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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의 투병일기-③ 4년간 반복된 입·퇴원

퇴원 후에도 심한 통증에 고통스러워 울기만

서연이 오빠 함께 살지 못해 정서적으로 불안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3-23 11:34:40
뇌염 발병 후 1년만에 이불에 기대어 앉게 된 서연이(https://blog.naver.com/ja8810). ⓒ김현정 에이블포토로 보기 뇌염 발병 후 1년만에 이불에 기대어 앉게 된 서연이(https://blog.naver.com/ja8810). ⓒ김현정
나는 극한 스트레스로 인하여 몇 번이나 머리에서 띠--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서연이는 간뇌의 부상으로 하루 종일 호흡이 불안정했으며, 대장마비로 인해 엑스레이검사 후 자주 관장을 하였다.

서연이의 면역은 약해질 때로 약해져 폐렴과 장염으로 자주 고열이 발생하여 열을 내리기 위해 온종일 물수건으로 서연이의 몸을 닦아야 했다.

서연이는 대장마비로 인한 잦은 설사로 기저귀를 찬 살갗이 여러 번 허물을 벗어져 헐고 피가 맺였다.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니 증세가 날로 심해져 하는 수 없이 천기저귀만을 사용하였다.

밤이 되면 하루 종일 사용한 설사 묻은 천기저귀가 대야에 수북했는데 대변이 묻어 공동세탁기에 넣을 수 없으니 새벽잠을 세워 손으로 빨아야 했다.

낮에 묻은 설사가 모두 말라붙어 뜨거운 물에 불려서 여러 번의 비누칠로 문질러야 했다. 나는 손끝이 갈라지고 손가락 마디에서 피가 나는 날이 빈번했고, 습진이 심해져 팔까지 번져 고무장갑을 낀 듯 피부가 망가져 있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기능이 소실되어 쉴새 없이 떨어지는 콧물과 코피 피부병으로 힘든 날이 계속되어 갔다.

설사가 묻은 천기저기를 공동목욕실에서 소리 나지 않게 물을 작게 틀어 다 빨고 나면, 건물 두 개를 지나 공동세탁소에 가서 탈수를 하고 말리는데 1시간이 걸렸다. 모든 일이 끝나면 새벽 4시 가량 되어 잠을 청했었다.

세브란스병원은 오전 회진을 할 때 주치의사 선생님과 레지던트 쌤들이 적게는 3명에서 많게는 20명 가까운 인원이 회진을 할 때도 있다.

나는 극한 수면부족으로 인해 눈을 뜨고 의사선생님과 서연이에 증상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으나 내용을 전혀 기억을 못할 때도 많았다. 너무 졸려서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해가 떨어지면 서연이의 고열과 통증이 더욱 심해져 전쟁을 치루고, 새벽녘이 되어 서연이가 잠이 들면 나는 책을 펼쳤다. 병원침대 머리맡의 형광등을 벼갯커버로 여러번 감싸고 불을 켜면 아주 약한 불빛이 되어 옆침대에 불빛이 세어 나기지 않았다.

침대 위는 서연이의 몸을 둘러싼 링거 줄들이 늘비하여 서연이 머리위에 내 몸을 웅크려 간신히 쪼그리고 앉을 정도의 공간만이 남는다. 나는 그곳에서 장애를 극복한 위인들의 책과 고난을 극복한 사람들의 책을 매일 읽고 또 읽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다 피폐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현실이었지만, 이 절망의 늪에서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서연이에게 쉬지 않고 해야 하는 배맛사지 ……. 배앓이로 인해 그 당시부터 2012년도까지 했으니 꼬박 6년을 해 온 셈이다.

배를 얼마나 쓸어내리고 만지기를 반복했는지 이렇게 하루 종일 이렇게 세게 배를 쓸어내리면 피부가 손상이 될 것 같아 염려가 될 정도였다. 그 당시 찜질과 마사지를 얼마나 했는지 내손의 지문이 지금도 희미해졌다.

서연이는 대장이 움직이지 않아 장내에 가스가 고무풍선처럼 가득하여 6년 동안 통증이 지속되었다. 나중에는 밤사이 항문에 실리콘으로 된 50cm 길이의 호수를 넣어 두기도 했었다. 혹시나 가스가 나갈까 하는 심정에.

그러나 나중에는 호수가 지나간 자리가 쓸려서 피가 나고 관략근이 완전히 열려 항문 속 피부가 빨갛게 힘없이 풀어져 속살이 드러나 보일 정도로 심각해졌었다.

서연이는 장이 좋지 않으니 항상 배가 가스로 가득했고 섭식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6개월간 콧줄로 섭취하고 이후 2개월은 링거액으로 영양을 공급해 왔는데 더 이상 링거를 맞을 혈관이 없다고 하시며 배로 섭식하도록 버튼을 다는 수술의 권유를 받게 되었다.

나는 그 당시 의료상식이 없었지만 배로 섭취하면 서연이가 발달하면서 다른 2차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선뜻 하겠다고 대답을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레지던트 선생님들이 여러 번 나를 설득하러 오셔서는 나중에는 화까지 내시며 엄마가 이렇게 고집부리면 서연이가 위험해진다고 야단도 많이 치셨다.

서연이의 상태는 콧줄이 불가능하여 링거로 영양분을 공급하였는데 고열이 자주 발생하니 혈관이 숨어서 더 이상 맞을 혈관이 없을 만큼 상황은 극박해져 갔다.

겨우 링거를 맞으면 아침쯤에는 환자복이 벗겨지지 않을 정도로 팔이 부워 있었다. 그럼 다른 팔에 다시 링거를 잡아야 하는데 때로는 정맥팀(혈관에 주사를 놓는 일만 담당하는 특수부서)도 서연이 혈관을 찾지 못하여 30분이 넘게 걸리기도 하였다.

서연이는 혈관이 다 쓰고 맞을 때가 없어서 나중에는 두 팔 두 다리가(모두 링거가 막혀서) 2배 이상 부어올라 마치 아기 코끼리와 같았다. 눈은 보이지 않아 풀려 있고 목은 힘없이 덜렁거리고 두 팔 두 다리는 부어서 환자복이 잘 벗겨지지 않았다.

나는 두 팔과 두 다리가 부어오른 서연이를 붙잡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런 방법은 없었다.

서연이는 더 이상 링거를 맞을 수 없었으며 삼킴이 어려운 상황이라 배에 버튼을 달아 배로 섭식을 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었는데 결국 나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이틀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었다.

내가 결정한 것은 주사기로 우유 먹이기였다.

나는 삼킴이 안 되는 서연이에게 주사기로 한 방울씩 분유를 먹이며 침과 함께 삼켜지도록 하면서 차차 양을 늘려나갔다. 정말 온종일 먹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주사기로 우유먹이고 주무르고 열 내리고 …….이렇게 지내다 보니 적은 양이지만 우유먹이기가 가능해졌다.

나는 시간마다 우유먹인 량을 종이에 기록하여 회진 때마다 보여 드렸다. 결국 서연이는 배에 버튼을 달지 않아도 되었다. 나의 노력이 성공한 것이다.

세브란스에서 일 년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일산병원에 다시 입원했었다. 물론 서연이의 열과의 싸움은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서연이는 열로 인해 일 년 동안 옷을 입지 않고 발가벗고 산 날이 더 많았던 거 같다. 온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으로 닦고 또 닦고…….서연이는 많이 힘들어 울었었다.

대학병원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퇴원을 해야 하는 것이 규칙인데 나는 의사선생님께서 퇴원하라고 말씀하실까 싶어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힘들었었다. 서연이는 자주 열이 나고 응급한데 갈 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른 보호자들의 항의가 다음으로 날 힘들게 했다. 서연이의 울음소리는 아마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할 만큼…….참기 힘든 상황이니 난 항상 눈치를 보며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거의 복도에서 지냈다.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일 년이 훨씬 지나서였는데 퇴원한지 보름도 안 되어 고열로 인해 응급차타고 다시 세브란스 응급실로 입원하여 한 달간 입원하고, 다시 퇴원하면 고열로 응급차타고 재입원…….이렇게 4년간 생활하였고, 이후 차차 병원입원이 줄어들어 2012년부터는 일년 중 절반은 병원에서 살고 절반은 가정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서연이는 재활치료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서연이 오빠는 4살이 될 때까지 나와 함께 살지 못하였다. 서연이 오빠도 정서적으로 매우 산만했으며 불안정한 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얼굴과 몸이 바짝 마르고 머리숱도 없이 떼쓰기만 늘고 밥도 잘 먹지 먹었다.

서연이 오빠 역시 잦은 감기와 폐렴으로 입원하는 일이 많았다. 서연이 간호 때문에 나(엄마)와 살 수 없으니 정서적인 문제, 또래관계, 영양상태, 식습관, 학습 등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지만 어디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무척 괴로웠다.

서연이 오빠가 초등 1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부터 상황은 더욱 좋지 않았다. 이후 나는 서연이, 서연이 오빠 둘을 데리고 병원생활을 지속해 나갔으니 서연이 오빠의 고생도 말이 아니었다.

퇴원 후에도 서연이는 통증으로 인해 죽을 만큼 고통스럽게 울어댔었다. 서연이는 퇴원 후 3년간은 해가 지기 시작한 시간부터 거의 새벽 3-4시까지 울었으니 가족들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밤새 서연이를 업고 동네를 걸어 다녔다.

한 겨울에도 서연이를 업고 얇은 이불로 온몸을 김밥처럼 둘둘 말고 바깥바람을 쏘이며 걸으면 서연이는 울음을 멈추고 내 등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친정 부모님은 내가 쓰러질까 많은 염려를 하셨으며 결국 서연이가 4살 된 해에 우리 가족은 친정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서연이가 나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위해 유명하다는 많은 병원과 의사선생님들을 만났었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희망적인 말을 없었다. 당연한 결과처럼 모두가 무응답이었다.

다음 편부터는 서연이가 기적적으로 호전되는 투병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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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김현정 (ja88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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