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씨 아저씨는 어느 농장에서 품삯도 제대로 못 받고 오십 년을 살았습니다. 군청 공무원과 가족이 찾아가서 아저씨를 농장에서 빼냈습니다. 아저씨를 데리러 온 가족은 연세 지긋한 할머니 두 분이었는데, 누나와 고모였습니다. 가족에게 갈 형편이 아니라 월평빌라에 잠시 머물기로 했습니다.

시설 바깥에 집 얻어 살기 바랐고, 더 좋기는 누나와 고모가 사는 마을에 빈 집을 얻어 살기 바랐습니다. 월평빌라에 며칠 머물던 아저씨는 월평빌라에서 살고 싶다고 했습니다. 반백 년 농사꾼으로 풀 베고 소 먹이며 농장에 살다가 이제 복지시설에서 살게 된 겁니다.

반백 년 농사꾼이 복지시설에서 산다고 그날부터 프로그램이다 뭐다 하며 살 수는 없죠. 그래서 아저씨와 가족과 의논해서 일할 만한 농장을 수소문했습니다.

월평빌라에서 자가용으로 5분 거리, 백 마지기 논농사 짓는 분이 함께 일해 보자 했습니다. 아저씨가 평생 해 오던 일이었습니다. 농한기 농번기가 있지만 백 마지기 농장에는 소소하게 할 일이 있어 일 년 내내 출근하는 것으로 계약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해가 져서 퇴근했습니다. 시설 직원이 출퇴근을 도왔습니다. 퇴근 시간은 일정하지 않아 농장 주인이 아저씨를 모셔다 줄 때도 있었고요.

아저씨는 주로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농장 정리, 거름 내기, 비료포대 옮기기, 논두렁 정리, 풀베기… 그때그때 농장 주인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여름을 앞두고 논마다 물이 찼습니다. 땅이 하늘을 품었습니다. 노을마저 논이 품을 때는 하늘땅이 온통 붉고 그야말로….

모내기 앞두고 논두렁을 정리하는데, 백 마지기 논은 어마해서 예초기로 논두렁의 풀을 벱니다. 아저씨는 지적 장애가 있다지만 농사일은 능숙했습니다. 예초기로 풀 베는 건, 식은 죽 먹기였죠.

어느 날, 그날은 왜 그랬는지, 멀쩡했던 예초기의 시동이 안 걸렸습니다. 몇 번을 해도 안 돼서 결국 농장 주인에게 부탁했습니다. 아저씨는 어깨에 기계를 맨 채로 서고, 농장 주인은 아저씨 뒤에 서서 시동을 걸었습니다. 잘 걸렸습니다.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 그때, 아저씨가 돌아섰습니다. 풀을 베야 할 곳이 뒤편이었던 겁니다. 예초기 칼날이 농장 주인의 무릎을 스쳤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났습니다. 오십 바늘을 꿰맸습니다.

월평빌라 문을 연 지 6개월쯤 되었을 때입니다. 작은 사고에도 예민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오십 바늘이라니! 사고 소식을 듣고 바로 농장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무릎에 붕대를 감고 툇마루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위로하고 사과하고 배상하고 수습해야 할지, 당황스러웠습니다. 그저 죄송하다고, 거듭 죄송하다며 고개 숙였습니다.

그때 농장 주인이 그랬습니다.

“시설에서 왜 미안하다고 하나?”

“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월평빌라에서 백 씨가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속였나?”

“아니요.”

“아니면 내가 그걸 모르고 일을 시켰나?”

“아니요.”

“그런데 왜 시설에서 미안하다고 하나?”

무슨 말이냐면, 해석하면, 복지시설의 사고가 아니라 직장에서 일어난 산업재해라는 겁니다. 부끄럽지만, 농장 주인의 말을 듣기 전까지 시설의 사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죄송하다고 했고요.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직장에서 사고를 냈으니 시설의 사고다, 이런 개념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농장 주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이건 시설의 사고가 아니라 산업재해가 맞았습니다. 직원인 백 씨 아저씨가 부주의했든 농장 주인인 최 사장님이 부주의했든 논둑에서 일어난 산업재해입니다. 어쩌면 시설 직원이 이렇게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시설 직원이 농장 주인의 말을 듣고 깨달은 겁니다.

그날 밤에 속상해서 잠을 잘 못 잤습니다. 복지시설 직원이 시설 사고가 아니라 산업재해라고 주장했어야지, 어떻게 농장 주인의 말을 듣고 산업재해라는 걸 깨닫나 하는 마음에 속상했습니다.

그 후로 시설의 사고인가 세상사인가를 따지려고 애씁니다. 집, 학교, 직장, 극장, 도로, 자동차, 여행지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겪는가, 누구나 겪을 법한 세상사인가, 따지려고 애씁니다.

그렇다고 농장 주인에게 ‘이건 세상사다’ 하며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 도의적 책임이 있지요. 그날 농장 주인에게 미안하다 했던 마음은 그런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대목에서 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어떤 상황이든 고개를 숙이게 되는 심정을 조금 느꼈습니다.

그날 밤, 속상하기도 했지만 기쁘고 설레서 잠 못 이루었습니다. 백 씨 아저씨가 직장생활 하는 데는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최 사장님 같은 분 한 분만 있어도 아저씨는 일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이런 한 분을 찾는 데 집중하면 되는 겁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사라지고 하늘땅 온통 붉을 때처럼 밝아졌습니다.

백 씨 아저씨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날로 해고되었습니다. 권고사직쯤 되겠죠. 물론 마음씨 좋은 최 사장님이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한마을에서 포도 농사짓는 이웃에게 아저씨를 소개했습니다. 아저씨는 여름 한 철을 포도 농장에서 보냈습니다.

포도 농장을 그만두자, 최 사장님이 또 나섰습니다. 이번에는 복숭아와 사과 농사를 크게 짓는 덕원농원 허 사장님에게 백 씨 아저씨를 소개했습니다. 2009년 가을부터 8년째, 아저씨는 덕원농원에서 일합니다.

2015년에는 덕원농원 아래채를 얻어 시설 바깥에 나가 삽니다. 농사철에는 덕원농원 가족들과 땀 흘리며 일하고, 농한기에는 과일 출하하는 공판장에 같이 가고, 물고기 잡으러 다니고, 사장님과 목욕탕, 미용실 함께 갑니다.

2009년 농장에 살다 복지시설에 입주했던 아저씨는, 2015년 복지시설을 떠나 농장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매산마을 최 사장님과 덕원농원 허 사장님 덕분입니다.

한 사람으로 족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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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현 칼럼리스트 ‘월평빌라’에서 일하는 사회사업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줄곧 사회복지 현장에 있다. 장애인복지시설 사회사업가가 일하는 이야기, 장애인거주시설 입주 장애인이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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