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드는 밤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다 지나버린 오늘을 보내지 못하고서 깨어있어 / 누굴 기다리나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던가 / 그것도 아니면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자리를 떠올리나 / 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지치고 힘들 때 문득 그리워지는 게 있습니다. 바로 엄마의 무릎인데요.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듯 무릎을 베고 누우면 근심이 사라지고, 행복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데 어느덧 어른이 된 우리는 삶의 무게를 짊어지느라 누군가의 무릎을 잊고 살며, 때론 그리운 무릎이 가냘퍼짐에 눈물 훔치는 날이 많아지고 있죠. 그래서 우리는 무릎이었던 사람들의 무릎이 되어주고, 힘들어하는 누군가에게도 기꺼이 무릎을 내어주며 살아갑니다.

마음 한 켠에 내 몸 맡길 무릎 하나 간직하고서. 아이유의 ‘무릎’이란 노래가 더욱 와 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엄마의 무릎은 늘 자녀들을 위해 희생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보살핌이 필요 없는 장성한 아들에게도, 남의 집에 시집간 딸에게도 엄마는 기꺼이 자신의 무릎을 내어줍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말이죠.

하물며 타인들보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조금 불편한 자녀를 둔 부모님의 심정은 어떨까요? 자녀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고 싶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저는 지난해 열린 한 특수학교 설립 관련 토론회에서 무릎 꿇은 어머니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사랑이 있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의원은 진정한 의원이 아니다” 유의태 선생이 처음 의사시험을 보러 가는 자신의 아들에게 해준 말입니다.

밖에서 이를 들은 허준은 평생 어려운 병자들을 돌보는데 생을 바쳤습니다. 덕분에 그는 의술뿐 아니라 인술까지 겸비한 명의가 될 수 있었죠. 동의보감의 원천은 결국 허준의 의술과 더불어 사람을 사랑으로 대하는 측은지심이었습니다.

이런 허준 선생께서 태어나신 마을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허준 선생의 발자취로 가득한 마을에 특수학교를 짓겠다는 교육청 및 장애인단체와 허 선생의 유지를 받든 국립한방병원을 짓겠다는 주민 사이에 격한 대립 때문입니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은 교육청과 주민들의 합의를 조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나름대로 조정을 위해 교육감과 협의한 대체부지 마련이 무산되면서 갈등은 일파만파 퍼졌죠.

덕분에 대중들은 특수학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여론은 현재 특수학교 설립 쪽으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결국 특수학교는 설립되리라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물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렇게 들어온 특수학교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느냐는 겁니다. 이 학교에 들어올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결코 편한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지 못하리라는 우려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특수학교 건립에 찬성하는 분들이 과연 자신의 지역에 설립된다 해도 찬성했을까 하는 의문입니다.

이건 해당 국회의원과 교육감을 비판할 문제라기보다 특수학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이들이 비판받아야 할 사안입니다. 당장 자신의 자녀들이 불이익을 받는 상황이 생긴다면, 어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무릎은 정녕 자녀를 위해 꿇은 그 부모들의 무릎의 의미를 모르시나요? 허준 선생은 자신의 업적을 집대성할 병원보다 그 어머니들의 무릎을 쭉 펴게 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계시진 않을까요?

정부는 지난달 4일 제5차 특수교육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여기엔 2022년까지 특수학교 22곳을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그러나 앞은 컴컴합니다. 부지확보 단계에서 또 다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갈등만 증폭되고, 학교설립은 무산될까봐서입니다.

장애아들과 그 부모님들께서 받을 상처를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부디 정부가 현명하게 계획을 운용해서 장애아들의 교육권을 보장해주시고, 그 부모님들에게 따뜻한 무릎이 되어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2018년엔 무릎 꿇는 어머님들이 없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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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용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중앙일보 대학생 페이스북 페이지 ‘나도 칼럼니스트’에 5년간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3년 12월부터 1년 간 KBS <사랑의 가족> 리포터로, 2017년 5월부터 약6개월 간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며 장애 문제를 취재해 사회에 알리는 일을 했다. 장애 청년으로 살며 느끼는 일상의 소회와 장애 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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