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먹고 신영(가명)이와 마주 앉아 지선(가명) 언니 생일 선물을 의논했습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이정민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정민 선생님은 중학교 특수교사입니다. 지선이와 신영이를 가르쳤고, 일 년 전에 부산으로 전근 갔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이정민입니다.”

“네, 오랜만이네요. 건강하시죠?”

이정민 선생님은 가끔 아이들이 보고 싶을 때 시설 직원에게 전화했습니다. 마침 신영이가 옆에 있다 하니 바꿔달라 했습니다.

“샘, 안 와요? … 네. … 밥 먹었어요. … 샘 주께요.”

신영이는 대뜸 안 오시냐고 물었습니다. 보고 싶다는 말입니다. 이정민 선생님이 말을 건넸고 신영이가 드문드문 답했습니다.

여름방학에 신영이와 지선이는 강원도에 갑니다. 지난 겨울방학, 강원도 사는 시설 직원의 친척집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들은 강원도 땅을 처음 밟았습니다. 2박 3일 지내며 친척집 아이와 친구가 되었고, 친척집 아주머니는 이모가 되었습니다. 친척집 아주머니가 거창에 왔을 때, 아이들 집에 들렀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 또 갑니다. 이정민 선생님은 강원도 가지 말고 부산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강원도도 가고 부산에도 가지요. 신영이 고모가 부산 살아요.”

“잘 됐네요. 방학하면 꼭 오세요.”

“초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들과 의논해서 연락드릴게요.”

여름방학 때 놀러오라니! 갑작스런 초대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중학교 특수교사로서 만난 학생들의 사연은 모두 깊었을 겁니다. 신영이 지선이 자매의 사연이 남달랐을 것도 아닙니다. 잊지 않고 소식하고 초대했으니, 잊지 않고 잘 준비해서 다녀와야죠. 선생님 댁, 부산에 갈 날이 두 달 남았습니다.

신영이는 이정민 선생님의 초대를 이따금 불쑥 꺼냈습니다. 어느 휴일, 신영이와 마주 앉아 방학 일정을 의논했습니다. 신영이는 이미 갈 곳이 많습니다. 북상 부모님 댁, 강원도 이모님 댁, 부산 선생님 댁에 갑니다. 교회 여름성경학교에도 참석합니다. 새로 꾸릴 일은 없고, 일정을 잘 조정하면 됩니다.

그런데 신영이 마음은 ‘부산 선생님 댁’으로 가득한 것 같습니다. 방학 일정 의논하자니 지체 없이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말이 서툰 아이가 ‘선생님, 부산, 보고 싶어요’는 또박또박했습니다.

“선생님요.”

“나?”

“아니, 학교 선생님요.”

“아, 이정민 선생님?”

“네.”

“부산에 가고 싶어?”

“네, 선생님 보고 싶어요.”

아이들이 일찍 하교한 날,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리고 찻집에 마주앉았습니다. 이정민 선생님이 보낸 문자를 읽어 주었습니다.

‘8월 4일부터 8일까지 방학 중 방과 후 프로그램 때문에 부산에 있어요. 그때쯤 오셔서 같이 시간 보내는 게 어떨까요? 제가 오전에는 수업을 해서 오후에 아이들과 놀 수 있어요.’

“지선이와 신영이가 버스 타고 갈 수 있을까?”

“선생님 집 몰라요.”

“이정민 선생님에게 터미널로 마중 나오시라고 부탁드리면 어떨까? 너희들이 버스 타고 가겠다면 부탁드려 볼게.”

지선이가 한참 골똘하더니 이내 되물었습니다.

“선생님이 전화해 줄 거예요?”

“물론이지. 선생님이 마중 나오시겠다고 하면, 버스 타고 갈래?”

“네.”

그 자리에서 신영이가 이정민 선생님과 통화했습니다.

“샘, 안녕하세요? 언제 가요?”

수화기 너머 말소리가 들렸지만 신영이는 자기 할 말을 다했다는 듯 직원에게 전화기를 건넸습니다.

“신영이가 언제 오면 되냐고 물어서 8월에 오라고 했어요.”

“네, 지금 의논하고 있어요. 8월 6일에 가면 될까요?”

“제가 마중 갈게요. 지하철 타고 집으로 오면 돼요. 지선이랑 신영이가 지하철도 탈 겸.”

일정을 의논하고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며 아이들은 귀를 쫑긋하고 눈동자가 커지는가 하면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가본 적 없는 부산, 전근 가신 선생님, 선생님 댁에서 하룻밤… 들떠 보였습니다. 둘이 버스 타고 부산까지 가는 부담도 보였습니다. 이런 게 여행자의 마음을 뜨겁게 하죠.

둘째 날은 고모를 찾아뵐 생각이었습니다. 전화할까 하다가 문자를 남겼습니다. 몇 번 망설였습니다. 고모가 지선이 신영이 일을 봐준다지만, 이런 일을 의논할 만큼 깊은 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 동안 소식이 뜸했습니다.

신영이와 지선이 생각은 어떨까? 두 아이의 대답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명절에나 잠시 만나고, 아버지의 큰누나이니 높은 어른으로 생각될 겁니다. 그래도 이런 기회에 고모 댁 찾아뵙는다 여기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고모는 추석에 만나면 된다고 주장했던 지선이가 알아들었습니다.

부산 고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아이들이 부산 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부산까지 갔으니 고모를 뵙고 싶다고 했습니다. 오랜만이라 조심스러웠습니다. 실수할까봐 긴장했습니다.

고모는 당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남동생과 조카들의 이야기, 거기에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남동생과 조카들 챙기는 당신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고모 댁에 가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소식하고 왕래하며 지내기 바랐습니다.

“버스표 주세요.”

“어디 가세요?”

“부산 가요.”

지선이가 창구에 얼굴을 바짝 대고 버스표를 끊었습니다. 매표원 언니가 자기 말을 못 알아듣고 서울 표를 주면 어쩌나… 그런 생각을 했는지 진지했습니다. 표를 받자 그제야 자매는 웃고 떠들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이렇게 내내 웃습니다. 그저 웃습니다. 아이들의 웃음, 그 깊은 골짜기에 가볼 수 있을까? 전화번호 메모지를 가방과 바지 주머니에 하나씩 넣었습니다.

“할 수 있겠지?”

“네, 할 수 있어요.”

버스가 출발했습니다. 아이들은 평안했고 직원은 염려했습니다. 버스가 잘 도착했겠지, 아이들이 잘 타고 갔겠지 하며 연락을 기다릴 때,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이들은 잘 도착했습니다.

이정민 선생님은 늦은 저녁에 한 번 더 소식했습니다. 그때는 사진도 함께 보냈습니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아이들이 많이 컸네요. 지하철 타고 집에 와서 간식 먹고, 용두산공원 타워에 올라갔어요. 신영이가 무섭다고 하더니 경치 보느라 금방 잊네요. 저녁은 피자와 스파게티를 먹었어요. 스파게티를 잘 먹네요. 하루 알차게 보내려고 집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너무 짧아요.’

한나절 하룻밤이 아쉽다고 했습니다. 아쉽겠죠, 아쉬울 겁니다. 한나절 하룻밤 사이, 중2 고1 자매는 생전 처음으로 자기들끼리 버스 타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배웅하는 자와 마중하는 자 사이, 출발지와 도착지 사이에서 설렘과 긴장은 팽팽했을 겁니다. 여행자가 온갖 것을 몸에 새기듯 아이들도 온갖 것을 온 몸으로 새겼을 겁니다. 사물을 익힌다는 건 이런 것이고, 이렇게 익히는 건 깊숙이 새겨질 겁니다. 한나절 하룻밤이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시설 직원이 아침 일찍 부산에 가서 자매를 만났습니다. 자갈치시장을 구경했습니다. 살아서 펄떡거리는 생선과 죽어서 소금에 절여진 생선이 나란히 팔렸습니다.

“우와, 고기 많다.”

“뭐예요?”

“고등어, 갈치, 조기….”

“선생님은요?

“지선아, 왜?”

“선생님은 안사요?”

“사고 싶다.”

“오빠야 주게요?”

“그래. 넌?”

“엄마하고 할머니요.”

여름방학을 마칠 무렵, 지선이가 이정민 선생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쓰고 싶다고 했습니다. 읽고 쓰는 게 어려워서 지선이가 말하고 직원이 받아썼습니다. 직원이 받아쓴 글을 지선이가 따라 적었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정지선.’

언니를 따라 신영이도 편지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신영이는 먼저 다녀온 강원도 이모에게 썼습니다. 신영이 말을 직원이 받아쓰고, 직원이 받아쓴 글을 신영이가 따라 적었습니다.

‘이모,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사랑해요.’

신영이는 언니의 말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글씨가 삐뚤어서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도 있습니다. 다른 글자는 흐릿한데 ‘사랑해요’ 만큼은 또렷했습니다.

* 신영이와 지선이를 지원했던 월평빌라 백경란 선생님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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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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