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보고 있는 현수 ⓒ최선영

“현수야 간식 먹고 운동하자”

현수는 엄마의 말을 듣고도 대꾸 없이 신문을 뚫어져라 보고 있습니다

“요 녀석이 이제 좀 컸다고 엄마가 말하는데 대답도 안 하네 뭘 그렇게 보고 있는 거야?"

현수는 장애인 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 때문에 장애아를 둔 엄마들이 무릎 꿇고 있는 기사를 보고 있습니다

“엄마... 엄마도 저 때문에 이렇게 무릎 꿇은 적 있어요?”

현수는 보던 신문을 옆으로 밀어내며 엄마에게 질문을 건넵니다

“아니...”

엄마는 짧게 대답하고 들고 온 접시를 현수 앞에 내려놓습니다

말없이 접시에 담긴 사과를 한입 입에 넣고 오물오물 먹던 현수가 다시 엄마를 보며 말을 합니다

“엄마 장애는 불편할 뿐이지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장애인을 부끄럽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일까요?

집값보다 우리가 못한 건가요? 땅값보다 우리가 덜 소중한 것일까요?

자기 아들딸이 장애인이어도 저렇게 반대를 할까요?“

현수는 답답하다는 듯이 속에 답을 숨긴 체 엄마를 향해 질문을 쏟아냅니다

“현수야...”

엄마는 고등학생 아들 앞에 어른으로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이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이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다음날 현수 엄마는 현수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 서둘러 집안일을 끝내고 외출 준비를 합니다

​​한 달에 두 번 ​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이 함께 모여 서로 마음을 나누고 정보를 주고받는 작은 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처음에는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엄마들 몇이 만나 차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건너건너 이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듣고 일반학교에 다니는 장애 아동 엄마와 이제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장성한 아들을 둔 할머닌 뻘 되는 엄마도 참석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좀 늦었죠”

현수 엄마는 카페를 들어서며 미안함을 담은 미소를 보내며 인사합니다

“어서 와요 좀 늦으면 어때요”

다들 손사래를 저으며 반겨줍니다

차를 마시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들 ⓒ최선영

“어제 현수가 신문을 보다 말고 엄마도 저 때문에 무릎 꿇은 적 있냐고 묻는데 깜짝 놀랐어요”

현수 엄마의 말에 다영 엄마도 '우리 집도 그랬는데' 하며 현수 엄마의 말을 이어받습니다

“다솜이가 저에게 묻더라고요 tv를 보다가 엄마도 언니 때문에 저렇게 무릎 꿇은 적 있냐고 그러면서 막 우는데... 저도 따라 울고 다영 아빠도 옆에 있다 눈물을 글썽이며 화장실로 가버리더라고요“

다솜이는 발달장애 언니 다영이와 함께 같은 초등학교를 다닙니다

혹시라도 언니를 잃어버릴까 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언니 손을 꼭 잡고 다니는 다솜이는 이제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두 살 언니인 다솜이를 교실에 먼저 데려다주고 책가방에서 학용품과 책을 꺼내언니가 공부할 수 있도록 준비해주고 3학년 교실로 갑니다

틈날 때마다 언니가 잘 있는지 들여다보며 언니를 알뜰히 살피는 다솜이의 마음은 엄마만큼이나 깊어 보입니다

다솜이 학교에도 사랑반이라는 특수학급이 있어서 언니가 사랑반을 가는 시간이면 쉬는 시간 화장실도 가지 않고 재잘거리는 친구들의 재미난 이야기도 뒤로하고 언니를 사랑반에 데려다주러 쪼르르 언니 교실로 달려갑니다

다영 언니 반에도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다솜이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꼭 언니를 보러 갑니다

tv를 보며 다솜이가 울었다는 말을 듣자 모임에 온 엄마들은 손수건을 꺼내 또 눈물을 닦아냅니다

“현수가... 엄마 장애인은 집값보다 못한 거냐고 땅값보다 덜 소중한 거냐고 하는데 가슴이 매여서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현수 엄마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이사회가 어떻게 이렇게 변하지 않는지 안타까워하며 멍든 가슴을 서로에게 내보입니다

이미 손주까지 봐서 할머니가 된 나이 지긋한 엄마가 입을 엽니다

“그래... 10년 전이나 20년 전이나 30년 전이나 사람들 인식은 너무 똑같은 게 이상할 정도에요

내가 우리 현동이 키울 때도 이랬답니다 턱없이 부족한 장애학교 세우겠다는데 지역주민들이 무슨 난리라도 난 것처럼 들고일어나서는 '결사반대'라 했지요...

나라 위해 목숨이라도 건 사람들 처럼 그 야단을 하더니... 지금도 저러니... 쯧쯧...“

“그러게요 지금도 이런데 그때는 얼마나 더 심했을까 싶네요”

민혜 엄마는 안타깝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받습니다

“말도 마세요 그때는 다들 어려운 살림이었잖아요 셋방을 얻으러 갔는데 아이가 몇이냐 해서 둘이다 했더니

방을 줬어요 그런데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는 같이 살 수 없다며 방값 떨어진다고 방을 빼라는 거예요"

“어머 어떻게 그런 일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혜진 엄마가 놀랍니다

30년 전 무릎 꿇은 현동 엄마 ⓒ최선영

“그 일이나 30년 지난 지금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는 거나 다를 게 없잖아요

그때 저는 주인아주머니한테 무릎 꿇었어요 제발 아무 피해 없게 할 테니 살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했더니 장애인 있으니까 물세도 더 내고 방값도 더 내라고... 그리고 표나지 않게 다니라고 해서 정말 나가고 들어가며 얼마나 눈치를 봤는지...

무릎 꿇은 장애아동 엄마들 ⓒ최선영

뉴스에 엄마들 무릎 꿇는 거 보고 그때 생각도 나고 어떻게 이렇게 사회가 달라진 게 없나 싶어 내가 무릎 꿇었을 때 보다 더 가슴 아팠어요“

"정말 그러네요...”

현수 엄마가 한숨을 쉬며 말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건 아이들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참 다르다는 거예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해 아이들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예전에는 많이 놀리기도 하고 그랬잖아요

지금은 몇몇 아이들이 괴롭히고 왕따도 시키고 그러지만 대부분은 도와주려고 한다고 해요“

혜진 엄마가 희망을 놓지는 말자며 말을 합니다

“그래 그 부분은 감사해야죠... 어른들의 편견이 순수한 아이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에요”

인수 엄마도 말을 더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회이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인식개선을 위해 애쓰고 있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고 있으니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는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배려 속에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며 서로를 다독여줍니다

이 모임을 통해 서로 넋두리만 하는 게 아니라 조금이라도 인식이 개선되도록 해보자며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도 하며 작게나마 활동도 합니다

배려는 이해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해하려면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서로 배려할 수 있도록 먼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어우러짐의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현수 엄마는 모임에서 속을 털어내고 오니 조금은 가슴에 뭉쳐있던 불덩이를 식히고 온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장애인 학교 설립 반대에 대한 다른 기사들이 올라왔습니다

“엄마 속상하고 슬프지만 절망만 있는 건 아닌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학교가 세워질 수 있도록 힘을 모아주고 계시는 것 같아요"

현수가 신문을 보다 말고 엄마를 보며 말합니다

달라질 세상을 희망하며 이야기 나누는 엄마와 현수 ⓒ최선영

“그래 목소리 큰 몇몇의 사람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결국 세상은 소리 없이 서로를 안아주는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네... 사실 무릎 꿇은 엄마들의 눈물을 보고 쇼하지 말라는 가시 돋친 외침이 있는 것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어요. 절실하다는 말을 아무리 해도 귀 막고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야속했고요

어떻게 저 모습을 보고 쇼라고 말할 수 있는지... 어른들이 너무 무섭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희망이 보여서 오늘은 기분이 좋아요 제 친구들도 다 너무 한다고 함께 속상하다고 말하는데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어요”

"그래... 그 친구들이 어른이 되고 사회인이 되면 지금보다는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세상이 되겠지..."​

장애인 학교가 세워져도 집값이 하락하거나 땅값이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집값 땅값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다는 자료가 제시되고 오히려 지역주민과 장애 아동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야기들이 있습니다

관심이 모이고 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 작은 이기주의는 힘을 잃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무릎 꿇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이 사회가 그런 잘못을 지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애학교가 세워져도 내 아이는 이미 많이 커버려서 다니지도 못하지만 어린 장애 아동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무릎 꿇은 그 무릎에 눈물을 더하며 응원을 더하며 함께 동참하는 이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수와 현수 엄마도 지금 세우려고 하는 장애학교가 생겨도 다닐 수는 없지만

꼭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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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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