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어야겠다는 투정과 먹여서는 안 된다는 투쟁의 갈림길에서 PWS 아이가 난동을 부리고 집기를 부수어 놓은 장면. ⓒ서인환

가정폭력을 일삼는 남편과 평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스럽다.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사랑을 받고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다. 자식을 위해서 그래도 참아야지 하지만 정말 살기 어렵다면 이혼을 하든가, 잠시라도 피신을 할 수 있다.

그래도 남에게 자신의 처지를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상처를 깊게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하고, 노예가 되었다는 참을 수 없는 정신적 고통,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협박과 폭력을 당한다는 사실을 자포자기로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만다. 그나마 살아가려면 스스로 생각을 마취시켜야 한다.

꿈과 행복을 포기하면서라도 엄마로서의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안간힘을 쓰면서 참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고 만다. 결국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고도 하소연을 하지 못하는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암 선고를 받은 환자처럼 그냥 숨만 쉬고 살아갈 뿐이다.

가정폭력은 가정의 문제로 개입하기 어렵다가 아니라 적극적 지원으로 폭력을 제거할 수도 있고, 그러한 노력으로 남성들의 인성이 상당히 진화되었고 인권과 가정문화가 상당히 변화되었다.

그런데 이런 폭력을 남편이 아니라 자녀에게서 받고 산다면 그 고통은 어떨까?

어리고 연약한 장애 아이가 청소년기가 되면서 악마의 얼굴로 변한다. 이런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먹고 싶은 만큼 마음대로 먹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청소년기에 100킬로그램을 넘기면서 온갖 성인병에 시달리다가 사망하게 된다.

바로 프래더 윌리 증후군(PWS) 이야기다. 병원에서는 성인병과 같은 합병증이 나타나는지 체크해 주는 것, 키가 제대로 자라지 않아 성장호르몬 주사를 권하는 것, 식이요법을 권장하는 것, 이것 외에 의학 전문가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다이어트를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는 상황인데 하라는 말만 한다. 그리고 못한 책임은 가족이 져야 한다고 말한다.

PSW는 전국에 2천여 명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조기발견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청소년기가 되어 과체중으로 병원에 갔다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어 비만의 원인으로 그러한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도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PWS는 대개 지적장애를 동반한다. 그리고 극단적 식탐을 가진다. 먹는 것을 참을 수 없다. 너무나 먹는 것에 집착한 나머지 거짓말도 곧잘 하고, 먹지 못하게 하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기 일수이고, 가정폭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과도하게 먹으면 소화도 안 되고, 구역질을 하는 것이 사람들의 생리인데, PWS는 포만감을 뇌에서 느끼지도 못할 뿐 아니라 구토를 하지도 못한다. 먹는 것에 집착하여 거짓말을 한다고 거짓말쟁이로 낙인을 찍으면 안 된다.

정체성이 파괴되어 자아존중감을 손상하면서 비난받는 존재에 대한 저항으로 더욱 포악해지기 쉽다.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장애로 인한 본능적 문제인 것이다.

음식의 양을 조절하는 것에 PWS는 어린 나이에는 눈치를 보면서 몰래 먹거나, 훔쳐 먹는 정도에서 부모의 눈치를 보지만, 청소년기가 되면 반항하고 드러눕거나, 발악하는 수준으로 변하거나, 기물을 부수고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등 먹기 위해서는 도덕이나 자기정체성 같은 것은 신경을 쓰지 않게 된다.

먹는 것을 통제하면 다음 식사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강박감에 모든 남은 찬반을 처리하고, 부엌에서 누릉지나 찬반처리로 결국 과제충이 되는 주부처럼 살이 찌개 된다.

오히려 자신은 절재를 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고정화된 인식을 하게 되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거나 변명거리로 생각한다. “장애로 인한 것인데 어쩌란 말이냐?”라고 말한다.

훔쳐 먹었다고 비난을 하거나 절재를 하지 못했다고 꾸짖으면 감정이 폭발하여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거나 과다흥분 상태가 된다. 방어기재로 함리화를 하게 된다.

그리고 건들지 말라는 작전을 세운다. 심리적으로 자제할 수 없는 행동에 대하여 반성이나 결심의 효과가 없이 스스로도 통제가 되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자기함리화와 적응 방식이다.

성격형성기나 청소년 반항기 초기에 감정조절이 안 되어 조금이라도 이런 부정적인 반항 반응을 보일 때에 기선제압을 하지 못하면 그 다음은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는 통재불능 상태가 된다.

처음 한번 선을 넘기가 어렵지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고 폭발하여 폭력을 하면 그 다음은 일상이 되기 쉬운 것은 모든 가정폭력의 공통점이다. 처음 넘으려 할 때에 기선제압되어야만 한다.

아이를 통제시키기 위해 엄마들은 화를 내며 호통을 치거나 비난하거나 울면서 슬퍼하는 모습으로 아이와 투쟁에 돌입한다. 화를 내면 아이는 더 크게 화를 내면서 기싸움을 걸어오고, 울거나 삐치거나 단식투쟁, 두문불출, 외출금지 등의 반응으로 대응하면 잠시는 아이가 백기를 들지만 그것 역시 오래 가지는 않는다. 그래도 화내는 것보다는 효과적이다.

아이에게 사회적 접촉을 적극 지원하고, 호감을 가진 사람과 합동하여 자기정체성을 길러 주고, 자랑스러운 자신에게 흠결이 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유도하면서 규칙생활을 유도하고, 약속과 배신, 그래도 다시 약속을 반복하면서 절제를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숨통을 가끔은 트게 하여 조건부로 한 번씩은 조금은 더 먹는 기쁨을 가질 수 있게 해 준다. 그렇다고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은 것에 대해 운동을 조건으로 하여 먹은 양에 대해 체중조절을 위한 작업량을 정해 주고, 그것이 다음 먹을 것의 양과 연결시킨다. 이런 투정과 투쟁의 규칙을 정하는 시기를 놓치면 폭력가정이 되기 쉽다.

식탐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10대나 20대 초기에 심정지나 당뇨로 조기사망을 할 수도 있는데, 위에서 말한 규칙이 보름 정도만 깨어져도 10킬로그램에서 20킬로그램은 금방 늘고 만다.

아이가 기물을 부수고 가정폭력을 하게 되면, 엄마는 피신을 할 수도 없다. 차라리 알코올중독인 남편이라면 후한이 있어도 당장은 피해도 된다. 그런데 자식이라면 피신도 할 수 없다. 자식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는 먹고는 싶지만 눈치를 보고 기회를 노리고 실패를 하면 비난만 받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단 먹고 나면 부모도 어쩌지 못한다는 것을 몸이 학습하거나, 부모보다 강하게 폭력이나 땡강 등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대응하면 부모가 고통스럽고 상처를 입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기고 보자는 학습을 하게 되어 가정폭력 아이가 된다.

이런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폭력 과정에서 벽과 부딪치거나 만류하는 부모와 몸싸움 과정에서 멍이 들거나 하게 되는데,

그러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증거로 폭력을 당했다며 아동보호센터에 신고를 하여 오리발 작전으로 부모를 좌절하게 하여 이기는 법도 배우게 된다. 마음껏 먹지 못하게 하는 부모를 곤궁에 빠뜨리며 보복을 하게 된다.

부모를 생각하지 않고 먹는 것만 생각하면 부모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이 자기함리화와 먹고자 하는 것에 대한 방해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라는 것을 학습한 결과이다.

죽어도 좋으니 당장 먹고 보자는 것이고, 이런 방법을 알게 된 자신에 만족감마저 가지게 된다. 이런 대응기술을 가지게 된 자신에 대해 뿌듯해 하는 자아존중감이나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다. 죄책감을 가져야 하는 상황에서 미소를 띠게 된다.

부모는 이 정도가 되면 시설로 보내거나 입원을 하는 것을 고민하게 된다. 이대로는 살 수 없으니 같이 죽는 것도 고려하게 된다. 먹을 것이 없는 무인도로 가고자 한다. 자식과는 이혼도 할 수 없으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극단적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먹는 것을 파는 가게도 많고 주방에는 식재료가 있으며, 다른 사람 손에 먹을 들린 먹을 것이 항상 눈에 보인다.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의 경우 쉼터도 있고,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그리고 가해자는 처벌을 한다. 그러나 PWS 장애인을 처벌할 수도 없고, 치유나 쉼터는커녕 어떠한 보호장치도 없다. 자녀를 가진 것이 축복이 아니라 이 정도면 저주라고 느낀다.

PWS의 늪에는 허우적대는 가족들이 있다. 곧 숨을 쉴 수 없는 밑바닥으로 가라앉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바닥은 너무나 깊어서 바로 빠져 죽지도 않고, 서서히 고통스럽게 빨려들어간다. PWS 장애인을 받아주는 시설도 없고, 치료하는 병원도 없다. 그리고 상처받은 가족을 위한 어떠한 치료 프로그램도 없다.

정신장애를 치료하는 병원에서 지적장애 장애인을 환자로 받고 있는 것은 비양심적 범죄행위일 수 있다. 의료인은 지적장애를 치료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약을 먹인다. 지적장애 전문 아동병원이 생겨야 한다.

사회복지사들도 전문가라며 명에를 얻고 밥 먹고 살지만,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귀를 막고 눈을 감아버린다.

정부는 PWS 장애인의 식이요법이나 영양관리, 다이어트제 등을 무상으로 지원하고, 먹는 것이 아닌 다른 취미나 특기를 발견하고 여행 등을 통한 화목과 화해를 할 수 있도록 문화적 지원과, 가정폭력에서의 사후지원에 대한 시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런 시급하고도 심각한 상황에 대한 지원이나 시책 강구가 없는 복지 운운은 기만이고, 직무유기다. PWS라는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허우적대는 가족들을 우리가 외면한다면 평생 얌심의 가책으로 악몽에 시달리지 않을까 한다.

먹을 것을 달라고 10년간 울던 아이가 자라면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엄마가 몇 십 년을 울어야 한다. 그렇다고 PWS 장애인을 처벌하거나 원망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는 우리가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뿐이다. 그리고 늘 욕구불만과 짜증 속에서 살아가는 PWS 장애인에게도 꿈을 가지게 해 주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교류하면서 집착을 제거하여 음식 맛이 아니라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진정한 맛을 느끼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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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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