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주 전 쯤엔가 한 초등학생의 어머니와 1시간 남짓한 시간을 집중하며 통화 한 적이 있는데, 그 내용이 참 섧습니다. 윌리엄스 증후군(Williams Syndrome)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2학년 된 딸이 중간고사 시험 문제 중 복사된 그림을 보고 상황을 알아맞히는 문제가 있었는데, 또래에 비해 인지나 문장해석에 어려움이 있는데다 시커멓게 복사된 그림을 보고는 도무지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어 마음이 많이 상했었나 봅니다.

집으로 돌아와 조금은 어눌한 말투로 엄마한테 속상함을 토로하는데,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싶어 이 어머님이 섧어서 눈물이 나더랍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애가 있는 아이를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로 보내는 것이 ‘부모의 욕심’ 같다는 절친의 돌직구에 그만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것이지요.

“세상에 가뜩이나 또래에 비해 인지가 느린데 칼라가 아닌 시커먼 흑백사진을 보고 어떻게 아이가 문제를 풀겠어요? ‘담임이 우리 아이에게 조금만 관심이 있었어도 이렇게 문제를 내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에 서럽고, 점점 자신감을 잃어가는 딸을 보니 불쌍해서 서럽고, 비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살게 해 주고 싶은 소박한 소원이 부모의 욕심으로 비춰져 서럽네요. 그냥 딸이 비슷한 또래들 속에서 자신감이라도 가질 수 있도록 내년엔 특수학교로 보낼까 생각중입니다.”

가끔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다녔던 한 학교와 MOU체결을 위해 교장선생님과 특수교육담당자를 만났습니다. 공식적인 절차에 앞서 짧은 인사와 무게감 없는 식순 이후 교장선생님의 첫 질문이 이랬습니다.

“일반학교에 특수학급이 왜 필요합니까? 일반 학생들과 경쟁해봐야 상처만 받을 테고,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특수학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자신감이라도 키우는 게 좋지 않습니까?”

사전에 교장선생님의 카리스마 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제보를 입수했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장애학생들의 교육과 지원을 위해 상호간 MOU를 체결하는 자리에서 ‘특수학급 존재의 당위성’이라는 뜻밖의 질문에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특수교육담당자는 거의 넘어가기 일보직전이었고요.

자리가 자리인 만큼 누구의 감정도 상하지 않고, 모두의 입장을 고려하면서 학문적이지 않은 답변이 절실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 (다분히 제 생각입니다만)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 입술에 순발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토씨 몇 개 정도 다를 뿐 다음은 그날 그 자리에서 제가 한 답변의 전문입니다.

“교장선생님, 많은 사람들이 예방접종을 합니다. 예방접종은 병들었든 건강하든, 장애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예방접종이라는 것이 당장 병을 이겨낼 수 있는 항체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죽었거나 힘이 약한)나쁜 균을 인체에 주입해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힘을 길러주는 것 아닙니까? 조금씩 나쁜 균에 대한 면역성이 생기고 싸워나갈 힘을 키우다보면 더 큰 질병이 와도 ‘어허~ 덤벼라 잡것들아~’ 하면서 사뿐히 지르밟을 수 있는 것처럼, 특수학급도 그런 곳이라 생각합니다.

장애학생들이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만 받다 사회로 진출한다면 갑자기 경험하게 될 차별이나 실패, 좌절 등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나마 학령기는 학교의 보호를 받는 시기니 이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통해 (나쁜 균과 같은)실패나 아픔을 겪어보고 내성을 길러 주는 것이 훗날 이들에게 더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제 답변이 끝난 후 잠깐의 침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음~ 예방접종이라...’ 혼잣말을 읊조리며 협약서에 서명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필체가 힘 있어 보였습니다. 아, 그때 특수교사 선생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네요. 하하하.

다시 서두로 돌아가 통화 말미에 그 어머니께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특수학교든 특수학급이든 선택은 어머니 몫이지만 어느 곳에 가서든 상황이 더 좋아질 것이라 기대하기에 앞서, 저는 어머니께서 조금만 더 당당해 지셨으면 합니다. 장애가 있는 학생이 시험 칠 때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배려’의 문제가 아닌 ‘차별’의 문제입니다. 배려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차별을 한 것이지요. 우리나라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그렇게 명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선생님이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꺼에요. 그러니 가서 ‘확’ 뒤집어엎으란 소린 아니고요. 당연한 권리에 대해 위축되지 말고 당당해지셨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그렇게 말씀 드렸는데도 ‘뭐, 장애가 벼슬입니까? 어떻게 일일이 매번 시험 때마다 걔한테만 칼라복사를 해 줄 수 있어요?’라고 말하면 그때 가서 제대로 엎으세요.”

물론 웃으며 파이팅하고 통화를 끝내긴 했지만, 생각과 고민은 많고 자신감은 점점 잃어가는 어머니께 더 큰 짐과 숙제를 안겨드린 게 아닌가 싶어 밤잠을 설쳤지요. 다음 주엔 일부러라도 시간을 만들어 꼭 찾아뵈어야겠습니다.

장애인의 자립에 있어 ‘실패할 권리’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자립의 주요 요소를 ‘자기결정과 선택’이라고 할 때 실패란 두 기제의 작용으로 자연스레 파생될 수 있는 결과입니다. 자기가 선택하고 결정했으면 실패도 당당하게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것을 우리는 자립의 세 번째 요소인 ‘자기책임’이라 말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 자립 혹은 독립을 했다는 것은 단순히 홀로서기를 했다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실패를 동반한 결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발달장애인들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능력이 다소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의사반영으로 실패를 유발할 필요는 없겠으나, (학령기 혹은 특수학급과 같은)어느 정도 제한적인 환경에서의 소극적 실패는 좋은 예방접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령기 이후 시설입소를 준비하지 않는 한 지역사회에서의 통합된 삶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니 어쩌면 특수학교, 특수학급 혹은 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 등 다양한 형태의 교육시설을 창조하기보다 그 내용에 집중함이 옳은 것 같습니다만, 안타깝게도 많은 발달장애아동의 경우 부모 혹은 보호자가 ‘실패할 권리’를 전담마크 한 채 수비중심의 경기운영을 펼치고 있습니다.

많이 맞아 본 사람이 요령껏 맞는 법을 알고, 많이 져 본 사람이 패배에 의연할 수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많이 맞다가 잘 때리는 법을 터득하고, 많이 지다가 이기는 법을 찾게 될지. 예방접종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저희 첫째는 독감예방주사 맞은 날 독감에 걸렸습니다. ‘이런 된장~’이라 했지만서도, 그게 무서워 예방접종을 회피하기엔 그 유익함이 크지요.

장애로 인해 가슴시린 경험을 한다는 것은 당사자나 부모, 가족 모두에게 아픔이고 상처입니다.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일하다보니 자녀가 성인임에도 놓지 못해 노심초사하는 부모님들의 모습을 자주 마주합니다. 부모가 문제는 아니지요. 사랑하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방접종이 완벽하진 않아도 유익함이 있는 것처럼 장애자녀가 겪게 될 실패, 좌절, 차별의 경험이 결코 무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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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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