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가 새겨진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표지 ⓒ보건복지부

필자는 작년 8월 한 교수로부터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3~2017년)을 당사자 관점에서 분석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이런 일도 처음이고,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서 마음이 불안했다.

하지만 당사자가 정책분석으로 하는 것이야말로 정책을 아는 것은 물론 정책수립 시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등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에 제안을 수락했다.

8~10월 중순까지는 필자를 포함한 연구진들이 평가지표 제작 작업을 했다. 이후 10월 중순부터 11월까지 장애인정책종합계획에 대한 당사자 관점 분석을 했다.

정부가 5년 동안 실시했던 4대 분야, 19대 중점과제, 71개 세부과제 중 발달장애인과 상관없는 세부과제는 분석대상에서 제외했다. 정부의 계획과 이와 관련된 실제 실행사항 등을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받은 느낌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를 몇 가지 들고 싶다.

4대 분야 가운데 장애인 복지 및 건강서비스 확대 분야에서 장애인 자립생활 및 주거지원 강화라는 중점과제 중 장애인 거주시설 개편이라는 추진과제가 있다. 이 추진과제의 세부계획엔 시설 소규모화라는 내용이 있다.

시설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곳이다. 내가 아닌 남들이 정하는 시간에 먹고 자는 등의 일상생활을 해야 하는 곳이다. 나보고 이런 생활을 하라고 하면 극구 반대할 것 같다.

설령 시설 인원을 30인 이하로 줄여 시설을 소규모화해도 발달장애인과 사회복지사 간 권력관계가 상당히 위계가 뚜렷하고 수직적이라 자립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시설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정부에게서 돈이 많이 들어오는 구조라 실제 100인 이상 시설은 소규모로 거의 축소되지 않은 현실이기도 하다.

시설에서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알려주며 발달장애인으로 하여금 자립준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등의 자기옹호를 충분히 받은 다음 지역사회로 나가 자립하는 것, 다시 말하면 탈시설-자립생활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시설 소규모화 등을 통해 거주시설을 개편하겠다는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장애인의 사회참여 및 권익증진 분야장애인 인권보호 강화라는 중점과제에서는 장애인 인권보호 시스템 마련이라는 추진과제가 있다. 이 추진과제의 세부계획은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운영확대와 거주시설 인권보호시스템 강화 등이다. 거주시설 인권보호시스템 강화에는 시설 내 인권지킴이단 운영강화 안도 있다

예전에 비해 인권지킴이단 안에 외부인력이 들어온 것은 다행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시설 내 종사자, 직원 등이 구성원으로 들어 있다. 종사자와 발달장애인 당사자 간 위계관계가 있어 장애인 폭력발생에 관해 발달장애인이 표현을 하더라도 종사자 등이 폭력을 은폐·사과하는 정도로 무마할 여지가 상당하고 실제로도 그런 현실이다. 그렇게 되면 발달장애인 인권강화와는 거리가 멀게 갈 수밖에 없다.

제4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비전 및 목표 ⓒ보건복지부

역시 같은 분야에서 장애인 정보접근성 강화라는 중점과제와 관련해선 추진과제로 소외정보계층 방송접근권 보장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추진과제의 세부계획으로 장애인방송제작지원과 방송수신기기보급 등이 들어 있다. 세부계획에서 장애인 방송의 양적 증가만 나오지, 질적 향상에 대한 방안은 나오지 않는다.

더군다나 시·청각장애인 중심의 계획이고 발달장애인을 아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알기 쉬운 자막 제공비율을 성과목표로 하고 이와 관련되어 질적 향상방안 등의 세부계획 마련만 했더라도 조금은 나을 수 있지 않았겠냐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장애인 경제자립기반강화라는 분야에선 장애인 고용 및 우수고용 기업 지원이라는 중점 과제에서 장애인 직업재활시설 기능강화라는 추진과제가 있는데 그 추진과제의 세부계획에는 직업재활 기능보강 및 서비스업 1차 산업, 직업재활시설 지원 확대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직업재활시설 기능강화를 통한 정부지원금이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세부계획과 관련된 성과목표에도 직업재활시설의 장애인 임금향상에 대한 구체적 목표치가 나오지 않았다.

실제로 보호작업장에는 발달장애인들 비율이 많고, 보호작업장 장애인의 평균임금은 2014년 기준 약 30~40만 원 대이다. 하지만 이것은 평균적인 것이고 실제 10만 원 이하의 임금을 받는 발달장애인 비율도 상당히 많다.

신체장애, 정신장애가 있을 시 근로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인정될 시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한다는 최저임금법 제7조 1항이 위의 현상이 나오는 요인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인간다운 삶을 살 기반을 뺏는 것이며, 심각한 차별인 것이다.

이외에도 장애인 복지 및 건강서비스 확대 분야에서 발달장애인 지원 및 정책 이행평가라는 중점과제 중 발달장애인 보충적 소득보장 체제 구축이라는 추진과제와 관련해 발달장애인 대상 연금상품 출시 등의 세부계획이 나온다. 이 계획은 국가가 발달장애인 소득보장을 해야 할 책임을 가족에게 떠넘기는 것이고 발달장애인의 자기결정권과 선택권을 무시하는 정책이다.

장애인 생애주기별 교육 강화 및 문화·체육 향유 확대 분야에서 장애인 문화활동 강화라는 중점과제 중 추진과제인 장애인 문화향수 기회 확대의 세부계획과 관련해서도 발달장애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존중해 사회통합으로 이끄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방안을 찾아볼 수 없다.

이외의 추진과제, 중점과제들을 보며 종합해보니 발달장애인의 욕구와 생활현실을 잘 반영하지 않고 발달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제공자 중심의 정책임을 다시 한 번 보게 된다. 계획을 수립할 당시부터 발달장애인 당사자들 참여가 부재했음은 물론 당사자들에게 의견을 묻고 반영하지 않은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내년부터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을 실시할 예정이나 정책계획 수립과 관련, 발달장애인 당사자 참여는 현재까지 없는 상황이라 걱정이 된다.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뿐만 아니라 앞으로 정책계획 수립 시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교육권, 정보접근권 보장 등의 환경을 만들고 당사자 의견을 철저히 반영하는데 신경 썼으면 한다.

민간단체에서도 정책수립 시 발달장애인의 참여 및 의견반영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한다.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정책들을 정확하게 알려고 노력하며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 정책을 알기 어려울 때는 배경설명 및 의사소통 지원 등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서 발달장애인의 욕구와 생활현실을 반영하는 정책계획이 나올 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당사자와 정부, 전문가, 장애계 관계자들의 분발을 촉구한다. 제발 우리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제외하고 우리에 대해 논의하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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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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