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몇몇 온라인 자폐증 옹호 단체나 부모 단체들의 소식들을 몇년전부터 열심히 팔로우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큰 자폐증 권익 옹호 단체가 오티즘 스픽(Autism Speaks)이란 곳인데, 한글로 번역하자면 자폐증이 말한다, 의역하면 자폐증을 가진 이들의 목소리 정도가 될듯하다.

자폐증에 대한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다양한 펀드레이징을 기획하여 모인 기금으로 다른 자폐증 단체나 개인에게 수여하기도 하고, 다른 의료 기관들과 자폐증의 원인을 밝히는 게놈 프로젝트 등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곳이다.

작년 중순부터인가 오티즘 스픽에 뜬금없이 한 드라마가 적극 홍보되기 시작하였다.

굿닥터, 한국 드라마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것이 한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한 작품인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오티즘 스픽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굿닥터는 급기야 하와이 자폐증 부모 커뮤니티에서도 언급되기 시작하였고 자폐증을 가진 의사가 주인공이라는 설정에 부모 커뮤니티에서 본방 사수를 다짐하는 글들이 올라오곤 하였다.

그리고 첫 방송이 시작되는 주 즈음에, 오티즘 스픽의 공식 홈페이지에 주인공 션 머피의 역을 맡은 배우가 자폐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인식 증진을 부탁하는 인터뷰가 메인으로 올라왔다. 이 정도면 드라마 홍보를 자폐증 단체들이 아예 발 벗고 해준다고 할 수 있었다.

첫 방송이 끝나고 게시판에는 ‘보는 내내 울었다’, ‘마음이 아팠다’, ‘션의 활약이 기대된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줄을 이었고, 오티즘 스픽 뉴스에도 여러 칼럼을 통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성공적으로 첫 방송이 나가고, 하와이 자폐증 부모 단체에서 굿닥터 토론 모임을 개최한다는 이메일이 왔다.

방송을 보고 자폐증이 어떻게 설명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토론은 물론 앞으로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었으면 하는 자폐인들의 이야기를 함께 토론해보고 다른 주의 자폐증 부모 단체들과 의견을 함께 모아서 방송사에 보내자는 취지의 토론회였다.

‘뭘 드라마 하나에 이렇게까지나...’가 솔직한 나의 첫 번째 반응이었지만, 내가 겪은 미국 사회를 돌이켜본다면 ‘이제 우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하나가 나왔으니 적극 참여해서 이걸 인식 증진의 기회로 삼자’가 아마 이곳 부모들의 대부분의 반응이었으리라…

부모들의 열띤 지지와 참여, 피드백을 반영하기라도 한 듯이 결국 굿닥터 7회에는 실제 자폐증을 가진 배우가 출연하였다.

특히 그 회에는 주인공 션이 자신의 자폐증을 그 아이를 통해 새롭게 바라보는 내용으로 이곳 부모들 사이에서는 또다시 열렬한 호응을 얻은 에피소드로 손꼽혔다.

자폐증을 가진 소년이 배우의 꿈을 꾸고 한 회를 이끌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합격 도장을 받은 셈이다.

그 이후로도 주인공 션 머피 역할을 맡은 배우는 오티즘 스픽의 연말 펀드레이징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자폐인 인식 증진과 권익 옹호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서로의 역할을 이용한 사회적 윈윈 작용이 무엇이지 잘 보여주는 예이다.

내가 지난 십여 년간 겪은 미국은 이런 사회였다. 미국의 어떤 코미디언이 개그쇼에서 미국인들의 특징을 불편을 조금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꼭 얘기하는 사람들이라고 우스갯 소리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특히 그는 자신의 쇼에서 조금이라도 민감한 주제, 예를 들어 인종의 이야기가 주제로 나온 날이면 꼭 쇼가 끝나고 할말이 있다고 오늘 이런 이런 점이 매우 불편했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해 농담을 했었다.

한 가지 일을 추진할 때도 모든 다양성을 고려해야 하고 이것저것 따지고 묻고 가야 하는 모습이 미국의 발전을 이따금 더디게도 하지만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함께 가기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서 뼈저리게 깨닫곤 한다.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일에는 어떤 기회라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여 약자들의 인권의 옹호의 기회로 극대화 한다는 점도 미국식 참여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다.

평창패럴림픽이 끝났다. 비장애인 올림픽에서 4위를 차지한 미국은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무려 36개를 거머쥐며 독보적인 종합 성적 1위를 거두었다.

올림픽을 독점으로 중계하는 미국 지상파 방송국은 94시간의 텔레비전 생중계 시간을 포함 녹화 방송, 인터넷 중계 등을 이용하여 총 250시간을 할당하여 미국 선수들이 참여하는 모든 경기를 시청자들이 볼 수 있게 편성해 놓았다.

게임에 앞서서 참가하는 선수들의 휴먼 스토리를 소개하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다. 이번 패럴림픽의 편성은 비장애인 동계 올림픽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편성 시간이고 지난 소치 올림픽의 두 배에 가까운 편성이라고 한다.

다양한 장애를 가진 이들이 볼 수 있도록 자막 방송은 물론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화면 설명 서비스도 제공되었다.

방송사의 편성 시간 확대가 패럴림픽 자체에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런 미디어의 적극 지원을 통해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고 아울러 참가하는 선수들의 사기를 높이는 윈윈 게임이 되었을 것도 부정할 수 없다.

굿닥터는 시즌2를 시작하였다. 또다시 우리들의 커뮤니티에서는 굿닥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드라마가 자폐증을 홍보하는 것인지 우리 부모들이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멋진 윈윈 게임이 계속되기를 마음 한편으로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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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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