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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bnews.kr/1Hlx

이 쉑히, 잡히면 뒈졌어

늘 긴장하며 살아도 이렇게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합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2-27 09:30:51
2018.2.5.(화)
총회, 스포츠 사업단 운영계획안 및 신규 사업 기획안 작성 등 설 전에 마무리 지어야할 산적해 있는 문제들로 마음이 조급한 요즘.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사무실 책상 머리맡에 앉아 있어야 비로소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니 ‘정시 칼 퇴’란 미풍양속이요 계승해야 할 전통이 된지 오래입니다.

pm. 20:00
되도 안 한 머리를 굴려봐야 거기서 거기. 몇 시간째 진도 없는 계획서에 껌뻑이는 커서에다 눈꺼풀을 싱크(sync)시키니 이내 “레드 썬~” 최면에 걸린 듯 졸음이 오기 시작합니다.

그때...

“지부장님, 태은이(이하 ‘공군’)가 아직도 집에 안 들어왔다고 어머니께 연락이 왔는데 어쩌지요?” 협회 팀장님(이하 ‘탁팀장’)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뭔 소리여? 사무실에서 출발한지가 네 시간이나 지났는데.

사실 잊을만하면 터트려 주는 공군의 전력에다 아직 *최고기록엔 미치지 못하는 터라 그리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습니다. “어머니께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합시다. 또 버스를 잘 못 탔나 보죠 뭐.”
*종전기록: 버스로 30분이면 갈 거리를 ‘4시간’만에 도착함.

pm. 21:00
“지부장님, 아직도 안 들어 왔데요. 가끔 늦긴 했었어도 이렇게 늦은 적은 없는데 어쩌지요?”

그러고 보니 자신의 종전 기록을 깡그리 갈아 치운데다 칼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맹추위에 평소보다 얇은 점퍼를 걸치고 온 녀석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 진짜 바빠 죽겠는데. 너 이 쉑히, 내 손에 잡히면 뒈졌어’ 속으로 수없이 되새기며 그 길로 퇴근해 버스 터미널에서 반대편 종점까지 역으로 수색해 갑니다.

큰 메인도로를 이등분 해 터미널에서 공군이 내리는 정류소까지는 (걱정이 되는지 함께 찾겠다며 그 밤에 달려온) 탁팀장이, 혹시나 걸어오다 마주칠지도 몰라 공군 집 근처 도로를 기점으로 배터리 방전으로 휴대폰이 꺼지기 전 마지막으로 위치가 확인되었던 정류소를 경유해 마지막 종점까지는 제가.

pm 23:00
두 시간에 걸쳐 수색경로에 있는 정류소란 정류소는 하나도 빼지 않고 샅샅이 뒤졌습니다. 그 사이 공군 어머니는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고요.

‘너 이 쉑히, 뭔 일 있음 뒈졌어’
그 사이 마음도 조금씩 변해갑니다.

혹시나 차비가 없어 걸어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류소 수색을 중단하고 인도를 중심으로 집 앞까지 몇 차례 더 순찰합니다.

pm 23:30
“팀장님, 어머님껜 별 소식이 없나요?”
“네...”
“할 수 없죠. 실종신고를 했으니 기다려 보는 수밖에요. 어머님께 말씀 좀 잘 드려주세요...”

천근만근인 몸과 마음을 이끌고 방향을 틀어 집으로 향합니다.

pm 23:32
“지부장님, 찾았어요.”

절망이 흥분으로 변하기엔 2분이면 충분했습니다.
말 한마디에 사람이 살고 죽는다는 게 이런 것이었나 봅니다.

나: 정말요? 어떻게요?
탁: 방금 전 지세포에서 출발한 마지막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마침 그곳에 있던 삼촌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나: 지, 지세포요? 헐~~

(좌)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경로, (우) 공군이 버스로 이동했던 경로. ⓒ제지훈 에이블포토로 보기 (좌) 우리가 찾아 헤매던 경로, (우) 공군이 버스로 이동했던 경로. ⓒ제지훈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도피행각을 벌이던 공군의 일탈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습니다만, 만에 하나 삼촌이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오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칩니다.

am 12:10
가족들 모두가 잠든 시간.
좁은 방 한 칸에 아내와 아이들 셋이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을 보니 그래도 온 가족이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 복에 겨워집니다.

am 10:00
치열했던 밤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아침.
공군이 협회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지부장뉘~임, 나 어제 지세포까지 버스타고 여행 갔다 왔어요.”

확~ 저 녀석을 어찌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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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제지훈 (sumgim1@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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