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이들을 위한 서핑 행사. ⓒ엑세스 서프

지난 2년간 우리 가족은 매달 첫번째 토요일 아침이면 스케줄을 비워둔다. 하와이의 비영리 단체인 엑세스 서프(AccesSurf)에서 주최하는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서핑의 날 행사에 참가하기 위함이다.

가능성의 바다(Ocean of Possibilities)를 모토로 내세우는 엑세스 서프는 장애 아이들을 위한 행사를 매달 진행하는 것 외에도 장애를 가진 성인분들과 함께 팀을 꾸려 서핑을 하고, 세계 장애인 서핑 대회 등에 참가하는 활동들을 주로 한다.

잠을 조금 더 청하고픈 게으름이 밀려오는 토요일 아침이지만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든든히 먹고 화이트 플레인 해변(White plaine beach)으로 향하였다. 행사 시작은 오전 9시,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는데도 이미 등록 천막에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휠체어를 탄 참가자들, 활동 보조인과 함께 온 참가자들, 그리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꼬마 참가자들이 보인다. 모두의 얼굴이 흥분으로 고조되어 있다.

매달 행사에는 늘 참가자보다 자원봉사자가 더 많다. 오늘도 행사 천막 주위로 자원봉사 티셔츠를 입은 백여명의 자원봉사자가 웃으면서 우리를 맞이한다. 이 반나절의 행사를 위해 모이는 자원봉사자가 매달 백명이 넘는다고 한다.

오늘은 바다건너 미국 본토의 뉴욕 로드 아일랜드 대학단체가 이 작은 섬까지 자원봉사를 나왔다. 제주도 보다 더 작은 섬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토요일 새벽부터 모인다니, 이 기관의 명성과, 강한 자부심과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애정이 가득한 열기가 느껴진다.

11시 서핑 시간을 배정받고 모래밭에 앉았다. 빨간색 수영 도우미 티셔츠를 입은 젊은이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다.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은 이렇게 수영 도우미 자원봉사자들이 바다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수영을 가르친다. 모처럼 힘들었던 일상에서 벗어나 바다를 보며 달콤한 휴식을 즐기는 부모들을 보면서 아침부터 부지런히 나오길 잘했다 싶었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 분들이 특수 제작된 보드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파도를 타는 얼굴에 기쁨과 자신감이 가득하다.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광경이다. 가능성의 바다, 이 기관의 모토가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진다.

드디어 우리 딸의 서핑 시간, 절대로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일 없는 꼬마가 써핑 강사의 손을 잡고 용감하게 서핑 보드에 올라탄다. 서핑 가자고 무한 반복하던 바다 꼬마가 드디어 물을 만난 순간이다.

재작년 행사에 처음 참가하였던 날이 생각났다. 첫 참가라 서툰 아이를 보드에 태우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열명 가까이 달려왔었다. 자원봉사자들은 파도가 세서 쉼 없이 흔들리는 보드를 꼭 잡고 낯선 이와 첫 서핑을 해야 하는 아이를 거듭 안심시키고 능숙하게 아이를 안아서 보드위에 올렸었다.

아침부터 자원봉사자들로 분주한 바닷가. ⓒ이유니

아이를 태운 보드는 거친 파도를 거슬러 나갔다. 걱정 많은 내가 “대체 어디까지 나가는 거야”를 수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동안 아이가 탄 서핑 보드는 저 멀리 아이가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망망대해로 나아갔다. 서핑을 해본 적 없는 우리는 센 파도에 너무 멀리까지 나간 아이가 걱정이 되어 해변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그렇게 멀리 나아갔던 보드가 드디어 파도를 만나 거침없이 해변으로 밀려 돌아올 때 아이의 얼굴은 아마 영원히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흥분과 기쁨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우리에게까지 들렸다.

파도에 익숙해진 아이는 오늘 여러 차례 보드위에 서기를 시도 하였다. 균형을 잃고 번번히 바다로 꼬구라져 물을 잔뜩 먹고도 아이는 다시 보드위에 오르기를 멈추지 않았다.

해변에 함께 있던 자원봉사자들이 아이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동안 나는 주책맞게 눈물이 났었다. 어쩌면 이 아이의 여정에서 우리 부모가 해줄 수 일들이 실은 아주 미미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가르치고 돌보고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조바심 내고 발을 굴러도 결국 저 넓은 망망대해로 파도를 맞서 거스르고 나가는 것은 온전히 우리 아이 혼자만의 몫이다.

그래도 오늘처럼 우리 아이들의 외롭고 힘든 여정에 손잡고 함께 바다로 나가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마음이 따듯해졌다. 그리고 우리 꼬마는 지금처럼 용감하게 멀리 멀리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보았다. 바다에 꼬꾸라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희망의 파도를 타는 아이들을 위해, 그 도전에 함께 해준 이들의 아름다운 동행을 향해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세상이 조금씩 나아가고 장애인들의 인권 문제에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우리 아이들과 동행하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엑세스 서프는 서핑의 본고장이라는 하와이의 강한 자부심과 사면이 바다에 둘러 쌓인 섬이라는 이점을 활용해 지난 십년간 이 곳의 장애 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프로그램으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나눔이란 가장 잘하는 일, 가장 즐기는 순간을 온전히 나눌 때 최고로 빛이 난다는 신념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성공이다.

엑세스 서프는 이곳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2014년 엑세스 서프 오키나와를 만들고 하나의 바다란 주제로 일본에 진출하였다. 서핑의 즐거움을 더 많은 지구촌 장애 아이들이 맛보게 되었다.

흐믓한 소식이였다. 언젠가 대한민국 바다에서도 우리 아이들이 이들과 함께 신나게 파도를 타는 날이 오기를 감히 상상해본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이유니 칼럼리스트 현재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 도시가 속한 베어 카운티의 지적발달장애인 부서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다. 바다 수영과 써핑을 사랑하는 자폐증이 있는 딸과 한발 한발 서로의 세상을 소통하는 방법을 알아가고 있다. 바다 꼬마가 사람들의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호흡할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는 게 인생의 목표이다. 이곳에서 체험하는 장애인들의 이야기와, 바다 꼬마와의 서툴지만 매일이 배움과 감동인 여정을 나누고 싶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