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면 누군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자주 접하게 되고 심혈관 질환으로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났다는 이야기를 유독 많이 듣게 된다. 이렇다 보니 장례식장에 다녀올 일이 많다.

지난 며칠 사이에도 두 곳의 장례식장에 다녀와야 했다. 그런데 이번 조문에서는 유난히 상주들의 모습에 눈길이 갔다. 아마도 내가 나이 들어 간 만큼 부모님들도 연세가 높아 지시기에 하늘나라에 가셔야 하는 날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을 것이다. 그만큼 상주의 역할을 해야 할 날이 머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부모님에게는 내가 유독 아픈 손가락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먹고 사는데 급급해 변변한 효도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태로 부모님이 떠나시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크다.

그런데 장례식장들을 다니며 드는 생각은 이대로라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앞이 보이지 않는 나로서는 제대로 된 상주 역할도 하기 어렵겠구나 하는 것이다. 상주 노릇이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인 동시에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효도이기도 할텐데 그것조차 잘 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얼마나 많이 후회가 될까 하는 마음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큰일이 닥쳤을 때 형도 있고 누나도 있어서 그들에게 의지하면 어떻게든 장례 정도는 치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집안 식구들은 나의 장애에 대해 어려서부터 익히 보아 왔기에 잘 알고 있고 친척들 또한 그러해서 내가 상주로서 부족하더라도 충분히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가의 경우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우선 아내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큰일이 닥치면 누군가 의지할 형제가 없다. 게다가 친지들도 나의 장애에 대해서까지 속속들이 알지는 못한다. 내가 하는 실수가 고스란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나 이상한 모습, 또는 불효막심한 정도로 비추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귀한 딸인데 반대하던 결혼 허락하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를 생각하면 사소한 것 하나 까지도 허투루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장례와 같은 중요한 의식은 더욱 극진히 모셔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하다. 그렇기에 상주역할에 대한 부담과 두려움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막상 큰일이 닥치면 다 해 내게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또, 요즘은 상조회사다 장례지도사다 잘 되어 있어서 예전처럼 많이 알고 있어야 하는게 아니고 실제로 다 알고 큰일 치르는 사람조차 없다고도 이야기들 한다.

하지만, 원래 천성이 안해도 될 걱정을 늘 달고 사는지라 이 문제에 대해서도 수시로 걱정하곤 한다. 일단 조문객들과 일일이 인사를 하는것에서부터 나는 누가 누군지 알아 볼 수가 없다는 점에서부터 한계가 있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들고 이동하는데에도 문제가 있다. 대학 때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가 있어 그 후배의 장례를 치르며 영정사진을 들고 이동을 했었는데 그때와 비교해 보면 지금은 시력저하가 크게 진행되어 버려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이동하는게 쉽지 않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들이 다 녹록치 않은 일들로만 느껴진다.

과연 이것은 나만이 느끼는 두려움과 부담일까?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많은 이들이 부모의 장례를 생각하면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곤 할 것이다. 특히 저출산 시대에 태어나 형제자매가 없이 혼자 자란 이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러한 고민들이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활동보조인, 근로지원인 등 여러 가지 지원제도들이 시행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한 단계 향상된 형태의 서비스로 장례지원 등도 고려해 보면 어떨까?

장례지원하면 단순히 장례식에 소요되는 비용의 지원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장례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장애인들을 위한 지원제도를 시행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장례 절차와 그 과정에서의 역할 등에 대해 미리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과거에는 장애를 가진 자녀가 태어나면 친지들이나 이웃에게 숨기기도 하고 장애를 가진 자녀를 출산한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장애아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들도 당당히 요구할 부분들은 요구하는 사회가 되었다. 그런만큼 자녀들에게도 비장애 자녀를 가진 부모들과 동등하게 자녀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있다.

이제는 장애 유무를 떠나서 모든 부모에게는 자녀가, 또 모든 자녀에게는 부모가 유일무이한 소중한 존재나 다름이 없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와 역할을 반영한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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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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