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종종 누군가 부러울 때가 있다. 엄청난 부나 명예를 가지고 있거나, 큰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고, 가끔은 행복하게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하는 소박한 가족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혹은 생각하는 바에 따라 대상은 다르지만 우리는 자주 누군가를 부러워 할 것이다. 이러한 부러움이 유독 어린 시절에는 많았던 것 같다. 이런 부러움들 중 좀 특이한 부러움이 하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그 때에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저 사람들은 멀리 가더라도 하나도 지겹지 않겠지.’, ‘저렇게 이동하는 시간에도 책을 보고 글을 읽고 하면 저 사람들은 다 엄청나게 똑똑해 지겠다.’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부러워하곤 했다.

특히, 시험을 보는 날에는 등교하는 버스안에서 시험공부 하는 아이들을 보며 공연히 혼자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서는 유독 욕심이 많았고 그만큼 부러움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책을 읽어주는 어플리케이션과 DAISY파일로 도서를 제공해 주는 복지기관들 덕분에 출퇴근길에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혹은 택시 안에서 나도 책을 읽으며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가졌던 그 똑똑한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이 아직도 강박처럼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좀 더 똑똑해져 보고자 대학원이라는 곳을 다녔는데 오늘은 그 때 논문을 준비하며 느꼈던 답답함을 이야기 해 볼까 한다.

무언가를 연구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선행 연구와 같은 문헌자료를 검토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일이 시각장애인인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일단 학위논문들 중 필요한 논문을 찾는 일도 녹록치 않았다.

또, 학위논문이라는 자료 자체가 수십여 페이지에서부터 수백여 페이지에 달해 읽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논문에 수록된 표들은 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곤 했다. 게다가 학술DB들에서 제공하는 논문들은 PDF라는 파일 형식을 채택하고 있어 스크린 리더로 읽는데 좀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읽을 수 있는 논문은 그나마 나은 경우였다. 몇몇 논문들은 PDF형식으로 제공되고 있지만 스크린리더로 읽을 수 없도록 되어 있어 별도의 광학문자판독프로그램(OCR) 변환한 후에야 겨우 읽을 수 있었는데, 이마저도 MS Word파일로 변환되는 까닭에 읽는데 큰 불편이 따랐다.

무엇보다 곤혹스러웠던 것은 일부 학교에서 원문자료를 ezPDF라는 PDF의 변형된 파일 형식으로 제공하는 경우였다. 이 파일 형식으로 제공된 논문들은 OCR 프로그램으로도 변환이 되지 않는다. 자료를 찾다 이 파일형식의 논문이 나오면 일찍 포기하고 다른 논문을 찾아 참고하는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정도였다.

부득이하게 반드시 그 논문을 참고해야 한다면 해당 자료를 모두 종이로 출력하고, 출력된 것을 다시 스캐너를 이용해 이미지 파일로 스캔한 뒤 OCR프로그램을 이용해서 텍스트로 변환하여 읽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종이도 많이 들거니와 시간과 노력을 상당히 많이 쏟아야만 비로소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쳐도 인쇄상태나 글꼴 등 상황에 따라서는 OCR이 오류를 일으켜 자료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ezPDF형식으로 된 논문을 불러온 모습 ⓒ조봉래

그렇게 논문을 준비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왜 학술 DB는 논문의 파일 제공방식을 PDF나 ezPDF로 정한 것일까? 이 PDF라는 파일은 비단 논문자료를 읽을 때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업무를 보는 때에도 종종 시각장애인들의 발목을 잡곤 한다.

화면낭독프로그램으로 읽히지 않는 자료도 많거니와 읽히더라도 많은 불편함을 겪을 수 밖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종 규정집이나 자료집을 살펴보아야 할 때에도 파일이 PDF이면 발행기관에 전화를 걸어 아래한글 파일을 구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게 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적절한 파일이라고는 하는데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시각장애인용 대체자료의 파일 형식으로 DAISY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을 때 불편하다는 지적이 무수히 쏟아졌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불편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던 DAISY 조차도 이 PDF 보다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 편하게 자료를 읽을 수 있다. 요즘 전자책의 파일 형식으로 많이 사용되는 EPUB도 PDF보다는 쉽게 자료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굳이 PDF로 학술DB에서 논문자료를 제공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다. 논문자료에 대해서도 DAISY와 같은 대체자료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아마도 기존의 많은 자료들을 모두 DAISY로 변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답만 돌아올 것이다. 이미 발표된 자료들에 대해서 소급하여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면 앞으로 등재될 논문들에 대해서 만이라도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한 파일포맷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접근이 불가능하거나 불편하기만 한 파일형식을 채택하게 된 데에는 영향력을 가진 시각장애인들이 관련 분야나 학계에 충분히 진출하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술DB에 대한 접근이 제한될 때 시각장애인들은 연구를 통해 지식을 쌓고 좀 더 전문적인 분야에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는 다시 이러한 학술자료의 접근에서부터 소외되도록 하는 결과를 재생산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악순환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 연구자료에 대한 접근권 보장을 통해 학계와 전문분야 등에 좀 더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할 때 정책이나 제도의 기획단계에서부터 이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보다 많은 이들의 권리가 존중되는 사회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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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래 칼럼리스트 나 조봉래는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보조공학부를 총괄하며 AT기술을 이용한 시각장애인의 정보습득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고, 최근에는 실로암장애인근로사업장 원장으로 재직하며 시각장애인의 일자리창출을 위해 동분서주해 왔다. 장애와 관련된 세상 모든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소홀히 지나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예리한 지적을 아끼지 않는 숨은 논객들 중 한 사람이다. 칼럼을 통해서는 장애계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나 놓치고 있는 이슈들을 중심으로 ‘이의있습니다’라는 코너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 갈 계획이다. 특히, 교육이나 노동과 관련된 주제들에 대해 대중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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