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손을 잡은 딸 그림 ⓒ최선영

병실에 누워있는 아빠를 바라보는 딸은 애써 웃음을 보이며 아빠의 시린 어깨에 이불을 덮어줍니다.

딸은 힘겨운 숨을 거칠게 내쉬는 아빠의 숨소리에 마음이 내려앉는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립니다.

4월 벚꽃을 함께 보자며 그녀의 손을 잡았던 아빠의 따스했던 손은 싸늘하게 식어져갔고 온기를 잃어가는 아빠의 손을 그녀는 잡고 또 잡았습니다.

식어지는 아빠의 체온을 다시 찾게 해주고 싶은 딸은 두 손을 모으고 아빠의 손을 잡았지만 아빠의 온기는 그리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딸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눈물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마운 마음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내가 너의 아빠인 것이 아빠는 늘 행복했단다..."

​아빠는 희미해지는 의식을 애써 붙잡으며 딸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어감기는 눈을 뜨려고 안간힘을 다합니다.

"아빠가 내 아빠여서 행복했어요..."

아빠는 딸의 말에 행복한 미소를 보냅니다. 그리고 아빠는 이별이라는 깊은 그리움을 남기고 그녀의 곁을 ​떠났습니다.

싸늘하게 식어진 아빠의 차가운 손을 꼭 잡은 딸은 뜨거운 눈물을 그 손에 흘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또 합니다.

1년 전

건강하던 아빠가 잔기침을 많이 합니다.

"아빠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기침이 점점 심해지는데..."

"괜찮아 기침 조금 하는 거 가지고 병원은 무슨... 6개월 전 건강검진 때도 아무 이상 없었잖아"

"네 그렇기는 하지만..."

딸은 아빠의 기침소리가 가시처럼 자꾸만 마음에 걸립니다. 아빠의 기침은 한 달이 지나도 좋아지지를 않았습니다.

딸은 아빠의 손을 이끌고 병원으로 향합니다. 아빠도 점점 심해지는 기침에 더는 싫다 소리를 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얼굴을 한 의사는 소견서를 써주었습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소견서를 건네며 가보라고 한 병원은 암 전문 병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괜찮으실거라고 아빠를 안심시켰지만 딸의 마음은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입원하고 검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담배도 술도 다 끊고 운동도 많이 했는데..."

아빠의 모습은 덤덤해 보였지만 그 말속에는 불안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습니다.

"걱정 마세요 혹시라도 이상이 있다 해도... 요즘 좋은 치료법이 많이 나왔어요..."

딸은 아빠의 손을 잡으며 활짝 웃어 보입니다. 아빠와 딸의 바람은 폐암 말기라는 결과 앞에 허무한 희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빠는 말없이 깊은 생각에 잠겼고 딸은 그런 아빠의 뒤 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쏟아냈습니다.

울고 있는 딸 그림 ⓒ최선영

"내가 좀 더 살아야 너에게 힘이 될 텐데... 미안하구나..."

"아빠 무슨 그런 말씀을... 나 혼자 두고 어디를 가시려고요~ 저 시집가는 것도 보고 예쁜 손주도 품에 안아보셔야죠...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지는 거라고 늘 저한테는 그러셨으면서..."

"ㅎㅎ 그렇구나..."

아빠와 딸은 절망적인 진단 앞에 희망을 놓지 않으려고 서로를 토닥여줍니다.

초기 진단 외에 여러 검사를 더 받으신 아빠의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선생님... 저희 아빠 어떠신가요?"

굳은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는 담당 교수님을 향해 딸은 조심스레 질문을 합니다.

"​예상대로 폐암 말기입니다 위치가 좋지 않아 수술도 어렵고 항암 치료로 고통을 줄이고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치료를 잘 받으면..."

"치료를 잘 받았을 경우... 1년..."

눈에 가득 눈물이 고인 딸의 눈을 바라본 교수님도 쉽게 말을 잇지 못하다 1년이라는 말과 함께 말끝을 흐립니다.

"경우에 따라 예외도 많습니다 저희는 1년으로 보지만... 더 오래 버티시는 분들도 계시고..."

교수님의 덧붙인 말은 딸의 내려앉은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굳은 표정으로 아빠와 함께 있는 딸 그림 ⓒ최선영

아빠에게 어떻게 이 말을 전해야 할지...

딸은 아빠를 마주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서 그 눈물을 감추는 것이 더 큰 힘겨움이었습니다.

아빠는 항암치료를 거부했습니다.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은 시간을 정리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아빠와 한차례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 싶은 딸의 마음은 뭐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었는데 받아들이지 않는 아빠를 설득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아빠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주삿바늘을 손수 뽑아던지고... 결국 아빠와 딸은 함께 집으로 왔습니다.

아빠의 건강은 하루하루 매시간 시간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퇴원하고 며칠이 되지 않은 늦은 밤... 응급실을 향합니다. 그리고 응급실에서 아빠는 딸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심해지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항암치료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항암치료 자체의 고통과 부작용도 엄청난 것이어서 딸은 아빠의 힘겨운 시간들을 지켜보는 것이 아프고 또 아팠습니다.

아빠와 활짝 웃고 있는 딸 그림 ⓒ최선영

하지만 딸은 아빠에게 배운 대로 어떤 힘겨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아빠 앞에서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딸은 웃고 또 웃으며 아빠와의 남은 시간을 아름답게 채워가려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닥 희망을 절대로 놓지 않은 채 아빠를 간호했습니다.

​딸은 아빠를 간호하며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신의 불편한 다리가 아빠를 간호하는데 장애가 될지는 몰랐는데...

사소한 것들 앞에 그녀는 장애라는 큰 벽을 만납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장애가 불효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빠 미안해요... 제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좀 더 편하게 해드릴 텐데..."

​"무슨 소리... 간병인보다 네가 더 잘하는데..."

아빠는 간병인이 있어도 딸의 손길을 편하게 생각했고 그런 아빠를 간병인에게만 부탁할 수 없어 꼬박 1년을 그렇게 병실을 지켰습니다.

아빠와 지하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고 하늘 공원에서 함께 커피를 마시고 오로시 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병원의 많은 의사와 간호사 다른 방 환자와 보호자 청소하시는 분들까지...

그녀는 인사를 나누고 말동무가 되었고 커피도 나눠마시고 식사도 함께 했습니다.

"다른 가족 없어요? 다리도 불편한데... 간병인 있는데 집에 가서 좀 쉬다 오지"

불편한 다리로 하루 종일 아빠 옆에서 간호하는 딸을 보며 안쓰러운 마음에 한마디씩 건네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저를 편해해서요"

딸은 혓바늘이 돋고 입술이 부르트는 피곤함에도 밝은 미소를 보내며 괜찮다는 말을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딸과 함께 하고 싶은 아빠의 마음을 딸은 알았기에 아빠 곁을 잠시도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함께 산책을 할 수 있는 시간도 그리 많이 허락되지는 않았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는 것도 일상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아빠는 혼자 걷는 것도... 마음껏 식사를 하는 것도... 불가능해졌습니다. 혼자 일어나 앉기도 불편해하는 아빠를 지켜보는 하루하루가 그녀에게는 눈물이었습니다.

독한 약 때문에 아빠의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멀어지고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오는 것이 두렵고 힘들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아낌없이 주었던 아빠...

아빠는 딸을 이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간다는 것이 자신이 맞이할 죽음보다 더 두렵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올해는 함께 벚꽃도 못 보겠구나..."

해마다 벚꽃이 피면 아빠와 딸은 벚꽃 아래에서 셀카를 찍었는데...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아빠는 아는지 계속 함께 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쉬운 마음을 건넵니다.

"건넛방에 지환이... 참 괜찮아 보이더구나"

기침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아빠가 건넛방 위암 환자 보호자인 지환을 말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오며 가며 인사 나누다 모닝커피도 함께 마시고 식사도 몇 번 했던 그에 대해 아빠는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나 봅니다.

딸을 혼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아빠는 그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아빠는 당신의 빈자리를 태워줄 사람이 지환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지환은 자신을 키워 준 할머니의 간호를 위해 휴직을 하고 24시간 할머니 곁을 지키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습니다.

지환에게 혜진을 부탁하는 아빠 그림 ⓒ최선영

아빠의 마음이 급했나 봅니다.

지환을 향해 "자네... 우리 혜진이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 혜진이 자네에게 부탁해도 되겠나?"라고 말을 합니다.

"아버님 걱정 마십시오 저 혜진 씨 많이 좋아합니다"

지환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합니다. 아빠는 지환의 한결같은 모습이 믿음직스러웠고 그런 지환의 대답을 듣고는 이제는 떠나도 된다는 생각을 했는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딸의 손을 놓았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아빠와의 이별을 준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딸 혜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아빠의 싸늘한 손을 놓지 못하고 눈물의 끈으로 그 손을 잡고 있을 때...

지환은 눈물로 젖어있는 ​혜진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지환의 손은 아빠의 손처럼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지환의 손을 잡고서야 혜진은 아빠의 손을 놓고 아빠를 보내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환이 없었다면 혜진은 아마 아빠의 손을 놓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빠를 보내는 혜진의 옆에서 지환은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었습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지환의 할머니도 혜진의 손을 잡고 지환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지환의 할머니도 그리움을 남긴 채 그들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지환과 활짝 웃고 있는 혜진 그림 ⓒ최선영

아빠의 사랑으로 장애를 이겨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혜진은 이제 지환의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행복하게 살아내고 있습니다.

아빠의 빈자리가 보이지 않을 만큼 큰 사랑으로 지환은 혜진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습니다.

아빠가 남긴 그 깊은 사랑을 오늘도 기억하며... 혜진은 이제 지환과 함께 5월의 아름다운 날을 준비합니다. 우리모두는 5월의 신부가 될 혜진을 축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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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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