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표 참관인 명찰. ⓒ홍서윤

필자는 요즘 2030대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광우병 시위를 기점으로 시민의 정치 참여의 필요성을 인식해왔다. 정치가 곧 생활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정당 가입도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지역구 개표 참관인 기회가 생겨 2017년 5월 9일 제19대 대통령 선거 개표 참관인이 되었다.

개표 참관인은 정당 추천인 혹은 선관위에서 신청을 받은 사람들 중 선별되어 구성된다. 이번 대선의 경우 15개 정당 후보가 있었던 만큼 개표참관인도 많았다. 필자는 정당 지역구의 추천으로 참가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장애인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주권 행사의 전 과정을 볼 수 있도록 개표 참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봐야 한다는 지역구 위원의 공감대가 큰 몫을 했다.

전국적으로 장애인이 개표 참관인으로 참여한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없다. 물론 개표 참관인의 역할 수행이 쉽지 않은 것도 분명하다. 투표함이 들어오는 시점부터 개표가 끝나는 상황까지 국민의 소중한 한 표가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로 심사·집계 되는지를 장시간 동안 관찰해야한다.

떠들썩한 개표 방송을 볼 수도 없고 치킨과 맥주를 마시며 함께 기쁨을 나눌 여유도 없다. 투표함이 개표소로 이송되는 순간부터 개표 사무원과 개표 참관인 그리고 선관위 직원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인다. 소중한 한 표가 누락되거나 잘못 분류 되지 않도록 확인 또 확인 하는 작업이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이어진다.

저녁 7시. 개표소인 지역구 시민체육관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모두 개표 참관인이다. 선관위 직원은 개표 참관인에게 안내 자료를 나누어 주며 개표 참관인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였고, 열의에 찬 개표 참관인들은 쉴새 없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개표 참관인은 대게 2030대 젊은 층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영화 「더 플랜」의 영향으로 투표 관심이 개표로 이어진 모양이다.

저녁 8시가 넘고 투표함이 하나 둘 개표소로 도착하면서 관내가 매우 부산스러워졌다. 경찰과 선관위 직원들은 투표함 이송으로 바빴고, 선관위 위원들은 개표 사무원들에게 업무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바빴다.

개표 참관인들 역시 투표함이 제대로 도착했는지, 투표지 분류 기계의 결함은 없는지, 투명하게 진행되는 지, 국민의 주권이 잘 전달되는 지 확인하기 바빴다.

계수기 옆에 쌓인 투표지. ⓒ홍서윤

투표함이 개표소로 도착하면 크게 네 가지 단계를 거친다. 먼저 투표함이 개표소 접수·확인부에 도착하면 개표 참관인들이 투표관계서류와 투표함 봉인을 확인한다. 두 번째 투표함이 개함부로 넘어가면 봉쇄·봉인을 재확인하고 이상이 없을 시 개함을 하는데 쏟아지는 투표지가 바닥에 떨어지지는 않을까 개표 참관인들은 연신 바닥을 훑어보았다.

세 번째는 정리된 투표지와 투표록을 투표지분류기 운영부로 보낸다. 투표지 분류기가 수 천장의 투표지를 빠르게 스캔하여 각 정당 후보의 이름으로 구분해준다. 이 과정에서 도장이 명확하지 않거나 기계가 판단할 수 없는 투표지는 미분류 투표지로 분류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마지막 단계는 심사·집계부이다. 분류된 투표지는 계수기를 통해 숫자를 다시 확인하고, 계수기로 확인되는 과정에서 혼입여부를 다시 한 번 살펴본다. 미분류지는 개표 사무원이 육안으로 하나씩 확인을 하는데 대게 개표 참관인은 미분류지가 제대로 분류가 되는지를 모니터링 한다.

투표함의 수가 많거나 기계적 결함·집계 오류가 생길 경우 처음부터 다시 집계 및 재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개표 과정이 오래 걸린다.

또 기계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대게 개표의 전 과정에서 개표 사무원의 노고가 상당한데, 자정이 넘어가면서 이들 역시 집중력이 흐트러지기도 한다.

물론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개표 참관인들이 조를 나누어 더욱 면밀히 관찰하게 되고 개표 사무원 역시 속도를 더디게 하면서 더욱 꼼꼼하게 확인하기 시작했다.

새벽 3시 경 지역구 개표가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면서 삼삼오오 개표소를 떠나는 개표 사무원과 개표 참관인들을 보았다.

늦은 시간까지 고된 정신적 작업에도 불구하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어쩌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 과정에 기여를 했다고 여기는 뿌듯함의 미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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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서윤 칼럼리스트 KBS 최초 여성장애인 앵커로 활동했으며, 2016년 장애인 여행 에세이 <유럽, 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를 출간하여 장애인 관광에 대한 대중 인식 변화를 이끌었고 현재 장애인을 비롯한 ‘모두를 위한 관광(Tourism for All)’ 발전을 위해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더불어 장애인은 왜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유행 선도자)나 힙스터(Hipster: 유행을 쫓는 자)가 될 수 없는지 그 궁금증에서 출발해, 장애 당사자로서 장애 청년 세대의 라이프와 문화에 새로운 인식과 변화를 재조명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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