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자조모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의약품에 대한 설명과 사용방법 등을 강의하였습니다.

“상처가 생겼을 땐 제일 먼저 소독약으로 깨끗하게 소독을 하고 연고를 바르거나 밴드를 붙이면 되요. 알겠죠? 생각보다 참~ 쉽죠잉?”

“예~”

“좋아요, 그럼 누구부터 실습 해 볼까요? 음... 그래, 태연이부터 해보자. 자! 태연아, 여기 소독약이랑 복합 마××솔이 있어. 저기 상환이 오빠가 칼에 베여 손가락에 피가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뜸 들이는 중) “음…….”

“태연아, 빨리 조치하지 않으면 피가 멈추질 않을 것 같은데 어쩌지?”

“알써요. 일단 상환이 오빠 뒤통수를 힘껏 후려쳐요”

“뭐? 손가락이 아파 죽겠는데 왜 뒤통수를 후려쳐?”

“그니까 눈알이 튀어나오도록 뒤통수를 후려치면 그게 아파서 손가락 아픈 걸 잠시 잊을 수 있잖아요. 그때 아~ 해서 복합 마××솔을 쭉- 짜 먹이면 되지요.”

뭐 뭐시라? 말문이 막혀 한동안 넋을 잃고 있는데 더 가관인 것은 상환이의 반응입니다.

“맞다. 그러면 되겠네. 니 진짜 머리 좋다. 허허허 뒤통수 한 번 때려봐봐봐”

한 번은 창원에서 강사선생님을 초청해 자립에 꼭 필요한 경제교육을 실시한 적이 있습니다.

“왕복 세 시간의 길을 마다않고 열심히 달려와 주신 강사선생님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잘 들어 주세요. 알았죠?”

(모두들) “예~”

2시간 남짓 과자와 음료수까지 준비해 거의 실전에 가까운 강의를 진행해 주신 강사선생님의 열정과 수고에 보답이라도 해 드리고 싶어 아주 쉬운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강사선생님 강의 정말 멋졌죠? 태연아, 만원 줄 테니 요 앞 반찬가게에서 점심 때 먹게 갈치조림, 콩나물무침, 일미를 각각 3천 원씩 사다줘. 알았지?”

“네~”

“만원 줬으니 거스름돈은 얼마를 받아야 될까?”

제 체면도 있고, 열강하신 강사님의 얼굴을 봐서라도 속 시원하게 “천원이요~”라고 대답해 주면 좋으련만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아~ 지부장님, 복잡스럽게 뭐한다고 현금주고 앉아있습니까? 카드로 긁으면 되지~”

헐~ 카 카드. 그러고 보니 요즘 같은 세상에 상당히 일리 있는 발언입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현금이 아닌 체크카드 긁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현금 줄 때보다 더 당당해 진 것 같긴 합니다.

어쩌다보니 오늘은 태연이 이야기만 했네요. 사실 태연이가 (맘과 다르게)말을 좀 세게 하는 편이라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가만히 누워 하루를 돌이켜보면 태연이로부터 들었던 충격적인(?) 이야기나 대화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자조모임. 필자(V자) 옆이 태연이. 포스가...^^ 얼굴을 가린 친구는 타지역으로 이사를 가 자조모임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제지훈

어찌되었든 성인장애인들의 자조모임엔 참가자 수만큼의 다양함이 있습니다. 모임에 보통 6~8명 정도가 참석하니 그 만큼의 다양함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아주 재밌는 것은 그 다양함이, 모일 때와 흩어질 때를 기가 막히게 잘 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태껏 모임이 유지될 수 있었겠지요.

우리는 가끔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때 다양함보다는 보편적인 특징에 주목하여 그룹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장애인들은 아주 고집이 셉니다.”

“○○장애인들은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고 활발합니다.”

“△△장애인들은 폭력성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필자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수급자격심의위원회’ 회의에서 한 번은 자폐성 장애인의 수급자격에 대해 심의하는데, 한 위원분이 자폐성 장애인은 사람과의 접촉을 싫어하고 폭력성이 강한 특징이 있으니 조심해야한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공적인 자리인데다 자폐성 장애인을 많이 접해보지 못한 분들도 계시고해서 혹시나 오해나 편견의 소지가 생길까 싶어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한 말씀 드렸습니다.

“위원님, 비장애인 중에도 온순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격적인 사람이 있잖아요. 자폐성 장애가 있어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자폐성 장애인 중에도 온순한 사람이 있고 다소 공격적인 성향의 사람이 있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다운증후군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사람들에게서 자주 목격되는 해프닝이 있습니다. “어? 나 저 친구 알아. 어디어디 시설에 있는데 여긴 웬일이지?”

“엥? 저 친구 쌍둥이 인가봐. ××학교에서 봤는데 언제 여기까지 왔데?”

그러면서 한 마디씩 더 거듭니다.

“근데, 저 친구 정말 사람을 좋아해.”

“장애인들 행사에 가보면 빠르고 흥겨운 노래 나오면 항상 나가서 막 춤추고 그래”

“저 친구 정말 먹는 거 엄청 좋아해. 조절이 잘 안 되거든.”

정말 그럴까요? 제가 겪은 바로는 ‘아니요’입니다. 열 명의 다운증후군 친구들이 있으면 열 가지의 인격과 성격이 있습니다. 그들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요. 비슷한 외향적 특징들이 존재할지 몰라도 비슷함이 아닌 서로를 명확하게 구분시켜 주는 그들만의 성향이나 성품, 성격 등은 모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고유한 것들입니다.

그러니 부전자전이란 말이 통합니다. 공통적인 혹은 비슷한 특징이 아닌 그들의 엄마와 아빠를 닮은 독특하고도 뚜렷한 특징들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저는 장애인을 유형화시키려는 개인적인 습관이나 사회적인 관습에서 이제는 조금씩 벗어났으면 합니다. 편견은 대단히 큰 사건이 아닌,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사소하게 통용되는 말 한마디, 생각 한 조각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유형화가 되고, 유형화가 모이면 장애인에 대한 고착화된 정의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장애인의 자립이 어려운 것은 이렇게 고착되어진 정의로 인해 파생되어진 편견의 조각들 때문입니다. 다양함이 주는 유쾌함을 모르기 때문이지요.

바라기는 편견을 날려버리고 유쾌함을 알아갈 수 있는 긍정적인 ‘나비효과’가 사회전반에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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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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