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둔 엄마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겠지만, 유아기 남자 아이들은 열이면 열 자동차, 기차, 비행기 등, 세상 모든 탈것들에 매료되어 정신줄을 놓는 시기가 있다.

3년째 기차에 매료된 이응이. ⓒ은진슬

이응이 역시 3년째 기차에 매료되어 지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는 KTX, ITX새마을, 누리로, 무궁화호는 물론, 서해금빛열차, 남도S트레인, DMZ트레인, 통근열차 등등, 온갖 이채로운 기차들까지 함께 타보며 섭렵 중이다.

아이들의 이런 특징 때문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탈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 애니메이션들도 참 많다.

꼬마버스 타요는 서울시의 버스들이, 토마스와 친구들은 영국의 오래된 증기기관차들이, 카봇은 현대자동차들이, 또봇은 기아자동차들이 등장하여 아이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유아기 남아들의 자동차 사랑은 점점 더 강화되어가며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는 강력한 고조기가 존재하는 것 같기도 하다.

기아자동차와, 현대자동차를 모티브로 한 애니메이션 또봇과 카봇 ⓒ투니버스, KBS

내가 이응이 또래였을 때는, 우리 나라가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았기에, 자동차를 소유한 가정이 흔하지도 않았으려니와, 내가 기억하는 우리 아빠의 첫차인 포니2 역시, 그저 현실에 실존하는 아빠의 차일 뿐, 동화책이나 친숙한 TV만화에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은 어떠한가?

10여년 전쯤, 기아자동차를 모델로 하는 애니메이션 또봇이 나와 대유행을 하더니, 얼마 후엔 이에 질세라 현대자동차를 모델로 하는 카봇이 등장했다.

이들은 실존하는 엄마 아빠, 삼촌, 이모의 자동차였기에 아이들의 마음을 좀 더 쉽게 얻을 수 있었고, 저 멀리 상상의 세계, 이상의 세계가 아닌,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보고 만지며 탈 수도 있는 존재라는 강력한 매력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지금까지 롱런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러니, 4, 5세만 되어도, 아이들은 ‘우리차’는 카봇에 나오는 누구고, 친구네 집 차는 또봇에 나오는 누구라는 걸 알며, 서로 이야기 하게 된다.

이응이 역시, 5세가 되어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이 엄마차는 카봇에 나오는 누구고, **이아빠차는 또봇에 나오는 누구라는 걸 얘기하곤 했다. 때때로, 유치원 하원 후 친구 엄마차를 타고 어딘가 함께 가기도 했다.

이맘때쯤(?), 나는 아이가 언젠가 우리 집엔 왜 차가 없냐고 물어볼 거라고 예상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아들은 내게 그런 질문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좀 이상하다 여기기도 했지만, 이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집에 차가 없는 상태로 살았으니 어른인 내 생각보다는 크게 박탈감이나 결핍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라 여기며, 마음의 준비만 하고 있었다.

'우리차'를 가질 수 없어 속상해하던 아이에게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멋진 차를 선물해주기로 했다. ⓒ은진슬

그러던 어느 날…나는 지금도 그 날을 선명하게 복기할 수 있다. 그 날은 2015년 5월 석가탄신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휴일을 맞아 나들이 삼아 맛난 것도 먹고 필요한 물건도 몇 가지 구입하고자 집 근처 백화점에 갔다.

당시, 그 백화점의 주인이 현대로 막 바뀐 상황이라, 백화점 옆에는 현대차 경품이벤트와 함께 임시로 마련된 제법 큰 현대자동차 전시장이 갖추어져 있었다. 당연히 아들은 백화점 입구의 멋진 자동차 전시장을 발견하고는, 거의 넋을 놓고 동경의 눈길을 가득 담아 자동차들을 바라보았다.

예상도 못했던 곳에 생긴 전시장, 기왕 여러 자동차들이 모여 있으며, 아들이 저렇게 관심을 보이니, 들어가서 구경을 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들은 자동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를 않았다. 몸도 날렵하고 동작도 빨라 늘 쫓아다니기 버거운 LTE급 5세 어린이 이응이가…

내가 이응이에게 말했다.

‘우아! 멋지다. 이응아! 저기 카봇에 나오는 자동차들 엄청 많네. 우리 같이 들어가서 구경할까?’

‘…’

‘왜? 이응이는 안 보고 싶어?’

‘…’

아이는 뭔가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 어렵거나,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나는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눈높이를 맞추며, 뭔가 불편한 아이 맘을 조심스레 노크해 보기로 했다.

‘이응이 여기서 구경하고 이야기는 하면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아? 엄마는 들어가서 보면 더 재미있을거 같은데…’

‘안 가고 싶어. 저기 가도 우리는 어차피 차를 가질 수가 없잖아.’

‘…’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저거였구나!’ 싶었다. 가슴이 뻐근하고 아릿했다. 하지만, 아픈 내 맘을 처치하는 건, 아이 잠들고 할 일.

지금은 어렵게 꺼내는 아이의 마음에 집중할 때다.

‘아! 이응이가 그래서 안 들어가고 싶었구나! 엄마랑 아빠가 모두 눈이 나빠서 운전을 할 수 없으니까 우리는 차가 없지. 친구들은 다 집에 차가 있는데, 이응이는 차가 없어서 참 속상하겠구나! 엄마가 많이 미안하네!’

‘엄마, 우리도 저기서 차사서 이모가 운전해주면 안돼? 아니면, 외삼촌이 해 주면 안돼?’

‘어쩌지? 그러면 좋겠지만, 이모는 짧은 시간만 우리 집에 오시고, 외삼촌도 멀리 있는 회사에서 일하시고 바쁘시니까 그렇게 하긴 어렵거든.’

아이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 차를 가질 방법을 생각하며 그 간 묻어왔던 바람을 가득 담아 처음으로 애원했다

‘이응이 많이 슬프구나! 엄마도 많이 속상하고 미안하네. 그럼, 우리 이렇게 하면 어떨까?’

‘…?’

나는 최대한 신나는 목소리로 기대감을 가득 담아 말했다.

‘엄마 아빠는 눈이 나빠서 운전을 할 수 없지만, 이응이는 만 18세가 되면 운전을 할 수 있거든. 보통, 다른 친구들은 이 때 엄마가 바로 차를 사 주지는 않지만, 이응이는 우리 집에 차가 없이 지냈으니까, 이응이가 운전면허를 따게 되면 엄마가 바로 멋진 차를 선물로 사줄게. 어때?’

‘좋아! 나 그럼 무슨 차 살까? **이 엄마차 같은 카봇에 나오는 소나타? 아니면 큰이모차 같은 산타페?’

역시, 다섯 살 아이는 아이였다. 다행히도 나의 진정성을 가득 담은 달콤한 말에 기분이 한결 나아져서 남은 쇼핑과 외식은 즐겁게 할 수 있었으니까.

혹자는 엄마가 좀 예민한 거 아니냐, 뭐, 상황이 안 되어 자동차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이렇게 유난하게 받아들이며 큰 문제로 여기나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그렇지가 않다. 내가 이응이 나이였을 때야, 집에 자동차가 없는 경우가 훨씬 많았기에, 집에 차가 없다는 것이 그리 큰 문제도, 극도로 박탈감을 느낄 상황도 아니었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한국 사회에서, 가족의 자동차는 이제 더 이상 부를 과시하는 사치재가 아닌, 일상소비재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이 다 가진 그 차가 우리 집에만 없다.

친구들은 아빠, 엄마가 운전하는 ‘우리차’를 타고 놀러 가는데, 나만 늘 ‘시각장애인 이동지원센터’라고 쓰여진 택시, 버스, 기차,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당연히, 이 다름이 마냥 아무렇지도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인 나 또한, 아무리 평소에는 이런 것이 아무런 상관도 없고, 문제도 되지 않던 자존감의 소유자라 해도, 아이의 이런 상황과 감정을 마주해야 할 때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아프고 나 자신이 조금은 작아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의젓한 아이는, 스스로 상황을 잘 갈무리하며 받아들이고, 엄마 아빠 마음 안 아프게 말할 줄도 아니 고맙고 또 고마울 뿐…

자기가 이다음에 커서 운전하게 되면, 엄마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다 같이 가줄거란다.(나중엔 부도수표가 될지라도, So sweet!^^ 이 맛에 엄마 한다.)

이제야 자동차를 조금은 더 편한하게 바라볼 수 있는 아이와 함께 다녀온 현대모토스튜디오. ⓒ은진슬

지난 토요일,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일산 현대모토스튜디오에 다녀왔다. 아이가 그 동안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자동차박물관 관람은 은근히 피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간 기차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몇주전부터 아이는 자동차 관련 책에 엄청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특유의 몰입적 독서를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동차를 구경할 수 있는 장소에 자기를 데려가 주었으면 좋겠다고 처음으로 요구한 것이다.

나는 아이의 이 말에 너무 기뻐서 바로 예전에 미리 조사해 두었던 현대모토스튜디오 이야기를 꺼내니, 당장 내일 가잔다.

그렇다. 아이는 이제야 자동차를 조금은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비록, 내가 가질 수는 없어도, 동경하고 타 보고 만져보며 즐길 마음의 준비가 된 것이었다.

아이는 또 이렇게 한 뼘 성장한 것이다.

현대모토스튜디오는 자동차를 보고, 듣고, 느끼는 새로운 여행을 선사한다. ⓒ은진슬

현대모토스튜디오는, 자동차를 보고, 듣고, 느끼는 새로운 여행이라는 모토로 현대자동차그룹이 운영하는 전시관이다.

박물관은, 철광석에서 철판을 만들고, 도색하고, 부품을 조립하면서 한 대의 자동차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제조공정을 다양한 시뮬레이션과 전시물 등을 통해 실감나게 체험해 볼 수 있는 제조공정 부분과, 에어벡 제작, 충돌실험, 공력설계, 자동차 디자인 및 사운드디자인 등등, 더 안전하고 멋진 자동차를 만들기 위한 연구가 이루어지는 실제 연구소 체험을 해 볼 수 있는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응이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인 나도 무척 재미있게 자동차 제조공정과 작동원리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흥미진진하고도 유익한 박물관이었다.

1층 로비에는 현대자동차의 주력모델들이 전시되어 있어, 어른들도 아이들도 만져보고, 타보면서 차 안의 부품들에 대한 설명도 들을 수 있는 전시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이응이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여, 이 공간을 즐기도록 했다.

누구보다 멋진 청년으로 자란 내 아이가 멋진 자동차를 타고 엄마를 데리러 오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은진슬

‘우리 차’가 없어, 자유롭게 차를 타 보고 만져볼 기회가 없는 아이를 위해, 눈치 보지 않고, 질릴 때까지 만져보고 타보고 사진 찍고 즐기도록 도와주었다.

아이는 책에서 봤던 자동차와 실제 모델들을 비교해 보기도 하고, 즐겁게 사진도 찍으며 재미있게 현대모토스튜디오를 즐겼다.

8세가 되면, 박물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체험활동을 더 심층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여가 가능하다고 하니, 아이는 여덟 살 되면 또 오자고 한다.

즐거운 박물관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산에서 합정역으로 들어오는 데만 한 시간 30분이 걸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했다. ‘아이가 이제 또 하나의 다름과 결핍을 의젓하게 소화해 내고 한 뼘 더 성장했구나!’라고…

그리고 또 상상해 보았다.

누구보다도 의젓하고 멋진 청년으로 자란 내 아이가, 멋진 자동차를 타고 엄마를 데리러 오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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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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