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을 보내고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는 엄마들. ⓒ최선영

비가 올 듯 흐린 날에는 짙어지는 가을 향기가 더해져 엄마들의 감성을 자극합니다.

서둘러 남편 출근시키고 아이들 학교에 보내고 나면 아내, 엄마가 아닌 여자로 돌아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긴긴 연휴를 숨 가쁘게 보내고 다시 돌아온 일상은 늘 그랬듯이 모닝커피를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이 학교 앞 카페로 모입니다. 약속하지 않아도 시간이 되는 엄마들은 이곳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미리 엄마~ 잘 보내고 왔어요?”

“네 재인 엄마는 힘들었나 보네 살이 쏙~빠졌네~”

며칠 못 본 사이가 길게 느껴질 만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이가 된 이들은 친척 보다 더 가깝고 친구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되었습니다.

“상현 엄마는? 전화해볼까?”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 그냥 기다려 봐요”

가족여행을 다녀온 미리 엄마의 폰에 저장된 사진을 보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재인 엄마가 쏟아놓는 시누들의 얌체 행동을 함께 속상해하며 살짝 쿵 험담도 소곤거려봅니다.

각자가 보낸 연휴를 주고받으며 즐거움은 나눠가지고 안 좋은 기억은 덜어내는 시간을 보냅니다.

미리 엄마 폰이 울립니다. 폰 화면에 상현 엄마라는 이름이 뜹니다.

“네 상현 엄마... 우리 카페에 있어요”

미리 엄마는 상현 엄마의 잠긴 목소리에 이번 추석도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상현 엄마 나오기 힘들면 우리가 갈까?”

“응... 그래주면 고맙고..”

미리 엄마와 재인 엄마는 상현 엄마가 좋아하는 바닐라 라떼를 들고 상현이가 좋아할 만한 과자도 마트에 들러 한 아름 안고 갑니다. 일곱 여덟 엄마들이 늘 모이지만 상현 엄마와 단짝인 미리 엄마와 재인 엄마만 상현 네로 향합니다. 초췌한 얼굴로 서 있는 상현 엄마의 얼굴이 고단해 보입니다.

“상현이는? 학교 갔어요?”

“아니... 여태 떼를 쓰다 막 잠들었어요”

상현이 잠든 방을 바라보며 미리 엄마의 말에 대답합니다. 미리, 재인이와 함께 학교를 다니는 상희의 오빠 상현이는 발달장애 아동입니다.

추석이나 설 명절 집안에 큰 행사가 있는 날이면 늘 상현이 때문에 상현 엄마와 아빠는 고민에 빠집니다.

소리지르고 장난감을 가지려는 상현이. ⓒ최선영

상현이가 사촌들과 놀다가 장난감을 달라고 잡아당기기도 하고 기분 좋으면 소리도 지르고 하다 보니 갓난아기를 둔 둘째 고모는 상현이가 갑자기 큰소리를 지르는 것 때문에 아가가 놀란다고 상현이를 아가 옆에 오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상현이는 좋아한다는 표현을 한 것인데 아무도 이해해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친할머니도 친척들 오면 창피해하는 눈치를 보이며 상현이를 방에 들여보내기도 했습니다.

"지난 명절에는 상현이 데리고 그냥 둘이 집에 있었잖아요...아빠랑 상희만 가고...근데 며느리가 보이지도 않는다며 친척들이 뭐라 하시니까 이번에는 오라고 하셔서 상현이 데리고 갈 건데 이해 좀 해주시고 잘 봐달라고 했더니 상현이는 친정에 맡기고 오라는 거예요"

“어머 아무리 그래도 너무 한다...”

“그러게 더 알뜰 살뜰 보살펴 줘야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말씀하시냐고...”

미리 엄마와 재인 엄마는 말도 안 된다며 속상해하며 한마디씩 건넵니다.

“네... 작은 고모가 아기를 낳고부터 어머님이 더 심하게 그러시네요...친정아버지 이번에도 혈압이 많이 올라서 입원 중이시라 친정에는 데려다 놓을 수 없었어요"

“정말 속상했겠다... 그래서 결국 저번에 말 한 거기로 간 거야?”

재인 엄마가 어깨를 토닥여주며 묻습니다.

"거기라니? 난 못 들었어"

미리 엄마가 상현 엄마를 보며 말합니다.

“상현이 학교 엄마가 소개해준 건데 단기보호시설이라는 게 있더라고요...상현이 같은 애들만 있는 게 아니고 다 큰 어른도 많이 왔었어요. 이번에 가보고 정말 놀랐어요... 하마터면 자리가 없어서 힘들뻔했어요. 맡기고 가려는데 상현이가 울고... 그래서 맘이 정말 힘들었어요“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 우는 상현이. ⓒ최선영

“그래... 상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그랬겠냐고... 에효...”

미리 엄마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많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그런 곳에서 명절을

지내는 것을 알고 나니 마음이 많이 안 좋더라고요...

지난번에 집에서 둘이 지내다 보니 상현이가 많이 심심해했어요

이번 추석에는 송편 먹고 사촌들 본다며 좋아하다

낯선 곳에 데려다 놓으니 많이 울울었어요

소개해준 상현이 학교 친구가 엄마 손잡고 들어오는 거 보고

잠시 울음 그치길래

두 아이를 두고 나오는데 그 엄마도 울고 저도 울고... 그리고 시댁

갔다가 너무 안되겠기에 저희는 다음날 바로 내려왔어요

그러고 나서 상현이가 너무 울고 떼쓰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학교도

안 가려고 해서 그냥 집에 있는 거예요"

“상현이가 놀라고 힘들었겠다...”

재인 엄마가 안쓰러운 듯 상현이 방 쪽을 보며 말합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장애인 가족이 생기면 장애유형을 보고 어디 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려고 하는 열린 마음이 정말 많이 부족한 것 같아 우리는...“

“미리 엄마도 그렇게 말하고 재인 엄마도 그런 마음이지만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단기보호시설에 자리가 없을 정도겠지요...친척들 눈치 보여서 함께 가지 못하고...“

“그래... 저번에 얘기했던 나 사촌동생... 발달장애가 있다고 했던...”

“네 대학 들어가서 잘 다닌다면서요”

상현 엄마가 미리 엄마를 보며 대답을 합니다

“응 걔는 매형이 많이 때리고 하더라고...걔 아빠가 외국에 나가있고 엄마랑 외할머니와 살고 있는데 애가 버릇이 없어서 저렇다며 한 번씩 때리고 혼내고... 그래서 볼 때마다 버릇없어서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주고 그건 폭력이라고 말하는데도 사촌 언니와 이모는 가만 계시는 거예요. 내가 더 이상 뭐라 말을 못하겠더라고... 그냥 안타깝게 바라만 보는 거지... "

“애가 착해서 그 나이에 맞고 있지... 아동학대잖아”

미리 엄마의 말에 재인 엄마도 화가 난다는 듯 말합니다

“조금만 이해하려고 하면 장애 정도에 따라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건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눈높이에서 판단해버리니까 이해도 못해주고 함께 하지도 못하나 봐요“

미리 엄마가 속상한 듯 말을 받습니다. 상현이의 방문이 열리더니 상현이가 밖을 빼꼼히 내다봅니다

“상현이 깼구나... 인사해야지”

엄마의 말을 듣고 상현이 천천히 걸어 나오며 꾸벅 인사를 합니다

“상현이 잘 잤어~ 아줌마가 과자 사 왔는데 먹을래?”

미리 엄마의 말에 상현이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네~~”라고 대답합니다.

“엄마 추석 언제야?”

상현이는 과자를 먹다 말고 추석이 언제냐고 묻습니다.

“아직 한참 남았어”

“추석 싫어 추석 싫어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상현이는 아직 추석이 한참 남았다는 엄마 말에도 추석이 싫다는 말을 곱씹습니다. 상현이의 말에 마음이 짠 해집니다

“상현아... 우리 이번 주말에 재인이랑 미리랑 공원에 놀러 갈래? 상희도 같이”

재인 엄마가 공원에 가자는 말을 듣자 상현이는 소리를 지르며 좋아합니다.

다음날.

엄마들이 학교 앞 카페에 하나둘 들어섭니다.

“상현 엄마... 나 어제 집 가면서 쪼금 반성했어요 괜스레 감성에 젖어서 아내도 엄마도 아닌 난 여자다 하며 그랬는데 상현이 보고 와서는 맘이 좀 그랬어... 우리 사촌동생 생각도 나고 사촌동생이라 하지만... 사실 말로만 몇 마디 거들었을 뿐 해준 것도 없고 내가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에 반성 많이 했어요. 상현 엄마맘 더 헤아리지 못하고..."

“나도 그랬어요... 상현이 보면서도 더 맘 써주지도 못하고 상현 엄마 맘도 다 나눠가지지 못한 것 같고...”

미리 엄마 말에 재인 엄마도 속내를 더 합니다

“아니에요 미리 엄마 재인 엄마가 늘 이해해주고 사실 상현이가 미리랑 재인이 머리카락 잡아당겨서 넘어지게 하고 그랬는데도 다 받아 주고 어린 미리랑 재인이도 싫은 내색 없이 웃으며 아프다 말도 못하고... 그럴 때마다 상현이가 좋아하는 표현 방법이 달라서 그런 거니까..이해해줘야 한다고 어린 딸내미들 붙잡고 얘기 많이 했겠다 싶어 미안하고 고맙고 그랬어요. 그리고 난 오늘부터 남편 출근 시키고 애들 학교 보내고 나면 여자로 살 건데~"

상현 엄마의 말에 미리 엄마와 재인 엄마도 하하 호호 웃으며 얼굴에 환해집니다.

좋은 이웃들과 활짝 웃고 있는 상현 엄마. ⓒ최선영

상현 엄마는 힘든 명절 연휴를 보내는 동안 친척들에 대한 야속한

마음에 멍이 들기도 했지만 상현이의 장애를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좋은 이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작은 바람이 있다면 다음 명절부터는 엄마가 상현이를 데리고 둘이 집에 있거나 단기보호시설에 맡기는 일 없이 함께 명절을 보낼 수 있으면 하는 것입니다.

장애가 있는 가족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명절이 또 오더라도 힘들지 않고 다 함께 즐거운 시간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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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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