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출근길에 흥미로운 뉴스를 들었다. 국민의 반 이상이 계층이동(신분상승)을 한다는 것에 부정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통계청이 2016년 국민 4만 명을 대상으로 자녀의 사회적, 경제적 계층이동 가능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반 이상인 50.5%가 가능성이 낮다는 부정적인 답변을 하였고 30%만 희망적이라는 응답을 하였다는 것이다.

10년 전에도 동일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는데 당시에는 비관적 응답이 29%, 희망적 응답이 40%였었다고 한다. 10년 사이에 비관적 응답이 배로 늘어났고, 희망은 4분의 1이나 줄었다. 그간의 정치상황이나 경제상황이 나빠진 결과라고 자조하기에는 너무나 쓸쓸하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아무리 힘들어도 열심히만 하면 희망적이라는 이야기는 지금 시대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이는 대부분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의 결과였을 것이고 만일 장애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하였다면 그 분위기는 예상대로일 것이다.

이번 정부에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지명된 김동연 후보자의 '고졸 신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판잣집 흙수저 출신으로 덕수상고를 졸업한 뒤 생업과 학업을 병행하며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 관료로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물론 후보자는 총명함과 성실함으로 미래를 준비했고 적절할 시기에 기회가 주어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가 많아야 기회의 사회가 되고 공명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국민 모두는 알고 있다.

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시스템도 매우 중요하다. 원치않는 사고나 질병으로 척수장애라는 굴레를 짊어졌어도 적절한 재활시스템으로 충분한 사회복귀 훈련의 기회를 얻고 휠체어를 탔지만 지역사회에서 역동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중증의 장애인들도 계층이동의 기회에서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무부양제를 완화하고 기초생활수급제도로서 국민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게 한다고 해도 이 제도로 들어가는 순간 자수성가는 꿈이 되고 계층이동은 물거품이 된다. 정부는 얄팍한 제도의 평안함에 안주하지 않게 끊임없이 제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해야 한다.

교육의 기회와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하고 활동지원제도와 적절한 보장구를 제공하여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미국의 재활시스템처럼 일하려는 장애인에게는 계층이동을 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인 사지마비의 척수장애인인 김종배박사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고 국내로 돌아와 다양한 분야에서 멋진 활동을 하고 있다. 서울대의 이상묵교수도 미국에서 자동차사고로 전신마비 척수장애인의 되었지만 IT를 기반으로 한 재활훈련을 받고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재활과 교육의 기회가 없었다면 그들도 그저 평범한 장애인이 되었을 것이다. 이 사회가 이러한 재활시스템과 교육시스템이 일부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제도로서 어느 척수장애인이나 중증장애인에게도 기본적으로 주어져야 계층 이동을 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갖는 것이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의 사회복귀훈련 프로그램 일상홈. 제대로 된 재활시스템이 계층이동의 첫 단추이다. ⓒ이찬우

척수장애인은 계급사회가 있다. 평생 연금을 받는 보훈대상자나 산재대상자도 있고, 보상금을 받는 교통사고자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혜택도 없는 MH(맨땅의 헤딩)대상자에게 동등한 출발을 할 수 있는 사회복귀훈련과 학업, 근로의 기회마저 없다면 그 자죄감은 말로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중증장애인에게는 근로를 통한 경제활동이 계층이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2016년 통계청의 ‘가구 동태 조사’에 의하면 임금근로자의 빈곤 탈출율이 가장 높았다라고 한다. 무려 50.1%의 임금근로자가 빈곤 탈피를 경험했다. 자영업자는 이 비중이 46.7%다. 직장을 갖지 못한 사람의 빈곤 탈피율이 19.3%란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일자리의 중요성은 여러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젊은 척수장애인들 사이에서 기초생활수급권을 과감히 떨치고 자수성가의 꿈을 키우는 ‘용자(勇者)’가 하나 둘 늘고 있다. 혹자들은 어느 정도이상의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초생활수급권이 훨씬 안전하다며 무모한 도전을 하는 이들을 바보라고 수군거리기도 한다.

이들의 도전이 꺾이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들이 당당히 계층이동을 하고 신분상승이 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이다. 대한민국의 장애인복지가 이렇게 돈키호테처럼 무모하지만 용기 있는 장애인들이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으면 한다. 처음 자전거를 타는 자녀의 뒤에서 ‘나 여기 있으니까 걱정 말고 앞만 보고 페달을 밟으라.’는 아빠같은 든든한 제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 한번 시도해보고 정 힘들면 그때 다시 얘기해보자.’라고 용기를 주었으면 한다. 무모한 도전을 하는 부류들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는 세상은 되지 않았으면 하다. 그들의 용기가 삶을 살아가는데 훈장의 역할이 되었으면 하다.

지역사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제도가 탈시설 장애인에게만 대상이 되는 이해할 수 없는 제도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병원생활을 오래하여 지역사회의 생활을 꿈꾸는 중증장애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집에서 오랫동안 칩거를 한 후에도 새로운 생활을 꿈꾸는 장애인에게도 자립생활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평생 주어진 계급의 틀에서만 살지 않고 그 틀을 깨려고 노력하는 모든 장애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통 큰 정부가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오히려 정부의 복지 재정을 절감하는 길이 된다.

기초생활수급권을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척수장애인들에게 초기 재활의 투자를 확실히 해서 세금 내는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훨씬 가성비가 좋은 제도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이 일상이 되고, 장애인들의 신분상승(계층이동)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 평범한 세상에서 살고 싶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