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리의 일기장을 보며 울고 있는 혜리 엄마 그림. ⓒ최선영

"내가 세상이라는 이곳에 온 지 15년... 그 이전에 나는 어느 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이곳에서의 15년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이제 그 삶을 정리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가야 할 다른 그곳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나는 또 그곳에서는 어떤 생김으로 보일까...그래... 이제 다른 나를 만나러 떠나자..."

혜리 엄마는 혜리의 일기장을 보다 가슴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고통을 느꼈습니다.

"이 아이가 대체 무슨 생각을... 혹시..."

혜리 엄마는 혜리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혹시라도 엄마가 일기장을 본 것을 알게 되면 요즘 말없이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 혜리가 더 마음을 닫아버릴까 봐 내용을 폰에 담아두고 일기장은 자물쇠를 다시 채워 제자리에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애써 다독이며 학교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혜리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미술학원을 간 시간이었습니다. 미리 전화로 약속한 담임선생님을 만나 폰에 저장해 둔 혜리의 일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갓 서른을 넘긴 혜리의 담임선생님도 몇 줄 안되는 내용이었지만 무겁게 다가오는 혜리의 마음 앞에 표정이 굳어지고 잠시 말문이 막혀 깊은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혜리가 학교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요... 혹시 왕따라든지..."

혜리 엄마가 먼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넵니다.

"아니오 어머니... 학교에서는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도 열심히 듣고 친구들과도 별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잠시 고민하다 상담 선생님과도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좋겠다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어머니 혜리는 지금 사춘기의 그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던 아이들도 이 시기가 되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보이기도 하고 별문제 없이 지나가는가 싶다가도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고요...

혜리를 지켜보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함께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섣불리 너 왜 이런 생각하냐고 물었다가는 대화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으니까요"

혜리 엄마는 학원 선생님에게도 도움을 청했습니다.

혜리가 가는 곳마다 특별한 것은 없었는지 살펴보며 혜리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왜 이런 글을 남겼는지 빠른 시간 내에 알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장 말고는 어디에서도 특별히 달라진 흔적은 없었습니다.

혜리 엄마는 혜리가 학교 가고 나면 일기장을 보는 것이 유일하게 혜리의 마음을 볼 수 있는 길이었기에 매일매일 자물쇠를 풀고 일기를 보았습니다.

"15년을 평범하게만 살았다 누가 그렇게 살라고 강요하지도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난 왜 그렇게 살았을까...

이렇게 평범한 채로 끝까지 가고 싶지는 않다 나의 15년을 마감하는 그 시간만큼은 특별하고 싶다.

남은 사람들이 나를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어떻게 하는 것이 특별한 것인지 너무나 평범하게 살아온 나로서는 아직까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지금 이곳에서의 시간을 연장하고 있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들이 알기를 바란다"

혜리 엄마는 심장이 떨리고 그 떨리는 심장만큼이나 덜덜거리는 두 손으로 일기장을 힘껏 붙들어 쥐고 서 있습니다.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없을 만큼 다리에 힘이 풀려 꼼짝할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자다가도 방을 들여다보고 혜리가 화장실에 오래 있는 시간까지도 불안해서 문을 두드려보기도 했습니다.

혜리 반 친구 중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민지 핑계를 대며 상담 선생님은 혜리를 상담실로 불렀습니다.

민지 이야기를 하며 혹시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혜리는 어떤지 하며 선생님은 혜리에게 접근해 갔습니다.

상담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혜리 그림. ⓒ최선영

엄마와 담임선생님과 달리 언니 같은 편안함이 있던 상담 선생님에게 혜리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을 진솔한 모습으로 전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혜리가 미술을 하기를 바라는데 자기는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일기장에 매일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고 했습니다.

혜리가 남긴 일기장의 글은 혜리의 마음이 아니라 혜리의 꿈을 이루기 위한 긁적임이었다는 말을 합니다.

또래 친구들의 모습을 살펴보며 한 번쯤 해 봤을 고민을 다룬 에세이 형식의 소설이라고... ​

다 믿지는 않았지만 혜리 엄마도 담임선생님도 상담 선생님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되었습니다.

혜리는 일기장에 다른 이야기들을 적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사랑 이야기를 재미있게 써놓기도 하고 이별의 슬픔을 아프게 담아놓기도 했습니다.​

혜리 엄마는 더 이상 혜리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지 않았고 더 이상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혜리는 생각보다 많이 영특한 아이였습니다.

혜리는 엄마가 몰래 일기장을 보는 것도 알았고 의도적으로 혜리를 상담실에 부른 이유도 알았습니다.

혜리의 글은 꿈을 위한 긁적거림이 아니라 혜리의 마음이었고 현실이었습니다.

혜리가 그렇게 둘러대도 알아주기를 바랐는데...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혜리는 서글펐습니다.​

혜리는 더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볼 수 없는 곳에 마음을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혜리의 본명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다음에 자신이 없는 이 세상에 남겨진 자기를 아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기 시작합니다.

자기를 아는 모든 친구들은 차단 하고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속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그런 혜리의 글에 좋아요를 열심히 눌러주는 알 수 없는 친구가 하나 생겼습니다. 그 친구의 글은 언제나 밝고 건강한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글의 내용으로 보면 혜리와 비슷한 또래인 것 같았지만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 친구는 혜리와 달리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글을 올리면 늘 좋아요가 넘쳐났고 그의 유쾌한 글에 모두 즐겁고 행복하다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습니다.

혜리가 계획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혜리는 그 친구를 마지막으로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혜리의 어두운 마음이 담긴 글에도 그 친구는 혜리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반응한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혜리의 글을 어른들이나 혜리를 아는 다른 친구들이 보았다면 그런 나쁜 생각을 한다며 호들갑을 떨 것이 분명했는데, 그 친구는 침착하게 혜리의 그런 마음을 그저 들어주며 그럴 수 있겠다는 공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친구는 만약 지금 계획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 전에 꼭 한 번 더 생각해보고, 그래도 그러고 싶다면 꼭 자기에게는 작별 인사를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그 얘기를 하면 넌 경찰에 신고해서 나를 찾아내고 그 일을 막아보려는 거겠지"

혜리는 그 친구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면서도 너에게만큼은 꼭 말해주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혜리는 그렇게 반년을 보내며 고등학교 가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이라는 결심을 다시 한 번 합니다.​

중학교 3학년이 된 혜리는 16살이 되었습니다.

15살 평범하게 보이던 혜리의 모습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속마음을 모르게 잘 포장해 놓고도 누군가는 좀 알아주기를 바랐는지 혜리는 울퉁불퉁한 마음의 모양을 조금씩 드러내며 거칠게 변해갔습니다.

엄마도 선생님도 혜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도 그 또한 사춘기라는 타이틀 탓이려니 하며 얼른 이 시기가 잘 지나가기를 바라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혜리는 더 외로워졌습니다​

"여름이 오기 전에..."​

혜리의 계획은 점점 구체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에 매서운 칼바람이 교복 위에 두터운 재킷을 걸치게 합니다.

새로운 담인 선생님 새로운 반 아이들... 작년과 하나도 다를 것 없는 상황이지만 고등학교 진학이 대학으로 연결된다는 생각에 이미 아이들은 입시 지옥 그 문턱에 들어선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든 것에서 혼자 덩그러니 동떨어져 있는 혜리는 창가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앞에서 선생님이 열심히 설명하는 것에 귀 기울이지 않고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아이를 보게 됩니다.

"쟤도 내과인가?... 선생님 저 쟤랑 짝하고 싶어요"​

혜리는 그 친구와 짝이 되고 싶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나랑 비슷한 아이와 보내다 가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어~그래~민경이 옆에 가서 앉아"​

선생님은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혜리와 짝이 된 그 친구의 이름은 민경이었습니다 조민경...

"너 이름 한번 평범하다"​

혜리의 돌직구에도 민경이는 반가움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은 환한 미소를 보냅니다.

활짝 웃고 있는 민경 그림. ⓒ최선영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잘 지내보자"

혜리는 민경의 미소가 마음에 들었는지 먼저 악수를 청합니다. 민경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혜리의 손을 꼭 잡습니다.

​점심시간이 되자 혜리는 민경을 바라보며 함께 식당으로 가자고 말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서는 민경에게 혜리는 이번에도 돌직구를 날립니다.

"너 벙어리야? 왜 말을 안 해 답답하게"

"걔 장애인이야 말 못하잖아 넌 몇 시간 째 짝이면서 그것도 몰랐니?"​

​혜리의 말을 듣고 있던 은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혜리에게 말을 던집니다.

순간 멍 해진 혜리는 미안한 마음과 알 수 없는 생각들이 뒤엉켜 잠시 그 자리에 서있습니다.

"입모양 보고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아니까 천천히 말해줘"

이번에는 민경이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해진이 ​말을 합니다.

​"귀찮게 생겼군... 그럼 내가 얘를 돌봐줘야 되는 거야?"

혜리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습니다.

"돌봐줄 필요는 없어 난 아기가 아니니까 그냥 조금만 도와주면 돼~"

혜리의 입모양을 보고 민경이 작은 메모지에 써 보입니다.

"아 미안... 알았어 도와줄 일 있으면 말해 도와줄게"

혜리가 민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모양을 크게 하며 말하는 모습에 민경이는 활짝 웃으며 밥 먹으러 가자는 손짓을 하며 혜리의 팔짱을 낍니다.

"난 왜 얘를 모르지?..."​

민경이는 작년 가을에 이곳으로 이사를 온 탓에 혜리가 몰랐던 것입니다.

​민경이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수업시간에 책을 아주아주 열심히 보고 있었습니다. 교과서를 보다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면 노트에 받아 적었는데, 필기 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혜리가 채워주었습니다.

열심히 듣고 필기를 해야 민경에게 보여줄 수 있었기 때문에 혜리는 민경의 짝꿍이 되고부터 수업도 열심히 듣고 잠시 손놓고 있던 공부도 의도치 않게 하게 되었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민경이와 그날 배운 내용을 민경에게 가르쳐주며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혜리는 함께 하면 할수록 티 없이 맑고 아주 많이 밝은 민경이의 예쁜 모습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넌 뭐가 그렇게 좋아서 맨날 웃고 다니고 대체 뭘 하려고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혜리의 퉁퉁거리니는 질문에 민경이 작문의 톡을 보냅니다.

​혜리와 짝이 된 것이 인생에 아주 큰 행운 같다며 고맙다는 말로 시작한 민경이는 9살 때 가족여행을 가던 길에 사고가 났다는 말을 합니다.

그 사고로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자신은 더 이상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를 안게 되었다고 합니다. 3살 아래 동생이 있는데 동생도 머리를 크게 다쳐 지적장애를 안게 되었다는 다소 충격적인 말을 덤덤하게 했습니다.

​병원에 실려간 민경의 가족은 살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또 했지만 부모님은 어린 두 아이를 남겨두고 채 감기지 않는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민경의 톡을 읽으며 눈물 흘리는 혜리 그림. ⓒ최선영

톡을 보던 혜리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너 근데 어떻게..."

혜리는 민경을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냈냐고 되묻습니다

​"내가 살아낸 게 아니야... 어려움이 많겠지만 아주 많이 힘든 일도 만나겠지만 그럴 때마다 눈물 나면 울고 화나면 화내고 싸우고 싶으면 싸우더라도 끝까지 너 자신을 포기하지는 말고 아빠 엄마 몫까지 살아달라는..."

​민경이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톡을 이어갑니다

​"부모님의 유언이잖아... 그리고 내게는 살아가야 할 효경이라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고...내가 보호자잖아...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아지는 게 인생인 것 같아 이렇게 열심히 살다 보면 난 분명히 행복해질 거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고"

​​혜리는 잠시 아무 말없이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다 다시 민경을 바라봅니다

"그럼 누구랑 살아?"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훌륭한 조부모님은 계시지^^"

민경이 웃으며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혜리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몇 년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며 내린 결론이 세상과의 이별이었는데...

​"난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진짜 뭐하고 산 거야"

민경이 때문에 열심히 노트 필기 정리를 다시 하며 공부하는 혜리를 대견하게 생각하는 혜리의 부모님...

밤마다 간식을 준비하고 새벽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이고 다소 거칠어졌지만 책상 앞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혜리가 예뻐~예뻐~하며 책상 한쪽에 용돈을 슬그머니 놓고 나가는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아빠...

그리고 늘 전교 1,2등을 왔다 갔다 하며 잘난척하는 왕 재수지만 옷을 살 때는 꼭 혜리 꺼까지 사들고 오는 미리 언니...

혜리는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게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일까요...

혜리가 그날 밤 찾고 찾은 딱 하나의 이유는 미술이었습니다. 언니는 음악을 하니까 넌 미술을 하라는 부모님의 말...

아빠는 성악가였고 엄마는 화가인 두 분은 두 딸에게 당신들이 걸었던 길을 걷게 하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예술가 집안 그게 두 분의 바람이었습니다 . 남들처럼 판검사 의사 되라는 억지 아니니까​. 다른 건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 이 길만큼은 꼭 가야 한다는 것이 부모님의 입장이었습니다.

"고작 이거였어 내가 세상을 버리려 했던 이유가..."

혜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혼잣말을 합니다

​다음 날 혜리는 상담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선생님 저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혜리는 혼자만의 공간에 갇혀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아 피하려 했고 끝내려 했던 세상을 향한 마음을 활짝 열었습니다.

​혜리의 부모님은 상담실에서 눈물을 보였습니다 혜리가 여러 번 부탁하고 애원까지 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혜리가 원했던 세상을 꿈꾸게 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아주 작은 문제 하나를 넘지 못하고 세상을 아니 자신을 버리려는 생각을 하며 살았던 시간들을 혜리도 많이 후회했습니다​. 혜리는 이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려갑니다.

활짝 웃고 있는 혜리와 민경 그림. ⓒ최선영

"민경아... 고마워 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게 해준 나의 멋진 친구야"

민경이 혜리의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비밀 하나를 고백합니다. 늘 좋아요를 누르던 그 이름 모를 친구는 민경이었습니다.

작년 가을 전학을 온 민경의 존재를 혜리는 모르고 있었고​, ​민경이도 처음에는 혜리인지 몰랐지만 혜리가 비공개로 올리려 했던 사진이 실수로 친구 공개로 올려진 것을 보고, 혜리라는 것을 알았고 어떻게든 혜리의 결심을 돌이켜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에 같은 반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매일 아주 간절히 했다고 했습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혜리와 같은 반이 되었는데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데, 혜리가 옆에 앉았다는 말을 하며 그 순간 너무 기뻐서 소리 지를뻔했다며 진작 말하지 않았던 거 미안하다고 합니다.

​혜리도 잡은 민경의 손을 더 꼭 잡으며 말합니다. 세상을 버리고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제발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누군가 나를 좀 붙들어주기를 바랐는데 민경을 처음 보았을 때 낯설지 않은 나 같은 느낌이 들었다며 하늘이 보내 준 선물 같다고..친구가 되어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볼 빨개지며 건넵니다.​

​"우린 멋진 베프야!"

꼭 잡은 그 손으로 민경과 혜리는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갑니다.

때로는 나의 아픔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이의 마음을 조금만 이해해주면 그 어떤 이는 살아갈 새로운 이유를 찾게 되기도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내 문제가 되면 죽을 것 같은 어려움이 될 수도 있기에 다른 사람의 문제 앞에 그 사람의 마음이 되어 손잡아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산이 내 앞에서 나를 막아서고 있는 것 같아도 조금만 용기를 내고 첫발을 내디뎌 보면 충분히 오를 수 있고 넘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장애인이어서 더 슬픈 것도 아니고 비장애인이어서 더 행복한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민경이와 혜리가 만나 행복이 된 것처럼 함께 어우러지면 더 아름답고 행복해지는 세상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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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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