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차미경

커피전문점에서 내가 캬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할 때마다 꼭! 덧붙이는 요구사항이 있다. ‘최대한 달지 않게!’. 그러면 십중팔구 종업원은 “그러려면 뭐 하러 캬라멜 마끼아또를 먹어?”하는 표정으로 나를 딱 1.5초쯤 바라본다.

그런 까다로운 요구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내가 원하는 ‘딱 그만큼’의 달지 않은 캬라멜 마끼아또가 혀끝에 와 닿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 영화 ‘원더’를 보고 나올 때 느낌이 그랬다.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의 어떤 것...

특별한 아이, 어기

영화 ‘원더’는 선천성 안면기형으로 특별한 얼굴을 가진 소년 어거스트 풀먼, 어기의 이야기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무려 27번의 수술을 견뎌내고 드디어 열 살이 된 어기가 처음으로 학교라는 곳을 가게 되면서 겪는 험난한 여정을 통해 어기뿐만 아니라 그 가족, 그리고 그 친구들까지 커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두의 성장기다.

세상이 너를 중심으로 돌진 않아!

특별한 외모, 혹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서 겪게 될 이야기들은 사실 너무나 예측 가능해서 뻔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상 어디나 ‘특별함’은 ‘특이함’이 되고 나아가 이상한 것, 두려운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헬멧을 쓰고 다녔던 어기는 이제 학교에서는 더이상 헬멧을 쓸 수도, 다른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도 없게 됐다.

심지어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다스 시디어스’나 ‘반지의 제왕’의 ‘골룸’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모두 ‘괴물’의 대명사다. 아이들은 어기의 손이 닿는 곳마다 만지면 전염병이 옮는다며 ‘전염병 놀이’를 하기도 하고 처음으로 마음을 열었던 친구, 잭마저 할로윈데이에 가면을 쓰고 나타난 어기를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은 어기처럼 생기면 자살해 버리고 말 거’라며 친구들과 히히덕거린다.

그 모든 것에 너무나 큰 상처를 입게 된 어기는 더이상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만, 어기의 누나 비아는 ‘세상 모든 일이 다 너와 관련된 일은 아니’라며 모든 일을 자신의 외모 탓으로만 돌리는 어기의 태도를 나무란다.

사실, 비아는 어기의 그런 태도가 밉기도 하다. 어기가 태어난 이후부터 지금까지 온 집안의 사랑과 관심은 어기에게만 집중돼 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기는 태양이고 그 가족은 그 주변을 중심으로 도는 행성과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던 비아. 비아 역시 비아대로 특별한 동생 때문에 늘 가족의 관심 밖에서 혼자만의 외로움을 감내하며 또 다른 힘겨움을 가진 주인공이다.

모두가 특별한 행성

어기의 이야기만 있었다면 영화는 아주 맛이 없어져 버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아를 비롯한 다른 주인공들의 특별한 이야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해 가고 있다는 점이 이 영화 최고의 미덕. 모든 주인공들에겐 다 자신만의 특별한 속사정과 이유가 있다.

특별한 동생 어기의 누나여서 힘든 비아, 그리고 어기의 좋은 친구로 다가왔지만 잠시 어기를 배신했던 잭, 또 비아의 절친이었지만 어느 순간 비아를 외면해서 비아를 몹시 가슴 아프게 했던 미란다의 이야기까지 영화는 각 주인공들의 그들만의 이야기를 보여주며 평범한 사람들이 사실은 각자의 공전주기와 자전주기를 가지고 서로의 주변을 돌고 있는 특별한 행성들임을 떠올리게 한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이에게 친절하라

중간중간 뭉클해지는 장면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어기가 수많은 이들의 갈채와 환호 속에서 최고의 학생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상을 받는 마지막 장면은 아마 많은 관객이 손꼽는 장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삶의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은 어기만이 아니다. 우린 모두 힘겨운 싸움을 하는 연약한 존재들이며 각자의 중심을 도는 그 특별한 행성들에게 우리는 모두 그들의 행로를 격려하고 친절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적은 바로 그런 특별한 행성들이 이루어내는 매일의 평범한 ‘조화’라는 것을 마지막에 눈물을 훔치며 느끼게 된다. 어기는 그 자체로 기적이며 더불어 우리 모두 역시 기적이라는 것에도 감사하게 된다.

R.J.팔라시오 원작 '아름다운 아이'. ⓒ차미경

더 맛있는 영화를 위하여

영화도 영화지만 때로는 슬며시 꺼내는 뒷얘기가 더 재미있는 것들도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어기가 상을 받는 장면에서 이 영화의 원작자 R.J. 팔라시오를 까메오로 볼 수 있다는 것. 어기에게 환호와 갈채를 보내는 수 많은 사람들 속에 그녀가 있다.

그녀는 어느 날 수퍼마켓에서 만난 안면기형을 가진 아이를 보고 이 소설을 쓰게 됐다고 한다. 원작인 ’아름다운 아이‘를 통해 영화 속에서 보지 못했던 다른 주인공들의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다.

R.J.팔라시오 '아름아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 ⓒ차미경

특히 ‘아름다운 아이’가 출간된 지 3년 후에 후속작으로 출간된 ‘아름다운 아이 줄리안 이야기’에서는 영화 속에서 어기를 못되게 괴롭혔던 ‘줄리안’의 이야기를 가슴 찡하게 만나볼 수 있다.

못된 아이, 나쁜 아이로만 여겨졌던 줄리안의 이야기를 통해 그 아이만이 가진 ‘특별함’을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는 간단히 다뤄졌던 ‘학교폭력을 다루는 올바른 학교 시스템과 바람직한 어른들의 자세란 어떤 것인가’를 이 책을 통해 더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으니 꽤 유용한 부록이 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녀가 이 작품 전체를 통해 보여준 것이 ‘장애의 극복’이 아니라 특별한 이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여준 진정한 용기란 점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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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미경 칼럼리스트 ㅅ.ㅅ.ㄱ. 한 광고는 이것을 쓱~ 이라 읽었다. 재밌는 말이다. 소유욕과 구매욕의 강렬함이 이 단어 하나로 선명하게 읽힌다. 나는 내 ‘들여다보기’ 욕구를 담는데 이 단어를 활용하겠다. 고개를 쓰윽 내밀고 뭔가 호기심어리게 들여다보긴 하지만, 깊이 파고들진 않는 아주 사소하고 가벼운 동작, 쓱... TV, 영화, 연극, 책 등 다양한 매체가 나의 ‘쓱’ 대상이 될 것이다. 그동안 쭈욱 방송원고를 써오며 가져 왔던 그 호기심과 경험들을 가지고... (ㅅ.ㅅ.ㄱ. 낱말 퍼즐은 읽는 분들의 몫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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