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은 물질만으로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절대 아니다. 이것은 정상 지능인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20년 이상 일 해 오면서 필자는 그들이 나와 결코 다르지 않은 사람들임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성적 차원에서의 능력은 뒤지지만 풍부한 감성을 지닌 발달장애인들은 우리처럼 기쁨과 갈망, 번민과 슬픔, 좌절과 고통 등을 느낀다. 많은 발달장애인들은 외로움과 슬픔을 자신들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드러낸다. 어떤 이는 노래나 춤으로, 어떤 이는 짜증과 자해의 방식으로, 또 어떤 이는 무단가출과 도벽, 또는 혼자 있음으로, 그리고 때로는 자위행위나 이성 또는 동성과의 신체접촉 및 로맨틱한 관계 등을 통해 다양하게 표출해 낸다.

우리가 발달장애인들에게 요구하거나 제공해 온 많은 것들은 그들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한 것일 수 있다.

성과 발달장애인들에 대해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두려움을 숨긴 채 사회의 해악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하에 우리가 그들의 성을 무시하고, 억압한 다양한 행태들은 사실 인권침해였을 수 있다.

우리는 진정 우리가 그들에게 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수도 있고 또 발달장애인들도 자신들이 박탈당하고 억압당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을 수 있다. 왜냐하면 결코 주어져 본 적이 없는 것은 원할 수도 없고, 빼앗겼다고 생각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에 도전할 기회와 그것을 성취할 도움을 주지 않은 채 그저 잘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그들이 결코 행복할 수는 없으며 복지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일종의 사육이며 학대일 수 있다.

20년 동안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면서 필자는 발달장애인들의 진정한 갈망과 바람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었다. 그들이 참으로 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그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좀 더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 나이에 맞는 대우를 받는 것,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 등이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우리 자신의 깊은 갈망과 바람이 아닌가!

발달장애인들의 향유할 성적 권리(쾌락)에 관해 많은 말들을 하지만 책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성적 권리가 있다는 말은 이들이 자기 몸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다른 사람의 몸을 함부로 대하고, 또 해로운 결과가 일어날 것을 뻔히 아는 상태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성적 권리는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인격적이고 품위 있는 방식으로 성을 사용할 권리를 의미하며, 성을 행사하는 일에 따라오는 책임을 지는 것도 포함한다. 성적 권리는 관련된 책임을 알 때 올바로 실현될 수 있으며, 책임을 지지 않는 권리 행사는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일이 발생한다.

이러한 책임의식은 성적 권리를 최고의 수준으로 들어 올려 주며, 인권이란 바로 책임에 완전히 응답하는 권리라 하겠다. 그러므로 발달장애인들은 성적 삶의 권리와 책임이 무엇인지 배워야 하며, 이런 앎을 가지고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성적 삶이 지닌 유희와 무게를 그들도 균형 있게 감당해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데 많은 제한성을 지닌 발달장애인들이 성적 존재로서 자기 자신의 성을 긍정하며, 친밀감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과 책임 있게 나누도록 하기 위해서는 먼저 비장애인들이 자신들의 성에 대한 반성과 숙고를 하면서 동시에 발달장애인들과 그들의 성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우리는 때론 우리 자신의 무지와 두려움 때문에 그리고 그들에 대한 보호와 돌봄의 책무성 때문에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것을 못 보고 못 들음으로써 놓쳐버리는 경우가 있다.

비장애인들에게 자신들의 성과 성적 삶이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면 발달장애인들의 그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고 존중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또 모두가 성을 지닌 평등한 인격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달장애인을 한 인간으로서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서투른 애정 표현에도 진정성 있게 응답하고 귀 기울일 때 그들의 풍요로운 삶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정진옥 칼럼리스트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의 관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20년 동안 조기교육실, 그룹홈, 생활시설, 요양시설, 직업재활시설 등에서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일하였다. 특수교육에서 발달장애인의 성에 대한 주제로 석·박사학위를 받았고 사회복지에서도 석·박사학위를 지니고 있다. 97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발달장애인들에게 성교육을 제공해 오고 있고, 부모교육과 종사자교육, 교사교육 등을 해 오고 있다. 현재 서울시중구장애인복지관에서 상·하반기에 걸쳐 발달장애인성교육전문가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숭실대학교, 단국대학교, 숭실사이버대학교 등의 외래교수로서 사회복지와 특수교육 관련 과목을 강의하면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 칼럼을 통해서는 발달장애인의 성과 성교육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