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유수와 같다더니 칼럼을 쓴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처음 칼럼을 기고할 때 그냥 동네 아줌마가 수다 떨듯이 편하게 쓰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되길 바랐다. 그래서 칼럼방 이름도 ‘똑!똑! 안녕하세요.’로 붙였다.

그러나 감정이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적절한 표현을 찾는데 고민했고 필자의 편협한 사고가 또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쓸 때마다 조심스러웠다.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필자 스스로 글을 쓰며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 같다. 찐득하게 들어붙는 타르처럼 마음속에 들어붙어 있는 응어리를 떼어내듯 그렇게 글로써 쏟아낸 것 같다. 답답하고 아쉬움 그리고 억울한 감정들을 해우소에 쏟아내듯 글을 쓰고 나면 조금은 속이 후련해지곤 했다.

지난 1년간의 일상이 마냥 힘들고 불편했던 것만은 아니었는데 쓴 글이 일상의 부정적인 측면만 쓴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나홀로 장애인이 되어 비장애인들과 생활하며 그들로부터 받은 내 감정과 처우에 대해 함께 공감해줄 그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비해 장애 복지나 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의 인식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듯이 세대를 거쳐 이어온 장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사회 여기저기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 밑바닥에 잔재해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걸어본다. 서툴고 어색하지만 도와주겠다며 다가오는 이들, 동네를 오갈 때 반갑게 인사해주는 동네 이웃들, 장애가 아닌 내 본연의 모습을 바라봐주고 인정해주는 교수님과 학우들을 보며 그들의 변화에 희망을 품는다.

장애공감교육을 진행할 때면 나에게 파이팅을 외치는 아이들, 거리낌 없이 나에게 다가와 품에 안기는 아이들,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희망이 되어준다.

우리의 삶은 분명 비장애인의 그것과 차이는 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떤 이도 똑같은 삶을 살아가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과 교집합으로 관계할 뿐이다. 장애인의 삶과 비장애인의 삶 사이에도 분명 교집합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교집합의 크기는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지급은 비록 그 교집합의 크기가 너무 미비하여 소통하고 공감할 수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섣불리 단정 짓고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존할 수 없다.

6년 전 실명 직후 어둠에 대한 두려움, 꿈꾸고 계획했던 미래에 대한 상실감, 나 자신에 대한 존재 가치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며 1년여 간 집안 방구석에 누워 은둔생활을 했었다. 그런 나의 모습에 온가족들과 알고 지낸 이들이 걱정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고 희망과 용기의 말을 건네주었었다.

어쩌면 그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에 나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직면한 현실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오해와 편견, 무시와 억압, 장애에 대한 차별과 선입견에 좌절하고 상처받고 아파해야 했다. 분하고 억울해서 울었고 서글퍼서 울기도 했다.

어쩌면 집에서만 지내며 가족 친지들과 아는 이들로부터 배려받고 위로받으며 생활하는 게 심적으로 덜 아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지난 시간 비장애인들과 소통하며 힘들고 아팠던 만큼 그들과의 교집합의 크기도 커졌음을....

우리의 삶은 오직 우리만이 보여줄 수 있고 말할 수 있다. 장애에 대해 알지 못하는 비장애인들의 편협하고 비합리적인 장애관을 그들의 탓이고 몫이라고 방관한다면 그 책임은 장애인 당사자인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필자는 대단한 학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도 않으며 특별한 전문가적 지식도 없는 그저 평범한 40대 아줌마에 불과하다.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 바지에 색바랜 낡은 티셔츠를 입고 똥머리를 하고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 장애인 개개인이 장애에 관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당사자인 우리보다 더 잘 아는 비장애인이 있겠는가? 격렬하게 투쟁하고 싸우고 항변하자는 말이 아니다.

움츠려들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와 활동하며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이 사회의 소비자로서, 지역주민으로서, 학부모로서, 수다쟁이 아줌마로서, 썰렁한 아재로서 비장애인과 소통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변화한 너와 나, 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2018년 새해가 밝아온다. 빠른 속도로 치닫는 고령화, 고용불안과 실업, 지속적인 저성장 등 사회 경제 전반에서 희망보다는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고 있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몸통으로 꼬리를 흔드는 시대는 당분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친 듯이 꼬리를 흔들다 보면 몸통도 어는 순간 흔들리지 않을까? 새해에는 필자뿐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몸통을 흔드는 꼬리가 되도록 살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1년간 부족한 글을 기사화해 주신 에이블뉴스 관계자분들과 ‘똑!똑! 안녕하세요.’ 칼럼방을 찾아 소통하고 공감해주신 독자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좀 더 성장하고 발전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드리며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고 충만한 삶을 보내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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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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