이 붙이고, 팬들이 봉송한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관심의 성화를 살려 더 큰 불빛으로 타오르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결국 펜(언론)뿐이다.

펜에겐 장애인 스포츠와 그 팬들을 팽(烹)시키지 않아야 할 공적 의무가 있다. 이는 펜의 심지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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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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