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만물이 소생하여 저마다 자기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봄이 왔다. 물론, 미세먼지가 이 아름다움에 초를 치는 일이 많긴 하여 속상하지만…

시각장애 부모들의 육아모임인 ‘심봉사임당’도, 얼마 전, 새몸맞이 나들이를 떠났다. 이번에 우리가 아이들과 함께 찾은 곳은, 의왕시에 있는 한국철도박물관이었다. 이곳에는 철도박물관과 함께, 바로 옆 왕송호수를 중심으로 의왕레일파크와 의왕조류생태과학관이 위치해 있어, 아이들과 알차고 재미있는 하루를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나와 남편은,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하면서도 시각장애부모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심봉사임당 나들이 장소들을 발굴하기 위해 열렬히 리서치를 하며 이응이를 데리고 엄청나게 돌아다닌다. 이 곳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발굴한 보석 같은 곳이었다.

특히, 이번 나들이는 연초에 서울시 동아리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처음으로 우리 부모들의 자부담이 아닌 외부 펀딩을 통한 제정 조달로 이루어진 나들이여서, 그 간 열심히 활동해 온 우리 모임으로서는 더욱 더 뜻 깊은 나들이가 되었다.

매우 화창하고 맑았지만 미세먼지가 있었던 심봉사임당 나들이날. ⓒ은진슬

나들이 날 아침, 날씨는 매우 화창하고 맑았지만, 너무나도 심한 미세먼지가 문제였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벤트를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미세먼지를 피해 보고자 엄마의 마음으로 노력해 보지만, 3년여 전부터는 봄날에 미세먼지가 없는 날을 찾는 것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에,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다. 모쪼록, 우리 아이들이 맘 놓고 뛰놀 수 있는 맑은 하늘, 맑은 공기가 우리 곁으로 어서 돌아올 수 있도록 정부와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하겠다.

시각장애 부모들의 고맙고 편리한 이동수단인 전철을 타고 의왕역에 내려 몇 분만 걸어가면 한국철도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이제 1년 넘게 나들이를 함께한 심봉사임당의 예쁜 아이들은, 의왕역에서 만나자마자 오랜만에 보는 형아, 누나, 동생들이 반가운지 서로 즐겁게 인사를 나누며 벌써부터 신이 났다.

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용하셨다는 대통령 전용 기차 두 대가 멋진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기차가 두 대인 이유는, 당연히 경호상의 이유이다. 어느 쪽에 대통령이 탔는지 모르게 하기 위해서인데, 솔직히 두 대 모두에 한꺼번에 공격을 감행하면 소용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속으로만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서울맹학교에서 졸업했는데, 그 곳이 청와대 근처이다 보니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거의 매일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는 시끄러운 헬기들이 이륙하는 소리 때문에 늘 수업에 방해가 되곤 했는데, 그게 대통령이 어딘가에 시찰을 가는 것을 의미하며, 이때는 대통령의 경호상의 이유로 석 대의 같은 모양의 헬기가 뜬다는 카더라 통신이었다.

아이들은 기차와 기찻길을 참으로 좋아한다. 그러니 기차를 소제로 하는 애니메이션도, 장난감도 그렇게 많은 것이리라. 어른인 나 역시, 기차를 떠올리면,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즐거운 여행, 낭만 같은 단어가 떠올라 기분이 좋아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차를 좋아할런지도 모르겠다.

서울에서 철길을 걸어볼 경험이 없는데, 아이들에게 신기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은진슬

야외전시장에서 옛날 기차들을 구경하며 사진도 찍고, 철길도 걸어 보았다. 기차 기관실 체험은, 말할 것도 없이 남자아이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실내 전시관에서도 다양한 기차들과 기차 관련 전시물 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철도 디오라마 관람이었다. 1988 년 올림픽 개최를 즈음한 서울의 모습을 매우 세세하게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고는, 그 안의 철도를 다양한 기차들이 운행하는 모습을 디오라마로 재현하면서 한국의 기차들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직접 담당 직원분께서 디오라마를 조작하시면서 1988년 아침의 활기찬 서울에서 아름다운 야경이 내려앉은 늦은 밤의 서울의 모습을 중심으로, 나름의 짧은 스토리텔링 기법을 활용하여 멋진 기차들과 서울의 모습을 재미있게 소개해 주셨다.

나도 타 본 적은 없는, 이제는 사라진 비둘기호와 통일호에서부터 KTX와 ITX 새마을호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철도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개하면서 다양한 멋진 기차들을 멋진 미니어처를 통해 소개하니 아이들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예산을 지원 받아 야심차게 ! 준비했던 프리미엄 김밥 도시락. ⓒ은진슬

디오라마 관람을 마치자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다. 야외 휴식공간에는 약 10여명 정도가 식사할 수 있는 기차 휴게실이 있었지만, 미세먼지를 피해 모든 인원이 함께 식사할 수는 없는 작은 크기였다.

할 수 없이 옆에 조성되어 있는 야외 테이블에서 맛난 점심과 함께 미세먼지도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지원 받은 기념으로 야심차게 준비했던 프리미엄김밥 도시락은 인기 만점이었다. 건강한 재료로 만든 깔끔하고 고급진 맛에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엄마들의 만족도가 특히나 높았다.

기차박물관 근처에는 걸어서 갈 만한 근거리에 아이들과 함께 편하게 식사할 만한 식당이나 도시락을 맞춰 픽업할 곳이 없어 고민이 많았었는데, 우리 가족들 중 유일하게 자동차 운전이 가능한 이선생 내 가족이 우리의 맛난 점심을 픽업해 와 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물량부족으로 구하는것이 어려웠지만,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해주었던 KTX, ITX 기차모형. ⓒ은진슬

점심 식사를 마치고는, 내가 외부 펀딩을 받은 기념으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기념품을 나누어 주었다.

“오늘의 깜짝 선물은…두구두구두구두구!”

“ITX새마을호 미니어처 기차모형.”

이응이와 기차박물관 사전답사를 갔을 때, 박물관 기념품샵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KTX와 ITX 기차모형이 있었다. 당연히 이응이는 KTX 기차를 한 대 집으로 데려왔는데…

이것은 그냥 기차 모형이 아니라, 뚜껑을 열면, 그 안에 제주도 특산품인 보리크런치 초콜릿을 싣고 있는 특별한 기차이다. 코레일과 제주도의 콜라보레이션인 셈. 일본에는 기차덕후들도, 기차 회사도 많아 다양한 형태의 기차 관련 기념품들이 존재하는데, 우리나라도 이런 콜라보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도 기차지만, 안에 들어 있는 초콜릿 역시 엄마기준으로 깐깐하게 따져 봐도 너무 달지 않고 맛이 좋았으며, 다 먹고 나면 필통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니 여러 모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고 싶어 박물관에서부터 다른 코레일 관련 샵에도 백방으로 수소문을 했는데, 생산이 잘 되지 않아 물량 부족으로 구하기가 어마어마하게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이상하게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고 포기하고 싶지가 않았던 나는, 며칠간의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여 결국 E-제주몰이라는, 제주도 특산품을 파는 쇼핑몰에서 이 기차들을 어렵게, 어렵게 발견하여 득템할 수 있었다.

박물관 직원도 놀란 나의 집념이여!

우리 아이들이 이걸 가지고 박물관을 돌아다니니, 엄마들이 어디서 파느냐고 부러운 눈길로 물어 본다. 현재, 박물관에서는 구할 수가 없다고 이야기 하면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도 엄마 아빠와 친구들과 함께 한 무척 특별한 추억, 기억에 남는 선물이 되어 주었으리라.

곳곳에 기차가 있어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였던 박물관과 레일파크. ⓒ은진슬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는 바로 옆 의왕 레일파크로 이동하여 호수기차 탑승을 위해 티켓을 구매하였다. 기차 시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남은 시간 동안은 계획했던 대로 의왕 조류생태과학관 관람을 했다.

큰 기대 없이 호수기차 시간까지 남는 시간을 보내려는 목적으로 방문했던 곳이었는데, 의외로 다채로운 조류와 물고기, 곤충 등의 박제와 조형물들, 조류를 관찰할 수 있는 전망대,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구성된 다양한 디지털체험물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무척 만족스러웠다.

우리가 입장 할 때 떼로 장애인 복지카드를 제시하니, 약간 당황해 하시면서 우리를 좀 특이하게 보시던 직원분께서, 뜻 밖에 우리가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주셨다. 아이들에게, 시각적 정보가 너무 많아 우리가 해주기 어려운 설명도 친절하게 해 주시고, 다양한 디지털 전시물의 조작법도 알려 주셨다. 게다가, 우리가 박물관을 나설 때는, 여기서 찍으면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고 하시며, 각 가족별로 예쁜 가족사진까지 찍어 주셨다. 너무 감동이었다.

사실, 시각장애인들 입장에서는, 박물관의 탁월한 컨텐츠보다는 그 곳을 안내해 주는 직원들의 마인드와 자질에 따라 박물관 경험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런 직원분들을 만나면 너무 감사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호수기차를 탈 시간이 되어 왕송호수로 갔다. 아이들 나이가 제일 많은 이 선생내 가족만 레일바이크를 타고 싶다고 하여 그렇게 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모두 호수기차를 탔다. 그저 작은 호수일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왕송호수는 생각보다 무척 컸다.

기차로 한 바퀴 도는 데에 20분 조금 넘게 걸렸으니 말이다. 호수를 끼고 천천히 달리는 기차를 타는 것 자체도 매우 운치 있었고, 꽃터널, 예쁜 조형물, 아름다운 꽃들로 예쁘게 꾸민 경치도 아름다웠다. 여름 밤, 예쁘게 꾸며 놓은 조명을 바라보며 한 번 더 호수기차를 타러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일파크를 나서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앗! 마차다.

말이 직접 끄는 마차 두 대가 우리가 타고 가려는 버스 정류장에 떡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편도로 우리를 역까지 데려다주는 옵션이 있었다면, 아이들을 태워주고 싶기도 하였지만, 안타깝게도 왕복으로 레일파크로 돌아오는 옵션밖에 없어 아쉬웠다.

하지만, 10여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이 엄청나게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으로 바뀐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었다. 마차 아저씨들도 친절하셔서 아이들이 쓰다듬어 보고 사진 찍고, 말이 아픈 곳에 반창고도 붙여 줄 수 있게 해 주셔서, 그야말로 아이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말을 만져보고 관찰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얻었다.

훗날 멋진 추억으로 남을 심봉사임당 가족들이 함께한 따뜻했던 어느 봄날. ⓒ은진슬

이렇게 글을 쓰며 돌아보니, 정말이지 꽉차게 재미있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왕역에서부터의 모든 동선이 걸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시각장애부모에게는 최적의 나들이장소였고, 기차와 조류 및 생태관람, 호수를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를 탈 수 있는 것 등등, 컨텐츠 역시 다채롭고 재미있었다.

크랜베리새우튀김김밥, 아몬드어린이김밥 등으로 구성되었던 건강한 점심도, 아이들에게 오늘의 나들이를 추억할 수 있도록 나누어 준 초콜릿이 담긴 기차모형도 인기만점이어서, 엄마 마음으로 준비했던 내 입장에서 너무 뿌듯했다.

다만, 아쉬운 점 하나는…

외부 예산을 통해 진행되는 나들이이다 보니, 예산사용승인 및 집행이 너무나도 까다로워, 준비하는 내가 너무 힘들었다는 것이다.

워낙 꼼꼼해서 이런 걸 잘 하는 편인데도, 현금으로만 지출해야 하고, 필요한 물품들은 자율적으로 구매할 수도 없이 운영 대행기관에 일종의 구매 대행을 해야 하는데다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아예 물품을 구매하거나 식사를 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까다로운 절차임에도 일정한 형식의 영수증 등을 근거로 한 선 결제 후 승인조차 불가능하다 보니, 그 까다로운 규정에 맞추어 예산 집행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모임이 과연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공공의 펀딩을 받아 진행하는 모든 일에는 극한의 투명성과 윤리적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런 걸 요구할 거라면, 그만큼 합리적으로 예산을 사용할 수 있는 근거와 실용적 시스템을 갖추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실했다.

선정된 모임별로 정액을 담은 바우처카드를 지급해 준다면, 대행기관도 훨씬 일이 줄어들 것이며, 예산집행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증빙 및 투명성도 더 높아질 것이다. 장애를 가진 모임 당사자들도 예산 수립 및 승인, 집행 등이 훨씬 편리해져서 예산 지원의 본질적인 목적에 맞는 좀 더 양질의 모임 운영이 가능해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괜히 펀딩 받아서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내 일만 몇 배로 늘었다는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의 마무리가 부정적인 부분이 부각되어 보여 좀 그렇지만, 이 외에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좋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어찌되었든, 이런 공적 지원 시스템이 있기에, 우리 심봉사임당의 시각장애 부모들이 따뜻한 봄날, 여느 엄마 아빠들과 다름없이 아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나들이를 멋진 추억으로 남길 수 있었으니까.

벌써부터 다음번 나들이는 어디로 가서 무얼 할까 두근두근 설레고 기대된다. 모쪼록, 이 칼럼을 읽어 주시는 장애부모 여러분들도 아이들과 화창한 봄날을 만끽할 수 있는 접근성 좋은 한국 철도박물관 나들이 한 번 떠나 보기를 권유한다.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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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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