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어둠속의 하루'라는 프로그램의 행사 진행자로 참여했다. '어둠속의 하루'는 부산문화재단이 문화다양성 사업의 일환으로 정안인이 시각장애인이 되어 일상을 체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실내를 완전 암막 처리하고 공간을 테마별로 나누어 그곳에 시각장애인(마스터)이 상주하여 참여자들의 체험을 돕도록 하였다.

이번 행사에서는 건널목, 의류 매장, 미술관, 영화관으로 테마가 구성 되었다. 작년에도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으나 암막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체험감이 떨어졌다는 평이 있어 올해는 암막처리에도 신경 썼지만 좀 더 실감나는 체험을 위해 안대까지 착용하도록 하였다. 1회 참여자는 6명으로 제한했으며 체험 시간은 60분으로 진행되었다.

한 시간 동안 참여자들은 마스터들의 도움을 받아 건널목을 건너 의류매장에서 쇼핑한 옷을 입고 미술관에 들러 작품을 감상한 뒤 영화관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영화를 보도록 하였다. 3일 동안 진행된 본 행사는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 타임의 예약이 완료되었으며 대기자까지 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본 행사에서 필자가 맡은 테마는 미술관의 큐레이터 역이었다. 처음 프로그램 진행 시나리오를 보고 시각장애인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미술관을 테마로 선정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일상의 이미지도 제대로 보기 힘든 시각장애인이 일부러 미술관을 찾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난감했다. 물론 배치된 작품들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조형작품과 입체그림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참여자들이 작품을 잘 느끼고 알아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나의 고민은 행사의 목적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 우리 사회와 시스템 속에서 우리 시각장애인들이 어떤 불편함과 어려움을 겪으며 생활하는지 가감 없이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들어온 참여자들에게 작품에 대해 설명하기 전 먼저 손으로 만져보도록 하였고 어떤 작품인지 물어보았다. 참여자 중에는 어떤 작품인지 알아맞추는 이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참여자들은 어떤 작품인지 알지 못했다.

필자도 그랬지만 참여자들 역시 어떤 작품인지 설명을 들은 후에야 작품을 알아보았다. 조형작품은 첨성대, 석굴암, 수원화성 등을 축소하여 만든 것들이었고 입체 그림은 피카소의 '꿈'과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이었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역시 작품 이름을 듣는 순간 그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이다. 이렇듯 필자처럼 중도 시각장애인의 경우 정안일 때 보고 경험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이름을 듣고 작품을 만지면 금방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태어났거나 이러한 것들을 충분히 경험하기 전에 시각장애를 갖게 되었다면 이름만으로 분간하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갔다.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가르쳐주기 위해 직접 만져보게 하였다.

첫 번째 시각장애인은 코를 만졌고 두 번째 시각장애인은 엉덩이 부분을 그리고 세 번째 시각장애인은 다리를 만졌다고 한다.

다음날 친구들이 동물원에 다녀온 아이들에게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냐며 물었다. 첫 번째 시각장애인은 "우리 팔뚝처럼 가늘고 길게 생겼어.", 두 번째 시각장애인은 "아주 큰 공처럼 둥글게 생겼어.", 세번째 시각장애인은 "전봇대처럼 굴고 단단해."라고 대답했단다.

이처럼 손으로 전체를 만져볼 수 없는 큰 사물이나 이미지의 디테일한 부분의 설명은 시각장애인이 사물을 판단하는데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특히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이러한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더욱 필요하고 중요하다.

본 행사에 전시된 입체그림은 아크릴이나 헝겊 등을 이용해 그림을 입체적으로 표현해 놓았지만 이런 소재들이 붓으로 그려낸 그림의 정교함과 아름다움까지 묘사하지는 못한다.

앞서 얘기한바와 같이 작품에 대한 이미지가 기억 속에 남아 있다면 어렴풋이 구별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목만으로는 어떤 작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피카소가 그린 '꿈'은 피카소가 사랑한 마리 테레즈라는 여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단순히 '꿈'이라는 제목만으로 여인의 모습을 그렸을 거라 짐작하기는 어렵다.

우리 주위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떠올려 보자. 어떠한가? 거의 모든 전시물이 유리벽 안에 들어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손으로 만지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대부분의 설명은 텍스트로 표기되어 있어서 읽어야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설혹 음성 설명기가 설치되어 있다 하더라도 전시물의 역사적 배경이나 가치만 들려줄 뿐 이미지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모든 시스템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예전에 딸아이와 박물관에 간 적이 있었다. 그 당시 아이가 글을 읽을 수 없는 나이였고 나 역시 도와줄 수 없는 상황에서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당 기관에서는 신청 시 전문 해설가가 따라다니며 설명을 해주는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의를 했다.

그런데 관계자로부터 해당 서비스의 경우 10인 이상의 관람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라는 답변을 들었다. 물론 보다 많은 이에게 편리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단순히 효율성보다 필요성에 입각한 서비스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관계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입장을 밝히자 우리의 신청은 접수되었고 딸아이와 나는 박물관에 갔다.

해설가의 안내를 받고 설명을 들으며 박물관을 관람했지만 나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해설가의 설명을 들으며 활동바우처 선생님의 이미지 설명까지 듣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설가가 설명하는 것이 바우처 선생님이 말해주는 것에 대한 설명인지 몰라서 여러 번 되묻고 헤매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내가 지쳐서 묵묵히 따라 다니기만 했다. 해설가가 딸아이를 위주로 설명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글쎄 시각장애 학생들이었다면 이미지에 대한 부연설명은 해주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문화예술에 소외된 이들을 위해 접근성을 높이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문화 복지 차원의 다양한 사업들이 학교와 지역을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장애인은 문화 복지에서 여전히 소외되어 있다.

문화 복지 차원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만을 위해 구상된 프로그램 외의 어떤 것에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한 공간 한 시대를 살아가지만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는 문화는 비장애인의 그것과 구별되고 차별된다. 굳이 장애인의 문화 혹은 비장애인의 문화라고 구분하지 않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장애인의 접근을 고려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장애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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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칼럼니스트 9년 전 첫아이가 3개월이 되었을 무렵 질병으로 하루아침에 빛도 느끼지 못하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상자 속에 갇힌 듯한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나를 바라볼 딸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며 삐에로 엄마가 되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삐에로 엄마로 살 수는 없었다. 그것이 지워지는 가짜라는 걸 딸아이가 알게 될테니 말이다. 더디고 힘들었지만 삐에로 분장을 지우고 밝고 당당한 엄마로 아이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다시 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고 초중고교의 장애공감교육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2019년 직장내장애인식개선 강사로 공공 및 민간 기업의 의뢰를 받아 교육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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