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 타고 있는 희수를 보고 있는 진욱 그림 ⓒ최선영

그가 그녀를 처음 본 것은 후배들의 졸업여행 배웅을 나 간 곳에서였습니다

제주행 배를 타기 위해 부산을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으며 그는 교수님 옆에 앉아 있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그는 잠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깊은 눈빛에 온몸이 휘감겨 제대로 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그의 걸음은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멈춰 버렸습니다

뒤편에서 선배님을 외치는 후배들의 소리에 정신을 차린 그는 깊은 그녀의 눈빛에 그의 마음을 남겨두고 후배들이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그는 올봄 다시 복학한 불어불문학과 4학년 유진욱입니다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그는 이미 사업을 시작해 바쁜 일과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회화과와 조인트 해서 가는 졸업여행에 후배들과 함께 가지 못하는 미안함과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배웅을 하러 나왔습니다

곧 출발한다는 말을 듣고 그는 후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버스에서 내립니다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자 그의 마음에는 알 수 없는 진동이 울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버스를 한 걸음씩 쫓아가다 버스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그는 버스에 몸을 태우고 다시 한 번 그녀와 시선을 마주합니다

"선배님~"

"너희들이 눈에 밟혀 그냥 갈 수가 없구나... 부산까지 같이 갔다가 오려고"

어리둥절해 하는 후배들에게 다가간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합니다

그의 말에 후배들은 선배가 정말 우리를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오랜 시간을 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지루함을 채우기 위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불문과 남학생이 성큼성큼 앞으로 나섭니다

오리엔테이션 강사라도 해본 듯한 능숙한 말솜씨로 버스 안은 이내 분위기가 달아올랐습니다

불문과와 회화과 서로 간에 잘 모르는 얼굴이 대부분이었기에 어색함을 풀기 위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노래 부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진욱은 그 시간을 통해 조금 전 마음을 남겨둔 깊은 눈을 가진 그녀의 이름이 유희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수가 부르는 노래는 엔제인가부터 그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던 가장 좋아하는 노래였습니다

희수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노랫말과 함께 어느새 희수는 그의 가슴에 작은 파도가 되어 출렁거리고 있습니다

노래하는 희수 진욱 그림 ⓒ최선영

희수의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받은 희수의 지도교수님은 앵콜까지 부르고 살짝 미소를 보내는희수를 바라보며​ 희수가 함께 와서 마음이 기쁘다는 말을 건넵니다

다리가 불편했던 희수는 한라산 등반이라는 졸업여행이 부담스러웠고 이번만큼은 오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희수가 가지 않으면 나도 안 간다"라는 교수님의 말이 선배들과 동기들에게도 이어져 희수는 결국 버스에 올랐습니다

이번 졸업여행의 프로젝트는 희수와 한라산 등반하기라고 할 정도로 교수님과 선배 동기들은 희수와 함께 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알았기에 희수도 고집을 꺾고 함께 등반을 결심했습니다

희수도 교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버스가 부산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린 진욱은 그제야 희수의 불편한 다리를 봅니다 진욱의 마음 한편이 먹먹해져 옵니다​

오랜 기억 저 깊숙한 곳에 묻어두었던 그녀가 희수를 통해 다시 돌아와 그의 마음을 할퀴는 듯했습니다

진욱은 잠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다 제주행 배에 오릅니다

"선배님 마음 아니까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내일 중요한 미팅 있어서 못 가시는 거라고 하셨잖아요"

"괜찮아 아무래도 일생에 한 번 있는 졸업여행인데 가야 할 것 같다"​

후배들의 말을 뒤로하고 진욱은 따라가겠다며 떼를 씁니다

"아니 왜 저래? 너무 오버하신다"

후배들은 그때부터 선배의 알 수 없는 동행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그 의심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한 것은 배에 올라 불문과 후배들 틈에 있어야 할 진욱이 회화과 학생들 틈에서 서성이며 명함을 건네기도 하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어렵지 않게 교수님과도 많은 대화를 나누는 시간 속에 희수의 뱃멀미가 심해져 약을 가지러 뛰어다니는 모습에서였습니다

​그를 좋아하던 여자 후배들은 속상한 마음을 담아 수군거리기 시작합니다

"선배가 저러는 거 처음 봐 여자는 관심도 없다더니..."​

그 수군거림을 아랑곳하지 않고 진욱은 희수에게 더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섭니다

제주에 도착하고 ​한라산 등반이 시작되었습니다

교수님과 선배들은 희수를 번갈아가며 업어주며 희수의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삼촌처럼 오빠처럼 그렇게 희수를 다독이며 함께 했습니다

장애에 대한 편견... 차별... 그런 세상의 가시들은 희수에게는 비켜가는 듯 희수는 배려와 따뜻함을 더 많이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백록담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희수 그림 ⓒ최선영

맑은 하늘은 희수에게 아름답고 신비로운 백록담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여기저기 걸쳐있는 뭉게구름은 희수를 향해 동동거리며 다가옵니다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구름 사이로 희수의 미소가 퍼져나갑니다

"우리 희수랑 같이 이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기분이 좋구나"

교수님은 희수의 어깨를 토닥이며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에 예쁜 추억을 남겨두고 그들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몸이 약한 희수는 많이 피곤했는지 숙소에 돌아오자 씻고는 바로 잠이 듭니다 곤히 잠든 희수는 잠결에 선배의 손에 이끌려 제주도 거리로 나갑니다

희수가 잠도 덜 깬 상태에서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도착한 곳은 나이트클럽이었습니다

​이미 도착해 있는 불문과와 합석을 하고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그제야 희수는 정신을 차립니다

저녁도 먹지 않았다는 말에 ​진욱은 희수에게 과일안주를 앞에 놓으며 포크로 집어 줍니다

"아니 진욱 씨는 왜 자꾸 희수 옆에 와 있어요~"

불문과 후배들 틈에 있어야 할 진욱이 희수 옆에 있는 것을 보고 희수의 선배 병철이 못마땅한 듯 말합니다

"희수... 오늘부터 제 동생 삼으려고요 희수 오빠 없다고 했지? 오늘부터 내가 너 오빠 해줄게"

진욱은 희수를 바라보며 말합니다

밤은 깊어지고 ​어느새 불문과와 회화과는 제자리가 어디인지 조차 모를 만큼 뒤죽박죽 엉켜 젊은 청춘을 즐기고 있습니다

시끄러운 그곳을 피해 희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습니다 제주의 밤공기는 푸른 내음으로 가득했습니다

낯선 곳이라 멀리 갈 수는 없었지만 저만치 보이는 바다 위에 내려앉는 별빛의 반짝임을 따라 희수는 천천히 걸어갑니다

서로의 몸을 비비며 그들만의 언어로 속삭이는 파도의 움직임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들을 향해 다가가는 희수를 진욱이 부르며 쫓아옵니다

"같이 가자"

말없이 바닷가 모래밭에 내려선 진욱이 손수건을 꺼내 펼쳐놓은 자리에 희수를 앉게 합니다

나란히 앉은 두 사람은 파도의 속삭임을 함께 담으며 쏟아지는 별들의 시선을 마주합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던 진욱이 먼저 말을 건넵니다

바다를 바라보며 나란히 앉아 있는 진욱과 희수 그림 ⓒ최선영

"희수야... 나 이렇게 편하게 불러도 되지?"

"아... 네 선배님이신데..."

"선배... 난 너 선배는 하기 싫고 오빠하고 싶다니까 아무래도 이 오빠는 희수에게 첫눈에 반한 것 같다"

진욱은 희수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합니다

​"전 그런 거 안 믿어요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는 달콤한 말... 혹시 호기심인가요?"

진욱은 희수의 말에 마음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꺼내기 힘들었던 아픈 이야기를 희수에게 보여줍니다

진욱이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며칠 전 친구들과 갔던 여행에서 난생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그 여학생 역시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이제 대학 입학을 기다리다 친구들과 여행을 왔습니다 3박 4일 동안 함께 하며 그들은 추억을 나누었습니다

대학 입학하면 친구가 아닌 연인으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그게 그녀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녀가 탄 버스는 사고가 났고 타고 있던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도 크게 다쳤습니다

그녀는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불청객과 같은 장애라는 새로운 이름을 받아들었고 그녀를 찾는 진욱의 연락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진욱을 만날 만한 마음의 여유도 삶의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녀를 찾아간 진욱을 그녀는 끝내 만나 주지 않았습니다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난 괜찮아 우리 약속은 변하지 않았어"

진욱은 이제 갓 대학생이 된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를 품어줄 만큼 큰 가슴을 가진 멋진 남자였습니다

진욱의 진심을 그녀는 동정으로 받아들였고 견디기 힘들었던 그녀는 나쁜 선택을 하려 했습니다

그녀의 그런 모습에 진욱은 그녀 앞에 더 이상 나설 수 없었습니다

희수를 본 순간 희수에게서 그녀를 보았습니다 닮지 않았는데 진욱은 그녀에게 느꼈던 그 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사랑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다시는 그 누구도 마음에 담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진욱의 마음을 그녀의 깊은눈빛이 두드려주었습니다​

그 두드림에 진욱의 마음은 열려버렸고 희수를 그 순간 담아버렸습니다

희수의 불편한 다리를 본 순간...

그녀를 그렇게 포기하고 아주 많이 후회했던 기억을 떠올렸고 이번만큼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제주행 배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건 저에 대한 감정이 아닌 것 같아요 전 누구를 대신해서 그 자리에 있고 싶지는 않아요"

희수는 진욱의 말을 듣고 더 냉정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희수야... 내가 사랑인지 동정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찾아내도록 도와주지 않을래?"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전 선배에 대해 아무 감정이 없어요"

"알아 그런데 넌 지금 내 마음에 들어왔고 널 절대로 놓지고 싶지 않아 내가 어떤 마음인지 네가 알게 해줄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내 옆에만 있어줘"

진욱은 이미 희수를 향한 마음이 동정이나 옛사랑에 대한 기억 때문이 아니라 희수를 담아버린 그 마음을 희수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날부터 진욱은 사업 때문에 바빴지만 시간을 쪼개고 쪼개 희수에게만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고... 희수가 진욱의 진심을 알아갈 때 즈음... 희수의 졸업작품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진욱은 커다란 꽃을 들고 나타나 희수의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합니다 희수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며 정식으로 사귀고 싶다고 허락해 달라고 했습니다

진욱의 진솔함과 듬직함에 희수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다만 부모님은 희수가 마음이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망설였습니다

진욱은 절대 희수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약속을 했고 그 약속대로 진욱의 부모님을 잘 설득했습니다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진욱의 부모님도 희수를 예뻐해 주었습니다 나란히 졸업하고 그들은 다시 제주의 푸른 바다로 신혼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다시 찾은 제주의 바다에 다정하게 앉아 있는 진욱과 희수 그림 ⓒ최선영

진욱이 희수에게 마음을 전하던 그 바닷가에 그들은 다시 나란히 앉아있습니다

"희수야 너 그때 정말 나에 대한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거야?"

진욱은 그때의 일이 아직도 서운한지 뾰로통한 표정으로 희수를 바라봅니다

"아니~오빠가 그렇게 말할 때 얼마나 설레었다고... 그런데 동정이나 옛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닐까란 생각에 그랬던 거죠"

진욱은 희수가 다리가 불편하지 않아도 희수를 사랑했을 거고 지금보다 더 불편했더라도 역시 사랑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사랑을 속삭이며 마주보는 진욱과 희수 그림 ⓒ최선영

"난 너의 조건을 본 게 아니라 너의 눈 속에 담긴 너의 마음을 보고 사랑에 빠진 거니까"

다시 찾은 그곳의 별들은 더 반짝이는 아름다운 시선을 그들에게 쏟아냅니다 제주도의 푸른 밤은 그들에게 그렇게 사랑을 속삭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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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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