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척수장애인이 직업에 대해 고민할 때는 자기 몸에 대한 자신감이 있을 즈음이다. 척수장애로 입원을 하는 경우 보통 2년 정도 입원생활을 하니, 2년간은 직업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2년간 육체적인 회복에만 몰두하는 동안 근로의지는 완전히 꺾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몸은 게을러지고 장애로 인해 자존감은 바닥이 되어 일하려고 고민하는 것 보다는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처세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모든 척수장애인이 이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부분 이런 상황이다.

이것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중도장애인의 재활시스템의 문제이다. 사고 직후 병원에서는 주로 의료적 재활에만 신경을 쓰고 신체적인 회복에만 신경을 쓰게 만든다. 정확하게 척수장애가 무엇인지 어떤 예후가 있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주지 않는다.

재활이란 의료적, 심리적, 사회적, 직업적 재활 등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최고의 재활이라고 생각한다. 평생 병원에 있을 수는 없다.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 문제점이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흘러 흘러 자의반 타의반 퇴원시기가 되어도 지역사회로 나가기를 어려워하고, 지역사회에 나가서도 또 다른 칩거가 시작되어 완전히 근로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척수장애인은 중도장애인이고 장애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장애인(경단장)이다. 장애이전에는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왕성하게 하던 사람들이었는데 그 단절을 회복시키는데 너무 소홀한 것이 안타깝다.

경력단절여성(경단녀)에게 어마어마한 예산을 쏟아 부으면서 정작 경력단절장애인(경단장)에게는 나 몰라라 한다. 아니 설마 그런 능력이 있겠느냐고 거들떠보지 않을 수도 있다.

3년 전에 방문한 뉴질랜드의 척수재활병원은 수술한지 2주부터 심리상담과 직업상담을 시작한다고 한다. 2주 후라면 수술한 부위가 아물지도 않았을 때이다. 다치기 전의 꿈은 무엇이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직업재활담당자가 정기적으로 상담을 한다고 한다.

당사자가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면 재활담당자는 직장의 대표와 직원들을 만나서 인식개선을 시키고 직장의 환경을 변화시켜 당사자가 퇴원하자마자 바로 근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물론 퇴원 전에 충분히 사회복귀 훈련을 시키고 주택개조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결과 직장 복귀율이 20%에서 60%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원래 직장으로 갈 수 없는 장애인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도록 연결을 해주고, 학업이 필요한 장애인에게는 학업을 계속하게 하여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게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직업재활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대한민국은 직업재활의 방향은 다양하지는 않았다. 주로 기술을 가르치거나 발달장애인의 보호고용 위주로 직업 재활이 이루어졌다. 오래된 직업재활의 틀 안에 장애인들을 집어넣었고 그 틀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잉여가 되는 구조였다.

독일의 직업재활은 두 가지의 방향이 있다고 한다. 근로활동을 해보지 않은 부류들을 위한 직업재활과 근로생활을 해 본 즉, 장애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의 투트랙(Two-track)이라고 한다.

중도장애인의 출현율이 늘어나고 있다. 직업재활의 다양성을 기대해본다. 직장은 물론 창업과 기업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고, 학력을 높이는 고등교육도 근로로 보아야 한다. 고학력은 직업 선택의 폭을 넓히게 된다.

대기업과 금융계, 교육계, 공기업에서는 쓸 만한 장애인이 없어 의무고용율을 지키지 못한다고 볼멘소리이다. 여기에 맞는 장애인을 배출시키기 위해서는 전공을 다양하게 하고 장애인들의 학력을 높이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이것도 직업재활이다.

그러나 그것은 교육의 문제라고 사회복귀 프로그램은 복지의 문제라고 치부한다면 일반고용시장에 필요한 장애인들은 씨가 말라버릴 것이다. 이를 위해 과감하고 폭 넓고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한 것이다.

척수장애인의 다양한 직업 활동에 관한 책자(2016년, 2013년 발행). 한국척수장애인협회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 가능. ⓒ이찬우

특히 중도장애인인 척수장애인의 적절한 활용을 권유한다. 척수협회의 2015년 실태조사에 의하면, 척수장애인의 82%가 고졸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고 이중 34%는 학사이상이다. 출생률의 저하로 생산인구가 준다고 고민만 할 것이 아니라 재원의 적절한 활용을 준비해야 한다.

척수장애인은 장애에 대한 자존감 회복과 동기부여가 최우선이다 이것만 훈련시킨다면 사고전의 경력을 충분히 활용할 수가 있다. 이것 또한 직업재활의 첫발자국이다.

척수장애인의 직업재활은 보건과 복지, 노동, 교육의 융합이 필요하다. 즉 정부3.0의 충실한 실천이 필요하다. 발달장애인 훈련센터가 보건복지와 교육의 정부3.0의 대표적인 모델이다.

척수장애인을 위한 전문 훈련센터가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이곳에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사회복귀 훈련을 통해 많은 척수장애인들이 근로의 자신감을 되찾는다면 매우 훌륭한 시도이고 새로운 직업재활의 모델이 된다.

세상은 바뀌었는데..... 직업재활의 다양성의 변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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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척수장애인협회 정책위원장이며, 35년 전에 회사에서 작업 도중 중량물에 깔려서 하지마비의 척수장애인 됐으나, 산재 등 그 어떤 연금 혜택이 없이 그야말로 맨땅의 헤딩(MH)이지만 당당히 ‘세금내는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대한민국 척수장애인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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