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5월 9일은 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TV 뉴스에서는 온통 선거와 관련된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매번 선거를 앞두고 한 달쯤 전이면 우편함에 우편물이 한 통 도착해 있곤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한 통의 우편물이 도착해 있었다.

공직선거법 제 38조 제 3항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집에서 투표할 수 있으니 거소투표 신청을 하라는 안내와 함께 신고서가 동봉되어 있었다. 이 신고서를 작성해서 4월 15일 오후6시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발송하면 집에서 투표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우편물이다.

몸이 불편하더라도 신성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도록 참정권을 보장하는 올바른 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 우편물만큼 모순투성이에 화를 돋우는 것도 많지 않은 것 같다.

우선, 거소투표 신고서를 살펴보면 이 서식을 잘 작성해서 우체국에 접수하거나 가까운 우체통에 넣으면 된다고 안내되어 있다. 그런데 타인의 도움 없이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을 전제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것도 모순이다.

몸이 불편해 투표장에 가기 어려운 사람이 우체국에 가서 이 우편물을 신청하는 것이 가능할까? 또, 요즘처럼 우체통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대에 우체통을 찾아가서 거기에 우편물을 투입하고 오느니 차라리 투표 당일 그나마 찾아가기 쉬운 투표소를 찾아가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 더 쉽지 않을까?

물론 투표소에 장애인편의시설이 미비되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 문제는 논외로 하고 생각해 볼 때 실로 모순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소투표 신고서에만 점자음성변환용코드가 인쇄되어 있는 모습. ⓒ조봉래

한발 더 들어가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좀 더 큰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우편물이 크게 거소투표 안내문과 거소투표 신고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거소투표 신고서에는 점자음성변환용코드가 우측 상단에 인쇄되어 있다.

이것만 보고 ‘우리나라의 장애인권리보장이 참 잘 되어 있구나, 이제는 시각장애인도 이러한 코드가 있으니 쉽게 거소투표를 신청하고 편하게 집에서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이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일도 드물다. 안내문에는 점자음성변환용코드가 인쇄되어 있지 않다. 아무런 안내 없이 그냥 신고서나 작성하라는 것이다. 설령 안내문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점자음성변환용코드는 문서에 어떤 내용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도록 돕는 기능 밖에는 하지 못한다. 즉, 신고서에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하는지 정도를 알 수 있을 뿐 혼자서는 이 신청서를 작성할 방법이 없다.

무슨 내용의 우편물인지 모르고 그냥 버린다면 답답하긴 해도 최소한 화가 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게 무슨 서류인지 알고도 혼자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고, 또, 도와줄 사람이 없어 알고도 작성을 못한다면 답답할 뿐만 아니라 화까지 날지도 모르겠다.

어렵사리 도움을 요청해 작성을 한다 하더라도 우체통이나 우체국을 찾아가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정도면 그냥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하는게 나은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정말 시각장애인 입장에서 선거권 보장을 위해 숙고해 보았다면 신고서에만 점자음성변환용코드를 넣고 안내문에는 생략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고서를 보낼 때 우체국이나 우체통이 아닌 인터넷 웹사이트 등을 이용한 거소투표 신청방법을 마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일반적인 책자와 거소투표서에 인쇄된 점자음성변환코드 비교. ⓒ조봉래

여기까지만 읽으면 다소 억지스럽다는 평을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까지가 아니다. 점자음성변환용코드를 읽기 위해서는 별도의 전용보조공학기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스마트폰이 널리 보급되며 스마트폰용 어플로 이 코드를 읽을 수 있게 되면서 전용기기가 있어야 읽을 수 있다는 한계에 대한 비판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스마트폰을 이용하지 않는 시각장애인은 별도의 기기 없이 이 코드를 읽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도 억지로 이해해보려 하면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거나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럴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눈으로 보이는 인쇄물과 내용이 다르게 적혀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한 마음에 점자음성변환용코드를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어플을 실행해 보았다.

10분이 넘게 스마트폰과 신고서를 들고 씨름을 했지만 해당 코드를 인식하지 못했다. 어플리케이션이 문제인가 생각되어 다른 점자음성변환용코드가 인쇄된 책자로 실험을 해 보았더니 몇초만에 인식이 잘 되었다.

점자음성변환용 코드가 인쇄된 책. ⓒ조봉래

인쇄용지 등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어 점자음성변환용코드를 읽을 때 사용하는 별도의 보조공학기기로 다시 시도해 보았다. 이 기기를 이용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모순투성이의 점자음성변환용코드마저도 이용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인쇄한 후 단 한번의 테스트조차 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결국 진정어린 정보접근권 보장이 아니라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상기 책자를 전용 어플로 인식한 모습. ⓒ조봉래

이런 상황에서 어렵게 거소투표를 신청하면 어김없이 접근권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은 구색맞추기 식의 투표용지가 배달되어 온다.

그러면 또 그 용지에 어떤, 어떤 후보들 이름이 어디어디에 있는지 물어보고 용지에 머리를 바짝 대고 겨우겨우 기표하거나 도움을 받아가며 투표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의 거소투표제도가 장애로 인한 불편함을 고려해 만들어진 제도라면 장애인 입장에서 참정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개선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검토가 시급히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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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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