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를 나누고 있는 다영과 관찬. ⓒ최선영

12월의 잿빛 하늘은 금방이라도 하얀 눈꽃을 내려줄 것처럼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있습니다.

거리 곳곳을 스며드는 크리스마스캐럴은 차가운 바람의 심술궂은 장난질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따스하게 만드는 설렘을 선물합니다.

성탄절 준비가 한창인 12월의 교회는 사람들의 온기로 차가운 거리와 달리 따스함이 넘쳐납니다.

“오빠 안녕하세요”

“다영이 왔구나 안녕”

다영과 관찬은 미소를 가득 담은 포근한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다영은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관찬이 잘 보이도록 펼쳐 줍니다. 말씀을 노트북으로 속기 통역하며 시청각 중복 장애인 관찬이 예배에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다영아 고마워 덕분에 목사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처럼 많은 은혜를 받을 수 있었어”

“아니에요 오빠, 속기 통역을 하다 보면 잘 전달해야 하니까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서 은혜도 많이 받고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해요”

관찬의 고마움에 다영은 늘 감사의 인사를 다시 건네며 예쁜 미소를 보냅니다.

교회에서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관찬의 활동보조를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관찬의 눈과 귀가 되어 줍니다.

통역사가 꿈인 다영은 꼭 입으로 전달하는 것만이 통역사가 아니라 자판이나 손가락으로도 통역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관찬을 도우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보는 입장에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몸과 마음이 되어 그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고 필요를 채워주려고 늘 고민하며 마음을 쏟았습니다.

다영은 관찬의 활동보조를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생각하지 못한 좋은 경험을 하며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배우고 채운다는 마음이 들어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불어불문학과인 다영은 영어도 수준급이라 시청각장애학생들을 위해 영어 교재를 대체 도서로 제작하려고 방문하는 외국인 교수님들 통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 한다는 소문이 장애청년 드림 팀에도 전해졌고 영어 통역 담당자로 팀에 합류하게 되어 미국을 방문합니다.

그해 장애청년드림 팀의 주제는 ‘장애인 입양’이었습니다. 미국을 방문한 다영은 그곳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현실과 많이 다른 미국은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장애인을 대하는 생각과 마음이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국 장애 아동을 입양한 미국의 가정과 기관에서는 생명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귀하게 여기고 대하는 그들의 시선에 마음이 뭉클거렸습니다.

한국 장애 아동을 입양한 미국 가정. ⓒ최선영

친자식이 네 명 있지만 16년 전부터 한국 장애 아동을 다섯 명이나 입양한 가정은 '장애는 입양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해 다영의 마음을 더 진하게 울려주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 와보니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영은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이 많이 다른 미국의 가정과 기관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다음은 청각 장애인 학교로 가는 거죠?”

“네 우리와 어떤 점이 다른지 장단점들을 보고 느끼는 시간 되었으면 좋겠어요”

청각장애인 학교를 들어서자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하고 목발을 짚은 안내 선생님이 다영의 일행을 반겨주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장애인이 되면서 장애인의 불편함을 더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하나 되어 함께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래... 정말 우린 다 장애인이 될 수 있어...

그 사실을 안다면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생각도 많이 바뀌지 않을까... 말로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도 난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마음가짐도 부족한 것 같아...”

다영은 일시적 장애인이 되어보고서야 장애인의 불편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며 모두가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장애인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프랑스어를 전공했다는 다영의 말에 그가 수화가 처음 만들어진 나라가 프랑스라고 하며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수화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귀하게 쓰임 받기를 바란다며 다영을 격려해주었습니다.

수화가 처음으로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는 그의 말에 다영은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뜨거워지며 꼭 필요한 곳에 쓰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을 다녀온 후 다영은 더 깊은 이해와 애정으로 장애인과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되려고 했고 관찬의 활동보조를 하는데도 더 깊은 이해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 활동보조라는 보람 있는 일이 다영의 부모님에게는 졸업을 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여서 걱정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활동보조라는 명칭 대신 다른 적절한 이름으로 불렸다면 부모님의 시선이 조금은 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애인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지원해주는 그들의 열정과 수고에 비해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적절하지 않고 급여 문제도 턱없이 작아 보이는 현실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영은 묵묵히 주어진 길을 걸었습니다.

늘 마음 따뜻한 다영이의 미소를 보며 관찬은 ‘천사의 미소’라고 불러줍니다. 그럴 때마다 다영은 쑥스럽다는 듯 얼굴이 붉어집니다.

'천사의 미소'를 지닌 다영의 생일. 관찬의 눈과 귀가 되어 준 다영을 위해 관찬은 멋진 첼로 연주로 축하해줍니다. 12월 24일이 생일인 다영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처럼 함께 하는 모든 이들에게 늘 환한 미소를 보냅니다.

작은 인연은 깊은 우정이 되어 1년 동안 이어졌고 관찬이 조교 계약이 만료되면서 다영이도 활동보조 일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다영아 너와 함께 하기 전에도 여러 활동보조인이 있었지만 최고의 파트너는 다영이 너야 성실하게 늘 그 자리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채워줘서 고마워"

다영의 결혼식에 축가 연주를 하는 관찬. ⓒ최선영

다영을 고마워하는 관찬이 다영의 결혼식에도 축가 연주를 합니다.

다영은 많은 친구들이 축가를 해주겠다고 했지만 함께 하며 친 오빠처럼 지낸 관찬의 축하를 누구보다 제일 먼저 받고 싶었습니다.

특수학교 초등교사인 남편 태광은 누구보다 장애 아동을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습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같은 시선을 가진 두 사람의 결혼을 더 많이 축하해 줄 관찬의 축가 연주에 큰 의미를 둔 다영은 기쁜 마음으로 첼로 연주로 축하해준 관찬에게 고마웠습니다.

예쁜 두 사람을 축하해줄 수 있어서 관찬의 마음도 누구보다 기뻤습니다.

​다영은 결혼 후에도 늘 장애인에 대한 깊은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와 그날의 하루를 풀어 내 보이는 남편 태광의 이야기 속에 장애학생 한 명 한 명을 향한 진심과 깊은 사랑,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너무도 절절하게 느껴져서 매일매일이 감동이고 활동보조인으로 장애인과 함께 했던 모든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장애 아동을 끝까지 기다려주고 믿어주는 모습에 태광이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로부터 받는 기쁨이 더 커서 항상 아이들을 보면 고마운 마음이 든다는 말에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오빠 말을 듣고 있으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고 내 마음도 더 깊어지는 것 같아..”

“아니야 네가 교회에서 또 학교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깊은 감동을 받았어”

“우리는 더불어 살아가고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들인 것 같아. 세상에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각자의 독특한 개성은 모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

내가 잘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 역시 많은 것처럼 세상 모든 사람도 그럴 거야.

내가 누구에게 이해받고 싶다면 나부터 누구든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지금 오빠의 학교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활동보조를 하며 어떤 부분은 부족했다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도 들어.

다름을 인정하고 모든 사람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는 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길인 것 같아”

다영의 말에 태광은 기특하다는 듯 다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환한 미소를 보냅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애써 많은 장식품을 달지 않아도, 값비싼 옷이나 짙은 화장으로 꾸미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바르고 진실된 마음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미소 지어질 때 자연스레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많은 대가를 받지 않아도 활동보조인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으로 불려도 깊이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편견 없는 시선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운 미소를 보내는 다영의 그 미소가 같은 시선을 가진 태광의 마음을 사랑으로 물들게 했습니다.

그 미소는 1년이라는 긴 시간 한 사람의 눈과 귀가 되어 불편 없는 생활을 지원했습니다.

미소를 보내는 다영. ⓒ최선영

다영. 그녀의 미소는 '천사의 미소'입니다.

아름다운 미소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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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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