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척수장애인협회는 KOICA지원의 국제개발협력사업으로 네팔에서 ‘척수장애인 직업재활훈련사업’을 하고 있다. 알다시피 2006년 네팔에 대지진이 발생하여 부득이하게 재건사업이 우선순위가 되어 직업재활센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도 꼭 직업재활사업을 해야겠다는 신념과 준비를 하고 있던 차에 네팔에서의 시도를 주저할 필요는 없었다.

KOICA의 교육을 받으면서 귀가 닳도록 들은 이야기가 현지화전략과 출구전략이다. 현지화전략은 우리의 생각이 아닌 철저히 그들의 눈높이에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하라는 전략이다. 장애인의 문제를 장애인의 시각에서 보지 않으면 성과도 적을 뿐더러 상처를 줄 수도 있다. 장애포괄적사업의 개념과 동일한 것이다.

철저히 현지화에 대한 고민을 하였다. 한국의 척수장애인의 사정도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한국에서의 상황을 빗대어 고민을 하면 영락없이 문제가 생기곤 했다. 생활수준과 문화 그리고 관습이 다르다는 것은 같은 장애유형의 동질성을 가져도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직업재활지원센터를 셋팅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를 많이 썼다. 당사자의 욕구를 조사하고 어떤 직종이 적당할지 다양한 형태의 시장조사와 함께 네팔현지 NGO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최종적으로 사무기초 훈련(컴퓨터, 영어, 행정 교육), 자수 및 옷 수선 훈련, 피클제조 훈련, 베이커리 훈련 등 4종류의 과정이 선정되었다.

훈련을 담당할 교사들을 선발하여 교육을 하고 관련 교재와 훈련일지, 상담일지 등 각종 양식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사용되는 자료들이 이곳의 상황과는 맞지 않아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시작하였다. 이를 위해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의 전문가와 함께 가서 전체적인 컨설팅과 직원교육을 위한 워크숍도 열었다.

현지화전략 중에 하나가 척수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훈련에 참여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처럼 활동보조제도나 근로지원제도가 없고 가족과의 유대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족 중에 한사람이 같이 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지역으로 돌아가서도 서로가 협업을 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된다.

자수 및 옷 수선 훈련반 실습 장면. 수료생 중 성적 우수자에게는 재봉틀과 인터로크 등의 성공패키지를 주어 지역사회에서의 자립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찬우

또 하나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현지화전략은 특별히 자본이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 창업도구를 지원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수선과정에 참여하여 성적이 우수한 훈련생에게 재봉틀과 인터로크 기계를 제공하여 지역에 돌아가서 바로 창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훈련생들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 현지화전략을 설득할 때 심사위원들로부터 그간의 경험으로 비추어 많은 염려와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도덕적 해이로 인해 돈은 돈대로 들고 효과는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확신이 있었다. 한국의 경쟁식 수업으로 수업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과정을 마치면 MBA출신 매니저가 각 가정을 방문해 마케팅 컨설팅 및 판로도 함께 개척하고 있어 개발도상국에 새로운 직업재활 모델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이 프로젝트를 잘 정리하여 네팔에서 대학과정을 개설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벌써 네팔의 각계에서 이번 직업재활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사무기초 훈련반에 참여중인 10명의 훈련생 중에 5명은 수료 전에 취업이 확정되어 담당자는 물론 훈련생들의 학습 분위기가 뜨겁다. 현재 네팔은 컴퓨터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어 관련 훈련과정이 기대되고 있다.

사무기초 훈련반 공개 수업장면. 이들 중에 일부는 수료전에 취업이 되는 성과를 이루고 있다. ⓒ이찬우

직업재활센터를 짓는 과정에서도 한국의 BF(베리어 프리, 무장애 환경)를 접목하려 한국장애인개발원의 전문가를 모시고 함께 출장을 가서 설계에서부터 휠체어를 타야하는 척수장애인의 이동과 접근성을 철저히 계산했다. 이로써 네팔 최초의 BF를 접목한 직업재활센터가 탄생되었다. 한국의 좋은 문화를 현지에 접목하여 발전시키는 것도 좋은 현지화의 전략이다.

또 하나의 전략은 출구전략이다. 한국의 지원이 끝나도 자체의 힘으로 운영을 하도록 하는 출구전략이 남아 있다. 사업의 시작에서부터 너희들이 이 센터의 주인이다. 애정을 가지고 지원이후를 고민하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를 했다. 영원히 지원할 것처럼 헛된 희망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항구적인 운영을 위해 베이커리 부분을 세팅하기로 했다. 최근 빵의 수요가 있어 이곳 공장에서 빵을 만들어 도매로 판매를 하면 충분히 수익이 가능하다는 계산 하에 결정을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제빵 설비도 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공급처를 확보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이 사업의 예산은 협회의 자부담이 들어가는 부분이다.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아직 후원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 자부담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포기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여러 차례이다. 하지만 자부담의 해결문제는 NGO가 언젠가는 넘어야 할 장벽이다. 이런 도전이 두려웠다면 시도도 안했을 것이다.

지금 직업훈련의 각 과정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수료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기뻐하는 그들의 환한 표정과 이 사업이 인생의 사다리와 같다고 하는 그들의 고백에서 국제개발사업의 의미를 찾는다. 이 사업이 장애인단체가 진행하는 장애포괄적 국제협력사업의 성공적인 사례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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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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