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 입주자는 아플 권리가 있습니다.

시설은 입주자의 집이고, 입주자가 자기 삶을 살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시설은 병원이 아닙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고 관리를 잘 하도록 지원하는 곳입니다. 질병의 치료와 관리는 병․의원, 약국, 보건소에 부탁해야죠. 그런 곳을 이용하게 주선합니다.

당사자가 병의 주인 노릇하게 돕습니다. 의사 앞에 당사자를 세우고, 당사자가 증상을 말하게 합니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도 의사 앞에는 당사자를 세웁니다. 부족한 만큼 시설 직원이 설명하면 됩니다. 의사가 당사자를 상대하게, 약사가 당사자를 상대하게, 원무과 직원이 당사자를 상대하게 돕습니다.

부모형제가 상관하고 감당하고 책임질 것은 부모형제와 의논하고 부탁합니다. 병의 종류와 정도, 치료와 관리를 부모형제가 알게 합니다. 접수, 진료, 수술, 간호, 간병, 퇴원을 부모형제가 감당하게 합니다. 아들이 시설에 살아서 어머니가 아들 옷 치수를 모른다면? 시설에서 부모형제를 잘 돕는다는 건 부모형제의 몫을 부모형제가 잘 감당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기쁨 슬픔 수고 보람 고뇌 눈물까지도 돌려드려야 합니다.

입주자의 질병에 대한 시설의 책임은, 당사자가 병의 주인 노릇 하게 했느냐, 당사자를 의사 앞에 세웠느냐, 부모형제가 그 몫을 감당하게 했느냐를 따져야 할 겁니다. 치료와 관리로써 따지면 시설 입주자의 삶이 관리․통제되기 쉽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감당할 수 없는 아픔입니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플 수 있다는 이유로, 시설 입주자의 삶이 관리․통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주시설이라지만 중증의 질병을 앓는 입주자가 있습니다. 숨소리조차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분, 온도와 습도와 먼지조차 신경 써야 하는 분, 물 한 모금도 조심스러운 분이 있죠. 이런 분은 잘 살피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대체로 시설에서 잘 살핍니다. 잘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시설 입주자의 아픔이, 여느 환자가 병을 품은 채 일상생활을 감당하는 그런 정도라면, 여느 사람이 아픔을 감수하고 삶을 사는 그 정도라면, 시설 입주자도 그만큼 활동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프다고, 아플 수도 있다며 관리․통제하는 잣대가 너무 엄격해 보입니다.

식단과 식사량 관리, 비만 관리, 흡연과 음주 통제, 커피 초콜릿 금지, 야식 통제, 외출 제한, 프로그램 제외… 가만히 있으라…. 여느 사람 정도로 권하면 좋겠는데, 권해도 안 되면 당사자와 부모형제와 의사와 의논하면 좋겠는데, 어떤 경우는 폭력처럼 보입니다.

시설 직원이 의사나 약사나 부모인 양 관리하거나 제약한다면, 글쎄요, 그럴 권한이 시설 직원에게 있을까 싶습니다. 시설 간호사라 하더라도, 시설은 병원이 아니니 조심스럽지 않을까요?

아프다는 것도 삶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아프다는 이유로, 아플 수도 있다는 이유로, 질병을 관리한다는 명분으로, 생명 존중을 명분으로 삶조차 관리․통제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 존중을 다툴 만한 시설 입주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생명 존중도 삶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을까요? 관리․통제가 시설 입주자를 온실의 화초처럼 시설 안의 삶으로 한정하는 건 아닐까요?

입주자가 자기 삶을 살도록 도우면 오히려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직장 다니고 학원 다니고 동아리 활동하며, 자기 삶을 가꾸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 건강에 유익하지 않을까요? 그러다가 다치거나 아플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게 삶이지 않을까요? 그래야, 삶이지 않을까요? 삶에는 앓을 시간도 필요하다 합니다.

『 김하인 소설 <국화꽃 향기> 주인공 미주는 위암 말기 환자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끝까지 품위와 자존심과 사랑과 관계와 삶을 지켜 내려 합니다. 그런 미주에게서,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삶이기를 사람이기를 인간이기를 바라는 절규를 들었습니다.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삶이고 싶었다. 그 어떤 이유로든 삶의 주연에서 조연으로 떨어지는 것, 능동적인 의지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바뀌는 것, 그것은 정말로 참기 힘든, 더없이 어리석은 짓이었다.”

사람, 사람, 사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삶’이고 싶었다는 말에, 사람을 ‘사람’으로 지켜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해집니다.』 <복지야성>에서 인용

아플 권리가 있어야 삶이 가능합니다.

아플 수 없는 아픔은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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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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