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정도, 곰이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만 먹고는 웅녀가 되었다던, 그런 느낌의 몰입감 높고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는 일을 했다. 어찌어찌 끝을 보고는 바로 심한 목감기와 위염으로 제대로 자리 펴고 누워 아무 것도 못 하고 책을 읽는 호사도 누렸다.

이 일로, 내가 웅녀가 될지 말지는 나도 모르겠고……그간의 웅녀놀이로 펌은 다 풀리고 염색도 엉망에 체중도 늘어났다. 그래서 어제는 오랜만에 슬슬 사람꼴로 리모델링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그 간 미루어 두었던 볼일도 보고, 장시간을 들여 머리를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이셨다.

일.단.긴.장.

엄마들이라면, 특히 아들 가진 엄마들이라면 더 공감하겠지만, 일단 유치원에서 전화가 오면 여러 이유로 걱정하며 긴장된다.

혹, 친구들과 놀다가 다친 건 아닐까?

놀다가 친구를 다치게 한 건 아닐까?

장난꾸러기가 혹 심한 장난을 친 건 아닐까? 등등

6월 초인가, 아이가 친한 친구의 수건주머니를 숨기는 말썽을 부렸다던 때 이후로 방학도 있었기에 제법 오랜만의 걸려 온 담임선생님 전화였다.

요즘 아이 컨디션은 어떤지, 혹시 가정을 중심으로 한 아이 주변의 환경 변화는 없는지 안부 인사를 겸해 체크를 하셨다.

그리고 하신 말씀은 대략 이랬다.

아이가 개학을 하고 나서 기본 습관과 생활 태도가 이전보다 좀 안 좋아진 것 같다고 하신다. 수업시간엔 집중도 잘 하고 인지적인 과정 등은 매우 잘 따라오는데(보통 선생님들은 안 좋은 측면을 말하기에 앞서 늘 잘 하는 점을 먼저 말씀하시는데, 아마 연수에서 상담 테크닉으로 전수되고 있으리라 짐작한다.^^)

장난을 많이 치면서 교사에게 부정적 관심 끌기를 하며, 유치원에서 잘 걷지 않고 뛰는데, 자신의 신체능력이 우월하다는 걸 인지하기에 발생하는 행동으로 여겨진다고 하신다.

또한, 점심식사 태도가 갑자기 안 좋아져서 거의 식판을 들고 흡입하는 모양새로 밥을 먹는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들 식사 태도 좋은 건, 돌 때부터 자부심이 느껴지는 트레이드마크였던지라 이건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ㅠㅠ)

엄마의 마음을 내려놓고, 당시 선생님의 말씀을 칼럼을 쓰는 사람으로 최대한 객관화 하여 전하려 애를 쓰다 보니 여기까지 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아이의 문제행동과 나의 장애 문제를 분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은진슬

아이를 낳아서 키우다 보니, 이유야 어떻든 간에,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상황의 전화를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가 없다. 아마도, 아이의 어떤 문제 행동에 대한 지적을 받으면, 누가 비난하지 않아도, 그것이 마치 엄마의 잘못인 것만 같은 자책감과 불편한 마음을 불러 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어려서부터 엄마나 아빠가 순종적이고 모범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경우라면, 이런 상황이 더욱 불편하고 힘들 수 있다.

사실, 남편의 경우, 시어머님의 전언에 따르면, 9세까지는 엄청나게 개구쟁이였지만, 딱 열 살부터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는 듯 갑자기 얌전하고 의젓하고 공부까지 잘 하는 특급 모범생으로 변신했다고 하셨다.

나로 말하자면, 우리 형제들이 다 그랬지만, 우리 엄마로부터 사춘기가 언젠지도 모르고 키웠다는 자랑 아닌 자랑을 듣고 자란 아이였다.

아무래도, 우리 아들보다 더 어렸을 때부터 스스로 한 두 시간 이상의 연습을 해낼 수 있을 만큼 악기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기질적으로 순응적인 성향을 띠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려서부터의 장애로 늘 부모님께 본의 아니게 내 존재 자체로 많은 걱정을 끼칠 수밖에 없는 환경상, 점점 커갈 수록 공부나 학교생활 등에서는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상황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선생님과의 통화를 마친 후, 그날 밤은 유난히도 이 문제가 소화가 잘 되지 않기에, 모두가 잠든 밤, 부엌 식탁에 앉아 곰곰이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았다.

생각 끝에 도달한 이 불편한 감정의 핵심은, 선생님께 야단을 맞은 기억조차 거의 없는 아이였던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의 문제행동으로 선생님께 가정에서의 교육에 있어서 협조 요청을 받거나 부정적인 피드 백을 받는 것이 영 익숙하지 않고 너무도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또한,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면서, 나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의 원인을 문제의 본질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 장애에서 찾는 태도에 성처 받고 질색했던 경험 역시 이 불편함의 핵심 요소라는 걸 깨달았다.

소위, 엄마가 장애가 있으니 아이가 저렇구나 프레임이 두려운 것이다.

그날 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에게 유치원에서 왜 그렇게 장난을 치느냐고 물으니, 난감해 하며 자기도 잘 모르겠다면서 하는 말이, 자기 머릿속에 장난생각주머니가 너무 많아서 자꾸 그런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엄마가 유치원 가기 전에 매일 매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말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그래서, 장난이 더 이상 장난이 아니게 되는 것은 어떤 때인지, 내가 빨리 뛰고 줄넘기도 잘 해서 아무리 과시하고 싶어도 아무 곳에서나 뛰어 다니는 행동은 이응이를 멋져 보이게 해 주지 않는다고 차근차근 타일렀다.

그리고는 그 날부터 매일 아침 아이 부탁대로 아이에게 이야기 해 준다.

첫째, 유치원에서는 뛰지 않고 걸어요.

둘째, 장난을 쳐서 친구들과 선생님의 관심 끌지 않아요.

셋째, 식사는 바른 자세로 천천히 먹어요.

차라리, 집에서도 이런 문제가 보인다면, 내가 더 많이 도울 수 있을 테지만, 우리 집엔 아이가 하나라 다른 유아와의 상호작용도 없다 보니 장난을 치거나 말썽을 부리지도 않으며, 워낙 독립적이고 손이 안 가는 성향의 아이라 집에서는 나이보다 많이 편하게 키운다고 생각할 정도로 문제 행동이 나타나지 않아,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더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렇게 매일 일깨워 주며 도와주면 또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이번 일로, 불편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사흘 정도를 보내면서, 나 자신에게 하는 다짐을 지면에 적어 본다.

첫째, 아이의 잘못과 실수에 좀 더 너그러워지자.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어린 나이에, 그렇게 잘못하고 실수하며 자랐을 텐데, 그건 다 잊고서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둘째, 엄마는 아이를 바르고 좋은 삶으로 이끌며 돕는 사람이지, 비난하고 재판하는 사람이 아님을 잊지 말자.

내 아이의 실수와 잘못에 너그럽지 못하고 비난하고 야단치며 재판하는 내 태도가, 혹시 엄마인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찌 비칠까에 지나치게 매몰되어서는 아닌지 반성해 본다. 아이가 잠든 후, 칼럼을 쓰고 있는 이 시간,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로 사랑을 담아 아이의 미숙함에 반응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셋째, 아이의 문제행동과 내 장애 사이에는 아무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음을 잊지 말자.

아이가 두 돌쯤, 자기를 몇 번 물던 친구를 발로 찼다고, 나를 불러 엄마가 시각장애가 있으니 집에서 물건들을 발로 차고 다니는 행동을 아이가 모방하는 거 아니냐는 국공립어린이집 원감으로부터의 전문성도 결여되고 어이없기까지 한 이야기를 들은 후, 나에게는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문제 제기를 하고 시청에 익명 민원도 넣고 엄청난 마음고생 끝에 사과는 받았지만, 그런 관점을 가진 교사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어 로또당첨이라던 국공립어린이집 다니기는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보니,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해서 너그러우랴 하지만, 나는 한동안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아이를 소위 책잡히지 않을 과하게 바르고 모범적인 아이로 키우려는 내면의 욕구와 싸우곤 했다.

지금은 그나마 장애엄마 노릇 7년차라 맷집도 좀 생겼고, 그런 편견의 시선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어도 조곤조곤 따박따박 반박할 내공도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경험이라는 건 참 무서워서 문득문득 아직도 이런 편견이 무섭고 두렵기도 하다.

이 칼럼을 읽을 후배 장애 맘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아이의 문제행동과 부모의 장애 사이에는 (대부분의 경우) 아무런 상관도 없다. 내 경험으로 볼 때, 그런 편견을 가진 일부 몰상식한 교사와 부모들은, 부모의 다른 종류의 약점보다 눈에 잘 뜨이는 부모의 장애라는 약점을 그저 손쉬운 먹잇감으로 걸고넘어지는 것일 뿐이다.

이번 칼럼은, 엄마로서의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종의 자기반성적인 칼럼이 되었다.

사실, 혼자서 일기장에 쓰는 글이 아니기에 쓰기도 너무 힘들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렇게 마음이 어렵고 불편할 때마다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갈무리하다 보면, 무언가 조금은 나아진 나 자신과 마주하는 듯 한 기분도 들고, 실제로 좀 더 나은 태도와 행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러하기에, 엄마가 되기 전에도 글을 썼지만, 엄마로서의 글쓰기는 한층 더 갚진 행위가 아닌가 새삼 생각해 본다.

잠시 후, 아이를 만나면, 불편했던 엄마의 마음을 깨끗이 내려놓고, 많이 웃어주고 안아주며 편안한 엄마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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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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