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른을 바라보는 다운증후군 자녀를 둔 어머님과 종종 이야기를 나눕니다. 전공과까지 졸업하고 나니 더 이상 배울 곳도, 받아주는 곳도, 그렇다고 마땅히 취업할 곳도 없어 몇 년째 주간보호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루 온 종일 자식과 함께 있을 걸 생각하면 갑갑해 죽을 것 같은데 그나마 주간에라도 보낼 곳이 있어 다행이랍니다.

“제 선생, 나 죽으면 저 녀석 천덕꾸러기처럼 홀대 받을게 뻔~ 한데 그 생각하면 가슴이 아파 죽지도 못할 것 같아. 그냥 저 놈보다 딱 하루만 더 살다 가는 게 소원이야.”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으나, 혹시나 해서 여쭤봅니다.

“어머니, 다운증후군 환자의 평균 수명이 50세 정도라는데, 헌수가 서른을 바라보고 있으니 한 20년 남았네요. 어머니가 올해 오십이니 칠순잔치하고 나면 바로 장례치를 준비해야 하는데 어떡해요? 요새 칠십이면 한창이라는데.”

“어? 그 그게 아 아니고, 내 내말은 그 그러니까...”

“어머니, 왜 갑자기 말을 더듬고 그러세요?”

말이 그렇지 뜻이 그렇단 소린 아니라는 얘깁니다.

#2. 현우는 전공과를 졸업하고 운 좋게 취업을 했습니다.

한 달에 월급 9만 원.

식대 6만 원에 교통비가 5만 원.

쌔빠지게 일해도 한 달에 최소 2만 원 마이너스.

폼 잡고 회사까지 콜택시 대절해 가는 날은 제삿날입니다.

“어머니, 그러고도 거기 보내고 싶으세요?”

“뭐, 돈이 중하나요? 일단은 지가 재밌어하고, 일하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그러는 거지요...”

#3.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식은 자기가 책임지신다는 아버님이 계신데, 경제력이 좀 되시는 분이십니다.

“복지사 선생,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절대로 우리 아들은 밖으로 안 내보내고 내가 빵집을 차리든 뭐든 해서 책임집니다.”

험한 세상에 자식이 겪어야 할 상처와 설움에 쉽사리 놓지 못하는 아버님의 마음이 느껴져 긴 말 않고 조용히 한 마디만 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뜹니다.

“아버님, 제가 눈에다 흙을 확~ 넣어 드릴 테니 그냥 보내주세요.”

장애자녀를 둔 많은 부모들은 각자의 색과 모양새로 양육부담을 안고 살아갑니다. 특히 발달장애인과 같이 성인이 되어서도 독립해 살기가 어려운 경우 생애주기와 무관하게 부모나 보호자로부터의 지속적인(평생의 시간) 지원과 돌봄을 필요로 하지요.

장애인복지에 대한 패러다임이 재활에서 자립생활로 변화되고, (중증, 발달)장애인자립지원센터의 수적인 증가와 더불어 그 역할의 비중이 커져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형태의)보호시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장애인복지의 진행방향이 장애자녀를 둔 부모들의 양육부담에 대한 문제를 시원하게 긁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존재감과 생성감(Generativity)을 통해 가치 있게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전자는 투명인간의 반대말이고, 후자는 후진을 양성하고자 하는 욕구를 의미하는데요. 아무래도 ‘미친 존재감’을 가진 사람들이 생성감도 높은 듯합니다.

존재감은 ‘노동’이라는 역할을 성실히 감당할 때 잘 드러납니다. 노동은 직업과는 조금 다른 의미인데요, 직업은 생계를 위한 활동이지만 노동은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사회참여에 비유된다면 노동은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근원적인 ‘사명’과도 같습니다.

인간의 존재감이 직업을 통해 나타난다면 직업 활동에 참여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은 존재감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으니 존재감을 직업이 아닌 노동에다 두는 것이 좀 더 포용력이 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우리는 장애인복지를 논할 때 노동보다는 직업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립과 사회통합의 관점에서 직업을 통한 사회참여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직업을 통한 사회참여가 어려운 중증의 장애인이라 할지라도 노동을 통한 숭고한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로 먼저 간 ‘찬우’는 근육병으로 겨우 손가락 몇 마디만 움직일 뿐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타인에게 의존해 살아야했지만, 짧은 그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변화시켰는지는 마지막 가는 그의 길을 지키기 위해 모여든 수많은 행렬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웃어주고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한 것이 그가 한 전부였지만, 그것은 그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최고의 노동이었고 그는 성실히 그것을 행하였습니다.

‘버거스씨병’으로 양 다리와 양 손의 손가락 대부분을 절단해야 했던 상도씨. 끔찍한 고통을 잊기 위해 열심히 담배를 빤다던 능청스런 그의 행동과 익살스런 웃음은 그를 보낸 지 수년의 시간이 흘렀어도 여전히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게 만듭니다.

절단장애로 인해 몇 마디 남지 않은 손가락으로 전동스쿠터를 몰다 때론 논두렁에 처박히고 때론 멀쩡한 사람 다리위로 바퀴가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였지만 언제나 엉뚱한 그의 일상은 많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하였습니다.

다시 부모들의 양육부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실 그 양육에 대한 부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병원비, 각종 치료비, 교육비, 여가시간 등의 부재라기보다는 소중한 자녀가 성인이 되어 존재감 없는 무가치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에 대한 심리적 고통이 더 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식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어 하고, 일 할수록 마이너스라도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 하며, 끝까지 곁에서 지켜주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저는 모든 장애인들이 직업을 통한 사회참여든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환한 웃음이든, 존재만으로도 타인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던, 노동의 어떤 형태라도 그것이 조물주가 자신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면 성실하게 행하면서 살아있는 동안 미친 존재감으로 나와 타인을 행복하게 하며 오래 오래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좋은 세상 너무 일찍 가는 것도 참 가슴 아픈 일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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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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