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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정할 권리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월평빌라' 이야기-37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8-02-17 17:08:20
시설 입주자는 불안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수(가명) 씨가 직장에서 난리를 피웠습니다. 태수 씨는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씩, 미용실에서 아르바이트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단골 미용실 사장님이 함께 일하자 해서 4년째 다니고 있습니다.

그날은, 태수 씨의 용모가 단정하지 않다고 사장님이 한마디 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사장님 말씀에 화가 났는지 미용실 물건을 발로 차고 던지고, 미용실 바닥에 드러누웠습니다. 사장님의 만류에도 멈추지 않아 시설 직원이 가서 말리고 설득해서 진정되었습니다.

태수 씨는 분이 삭지 않았는지 다시 찾아가서 난리를 피웠습니다. 자기 옷을 뜯고 미용실 물건을 부수었습니다. 시설 직원이 가서 데려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 물었더니, 씻으라는 말에 화가 나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미용실 직원으로서 용모를 단정히 하자고 사장님과 시설 직원이 종종 말했습니다. 그간 그 말이 스트레스였고 차곡차곡 쌓였던 모양입니다. 어찌 할까요? 어떻게 수습할까요?

시설 입주자에게만 있는 특별한 상황은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럴 수 있다며 받아들여질 수도 있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내쳐질 수도 있습니다. 관계가 회복될 수도 있고 끝날 수도 있습니다. 내 입장에서 이해해 주기 바라며 분통을 터트릴 수도 있고, 그 사람 입장을 이해하며 후회하고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태수 씨도 이런 상황에 놓인 겁니다. 누군가에게 심판받거나 사례회의에 부쳐질 것이 아닙니다. 문제 행동으로 다룰 것도 아닙니다. 여느 사람처럼 울고 웃고 화내고 슬퍼하고 기뻐할 권리가 있습니다.

감정이 지나쳐서 자신이나 타인에게 상처가 될 때, 불안정한 감정이 오래 지속될 때, 그때는 도와야겠죠. 상담이나 진료를 받고, 약을 먹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이미 어떤 이유로 정신과 약을 먹는 사람이라면 기분이나 행동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와 약에 너무 혹은 자주 의존하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상담·치료·약을 배제하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고 위험하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시설에서, 시설 직원이 어찌 해 보겠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고 상황만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전문가와 의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담·치료·약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지만, 지나친 경우가 있습니다. 자주 짜증을 내고, 종종 거칠게 화내거나 욕하고, 자주 무기력하고, 과하게 웃거나 우는 경우…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할까요?

지나친 슬픔과 기쁨, 잦은 짜증과 무기력함은 그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감정은 배경과 대상이 있습니다.

단체생활의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환경이 시설 입주자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 보입니다. 여럿이 함께하는 활동이 일상이고, 자기 계획과 일정이 없거나 통제되고, 직원의 지원이 간섭처럼 느껴지고, 간섭하는 사람이 상시 옆에 있다고 느낄 때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해 보입니다.

단체생활이 익숙하고 일상인 곳에서는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거나 주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그래서 눈치를 보고 눈치가 느는 겁니다. 어떤 감정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전염됩니다. 전염되는 감정은 대개 부정적인 경우가 많고, 그 감정과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기도 어렵습니다.

모방한다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모방이 아닙니다. 모방은 개인을 탓하는 듯한데, 전염되는 겁니다. 시설에 살면서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질문에 확신을 갖고 답하기 어렵습니다. 홀로 있으면서 군자이기 어렵듯 단체생활에서 군자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단체생활을 줄여야 합니다. 개인의 계획과 일정이 있고, 당사자가 선택·통제하는 일이 많게 해야 합니다. 자기 일상과 인간관계로 만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시설 안에서, 시설 입주자끼리 어울리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줄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단체생활을 줄이는 노력 없이, 개인의 일상을 늘이는 노력 없이는 시설 입주자의 불안정한 감정은 지속되고 악화될 것입니다. 그것은 ‘문제 행동, 도전적 행동’으로 평가받으며, 입주자와 직원과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힘들게 할 겁니다.

좀 너그러우면 좋겠습니다. 행동 하나하나를 문제 삼아 ‘사례회의’ 테이블에 올리면 당사자와 직원 모두 ‘문제’의 덫에서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적어도 ‘문제’ 삼는 횟수만큼 ‘인정’하려고 노력하면 어떨까요? 문제 삼는다면, 이유가 뭔지 배경이 뭔지, 환경은 어떤지 살피면 좋겠습니다.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지 않고 환경을 살핍니다.

깊은 슬픔은 울음을 다 토해낼 때 위로가 되고 힘이 나기도 합니다. 울음이 많은 사람에게 ‘울지 마라’ 하지 말고 자기 집(방)에서 실컷 울게 하면 어떨까요? 화가 많이 난 사람, 거칠게 욕하는 사람에게 ‘하지 마라’ 하지 않고 바람을 쐬거나 이유를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울면 운다고 웃으면 웃는다며, 우울해 있으면 우울해 있다고 들떠 있으면 들떠 있다며 간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뭐랄까, 1년 365일 내내 이성적인 존재로 있기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구도 내내 이성적인 존재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직원의 할 일이 많고 지원해야 할 입주자가 여럿이라 시간과 여건이 만만치 않죠. 그러니 지혜가 필요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지나친 감정이 일상이 된 입주자, 자기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기 힘든 입주자를 돕고 싶다면, 진정으로 돕고 싶다면, 공부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입주자를 제대로 돕고 싶다면, ‘직원이(내가) 어떻게 해 보겠다’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입주자의 감정을 감정으로써 맞서면 변화는 없습니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지도하는 것은 임시방편이며, 상황을 지속시키고 악화시킬 뿐입니다. 공부하고 궁리해야 합니다. 어떤 배경과 이유가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족과 친구와 이웃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미용은 미용실에서 미용사의 도움을 받고 팔이 부러지면 의사의 도움을 받듯, 그 과정에 가족 친구 이웃과 함께하듯, 전문가와 둘레 사람에게 묻고 의논하고 부탁해야 합니다.

감정은 대상이 있고 관계에서 비롯합니다. 그 관계를 잘 살피고 살려야 합니다. 당사자의 생일 졸업 결혼 이사 구직 실직 입원 같은 일상에, 당사자의 가족 친구 이웃의 생일 결혼 출산 이사 구직 실직 입원 장례 제사 같은 일상에 참여하며 어울리게 합니다. 이런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다움의 실체가 이런 것이고요. 가족 친구 이웃의 경조사에 함께하며 사람 구실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권리가 있습니다.

가족 친구 이웃은 미용 직장 학업 취미를 해결하는 자원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 관계에서 감정이 생기고 표현되며 성숙합니다. 한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 하니 한 사람을 찾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깊은 슬픔은 울음을 다 토해야 마르고, 천천히 오래 보듬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매일 입주자에게 칭찬 감사하면 어떨까요? 그렇게 칭찬 감사한 것을 짧게라도 매일 기록하면 어떨까요? 1년 뒤 입주자가 어떻게 변할지, 직원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지 궁금합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제안합니다.

불안정할 권리가 없으면 불안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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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시현 (refree@welfar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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