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채비’ 포스터들 ⓒ네이버 영화 캡처

나에게 자폐성 장애가 있음을 안 순간부터 1년도 채 안 돼 영화 ‘말아톤’이 전국 극장가에 상영되었다.

그 당시 영화를 관람했는데 주인공 초원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을 보며 같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공감했다. 또한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 부양에 지쳐 ‘자식보다 하루 늦게 죽는 게 소원’이라던 초원 엄마의 우울한 마음을 보고는 슬픔이 밀려왔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장애인은 감동을 주어야 하고 장애란 극복의 대상이라는 메시지를 이 영화에서 약간은 던져주었다는 느낌이 들어 아쉬움이 남는다.

이후 연구소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권리와 책임, 의무를 조금씩 배우고 퇴사하면서 사람들과 계속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12년이 흘러 2017년이 되었다. 올해 다시 발달장애인이 주인공인 영화가 전국 극장가에 찾아왔다. 영화 ‘채비’다.

수도권 자폐성 장애인 자조집단 estas에 있는 한 회원이 필자에게 전화하며 ‘채비’관람 소감을 전했다. 들으며 그 영화에 조금 관심이 갔었고, 이후 보러 가자는 결정을 내리며 영화 ‘채비’를 관람하러 영화관에 갔다.

영화 ‘채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애순(좌측)이 인규의 사탕을 뺏어 먹는 즐거움에 인규(우측)는 안 된다며 달라고 하는 모습 ⓒYoutube 영화 캡처

주인공 인규(김성균 분)는 지적장애가 있으며, 노래와 춤추기, 먹는 것과 노는 것을 엄청 좋아한다. 이런 인규를 보는 엄마 애순(고두심 분)은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인규를 닦달한다. 하지만 인규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춤을 추며 힘들어하는 애순을 위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규의 누나 문경(유선 분)은 남편 사업자금을 구하려고 애순의 도움을 요청하나 애순은 인규를 위한 돈이라고 하며 문경의 요청을 거절한다. 문경은 차별과 이로 인한 섭섭함을 느낀다.

손 떨림 때문에 종종 약국을 방문했던 애순은 어느 날 아침 두통과 어지러움으로 쓰러졌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결과 뇌종양 3기로 판명돼 애순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이에 애순은 인규와 같이 애순 사후에 인규가 거처할 곳을 알아보러 시설을 찾아다녔다. 애순과 인규는 어느 시설에 도착했는데 인규가 시설 거주인의 모습에 활기가 없고 무료함을 본 후로 시설에서 살기 싫다고 애순에게 말했다, 애순은 이에 동의하며 집으로 같이 갔다.

생활시설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인규(좌측), 애순이 보게 된 장애인 생활시설 안의 사람들 모습(우측) ⓒYoutube 영화 캡처

이후 애순은 인규가 혼자서 자립하도록 내가 가르칠 테니 도움 달라고 구청 박 계장(박철민 분)에게 얘기한다. 박 계장은 자립에 1~2년 걸리고 자립교육을 당장 받을만한 데가 없다고 했지만 애순은 그 사정을 알고 인규를 내가 제일 잘 아니 도와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박 계장은 애순의 요청을 수락했고 후에 인규의 자립생활에 필요한 자료들을 애순에게 준다.

집으로 들어간 애순은 인규에게 엄마가 멀리 놀러가야 하기에 이제부터 인규 혼자서 밥, 빨래, 청소 다 해야 한다며 인규를 설득한다. 처음에 인규는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애순은 인규가 잔소리 안 듣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을 좋아하니 얼마나 좋냐며 인규를 성공적으로 설득한다.

이후 애순은 인규에게 자립생활을 가르치지만 인규가 자기 집으로 가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반응을 경험하며 자립생활 교육에 애를 먹는다. 그래서 자립생활 교육에 대해 고민하다 박 계장이 준 자립생활 관련 책을 본다.

그 이후부터 인규 눈높이에 맞는 자립생활 교육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애순은 집을 가는 방법을 그림과 쉽고 큰 글씨로 표현하는 등의 노력을 한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고 인규와 실랑이도 약간 있었지만 계란프라이서부터 시작해 밥 짓기, 빨래 등에서 조금씩 성공을 경험해간다. 몇 달의 노력 끝에 인규는 밥상을 스스로 차리며 애순을 흐뭇하게 한다.

이후 인규는 스스로 밥 짓고 빨래하고 직장생활에서도 잘 적응하고 서툴지만 다른 사람과 잘 사귀려는 노력을 하는 등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려고 한다. 그러던 도중 엄마는 쓰려져 병원에 입원한다.

애순이 자립생활 관련 책에 밑줄을 긋는 모습(왼쪽 위), 인규가 집을 잘 찾기 위해 애순이 인규에게 이해하기 쉬운 집 찾기 방법을 공책에 쓰고 그리는 모습(오른쪽 위), 밥솥 동작순서를 애순이 번호로 표시해 붙이는 모습(왼쪽 아래), 애순이 만든 이해하기 쉬운 집 찾기 방법에 따라 인규가 버스에서 내리려 하는 모습(오른쪽 아래) ⓒYoutube 영화 캡처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인규가 사람들에게 인사 안 하고 뜨거운 것에 데여 병원에서 붕대를 감았다. 그 사실을 애순이 병원에서 알아 인규에게 달려갔다. 애순이 놀러가면 혼자서 다해야 한다 하자 인규는 말썽 피우면 엄마가 와서 다해달라는 말을 한다.

이에 애순은 멀리 놀러 갔다가 돌아오는 걸 죽음으로 아는 인규에게 죽음의 의미를 알리려고 병든 새끼병아리 보기, 장례 관련 양복 맞춰 입기, 장례식장 다녀오기 등을 감행한다. 그 과정 속에서 애순은 죽음은 그냥 없어지는 거고,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인규에게 말한다.

인규는 충격 속에 거리로 뛰쳐나갔는데 애순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인규를 찾았다. 인규는 절대 죽지 말라며 애순에게 말했고, 애순은 인규를 진정시켰다.

그 후 애순은 인규 몫의 돈 가운데 일부를 문경이 쓰고 일부는 인규를 위해 사용하며 가끔 인규 모습을 봐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세상을 떠난다. 장례식장에서 울지 말라는 엄마와의 약속을 인규는 지키며 엄마를 웃는 모습으로 배웅하나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이후 인규는 등산모임도 하고 집에서 밥 짓고 빨래 등을 하며 빵 가게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등 당당하게 사회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게 된다. 그러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씩씩하게 웃으면서 엄마를 배웅하라고 말하는 애순의 모습(좌측), 장례식에서 애순을 웃으면서 보내는 인규의 모습(우측) ⓒYoutube 영화 캡처

이 영화를 보며 필자는 인규가 시설에서 살기 싫다고 말한 부분에 관심이 갔었다. 개인외출을 할 수 없음은 물론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하는 시설이라는 구조 속에 발달장애인들은 숨이 막힌다.

자기옹호 체계가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발달장애인이 말을 듣지 않으면 종사자들이 훈육과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시설 안에서 발달장애인을 두들겨 패는 일이 있었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계속 접한다.

지역사회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하도 그런 것을 접하다 보니 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에게는 폭력이 일상화된다. 폭력을 수용하며 삶은 무기력해지고 비참해진다. 이런 삶을 누가 살고 싶겠는가? 발달장애인도 이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

얼마 전 제5회 피플퍼스트대회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은 말로만 시설 폐쇄 말고 행동으로 보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발달장애인의 사회통합과 행복한 삶을 위해 시설폐쇄는 꼭 필수라 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재차 말하고 싶다.

제5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 제2일째 행사 전경. 행사 시작할 때의 공연(좌측), 피플퍼스트대회에 집중하고 있는 청중들(우측) ⓒ이원무

그리고 인규가 지역사회에서 혼자 살 수 있도록 밥 짓는 것, 집 찾아가기 등에서 애순이 인규에게 이해하기 쉬운 말과 그림 등의 방법을 썼다. 이를 보면서 발달장애인에게 알기 쉬운 정보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지를 다시 한 번 새삼스레 보게 되었다.

또한 인규가 직장에서 처음에는 잘하지 못해 애순이 간섭한다. 하지만 얼마 후 애순이 인규가 느리게 일하는 모습을 보고서 간섭을 하려다 인규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가 ‘그냥 인규를 믿어주시고 지켜봐 주세요.’라고 애순에게 얘기한다.

이후 애순은 혼자서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인규를 믿으며 응원했고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것이 결국엔 인규가 혼자서 자립해 살 수 있는 자양분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일이나 의사결정에 있어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시간을 주고 발달장애인의 속도를 존중해야 한다. 할 수 있다고 믿어주고 자유롭게 풀어주며 내적동기가 생기게끔 지원해야 한다. 그럴 때 발달장애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일은 반드시 해내고 자립할 수 있는 능력자다.

이것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자기옹호인 것이다. 자립을 위해 발달장애인의 속도 존중과 내적동기 형성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원자들이 자기옹호를 제대로 잘 배워야 함을 이 영화에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위에서 말한 알기 쉬운 정보제공도 필요하다.

또한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실수하고 실패하며 배우는 권리가 있는 주체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는 물론 발달장애인을 자녀로 둔 부모들과 가족들은 늘 항상 명심하고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점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인규가 빵 만드는 것을 간섭하려는 애순(좌측)과 간섭을 제지하며 지켜봐달라고 말하는 인규 담당 사회복지사(우측)의 모습 ⓒYoutube 영화캡처

이외에도 박 계장은 인규를 위해 등산모임에 신청하는 등 자기 일처럼 인규를 챙기기에 바쁘다. 이런 장면은 현장중심, 이용자 중심의 행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용자 중심의 행정은 발달장애인에게 지역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데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이 영화를 두고 판타지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사실 박 계장처럼 이용자 중심의 행정을 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공무원들은 1~2년마다 부서이동을 하며 평생 한 부서에서 일하지 않는다.

새로 장애인복지과에 온 공무원은 장애인에 대해 늘 모르기만 하는 현실이라 장애아동 부모들 사이에선 ‘새로 온 공무원을 가르쳐가며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 한다. 구청에 가면 ‘저희 담당 아닌데요.’하며 행정편의주의에 사로잡힌 공무원들이 많다는 얘기도 접한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장애인행정에 있어선 제공자 중심인 것이다.

자립생활 관련 책을 애순(좌측)에게 전달하는 박 계장(우측)의 모습 ⓒYoutube 영화캡처

또한 인규는 몇 달 안에 자립생활 기술을 배웠지만 보통 평범한 발달장애인들은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배우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은 소수에 불과하다. 빠른 시간 안에 자립기술을 배울 수 있는 발달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그것이 어려워 전 생애에 걸쳐 자립에 대해 배워야 하는 발달장애인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이 영화를 판타지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현실 앞에서 넋 놓고 앉아만 있을 것인가?

지금까지 발달장애인에게는 능력 없고 보호가 늘 필요하고 위험한 존재라는 편견과 인식이 늘 뒤따라 다녔다. 위험한 존재라는 인식 하에 시설에 가두어 발달장애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잔인한 모습은 위에도 말했듯이 뉴스에 오르곤 한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에게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기옹호 체계는 부재하고 알기 쉬운 정보 등의 지원은 부족했으며 제공자 중심의 행정은 늘 있어 오며 발달장애인을 힘들게 했다. 실수와 실패할 권리는 인정하지 않고 온실 속의 화초로 과보호하려는 부모들의 인식에 대해서도 자주 접했다.

그래서 이제는 이러한 현실들을 뛰어넘고 인규와 같은 발달장애인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알기 쉬운 정보, 이용자 중심의 행정과 체계적인 자기옹호, 시설 폐쇄가 필요함을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애순이 세상을 떠난 후 당당하게 자립생활을 하는 인규가 산 정상에 올라가고는 ‘엄마’하며 외치는 모습 ⓒYoutube 영화캡처

이 영화에서는 이외에도 발달장애인과 관련해 ‘발달장애인은 위험해서 집에 있어야 한다.’는 우리사회의 천박한 인식을 과장되지 않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가족지원체계가 부실한 현실이라 자녀가 죽은 바로 다음 날 죽어야겠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규하는 부모의 심정도 애순을 통해 솔직담백하게 보여준다.

발달장애인은 무조건 도와주어야 하고 시혜와 동정의 존재라는 메시지는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면서 발달장애인의 지역사회 통합을 위한 체계적 자기옹호의 필요성 등의 지향점을 보여주었기에 이 영화는 발달장애인 인식제고에는 상당히 도움이 되는 영화라 생각한다. 시간이 될 때 보면서 의미를 찬찬히 음미하시면 좋겠다.

알기 쉬운 정보와 체계적인 자기옹호, 시설 폐쇄 등의 국가적 노력과 발달장애인 당사자 자신의 개인적인 의지와 노력이 어우러지는 것. 이것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채비(준비)인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다음의 메시지가 우리 사회에 현실로 다가오길 간절히 바래본다.

'발달장애인도 사람답게 살자고요!'

그나저나 나도 내 장래를 위한 채비를 슬슬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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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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