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지부장님도 잘 꺼지세요.”

교육을 마치고 귀가하는 태연(女)이의 목소리가 우렁찹니다. 세상에~ 암만 철이 없기로서니 지부장님보고 ‘꺼지라니?’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X. 앞뒤 다 잘라먹고 딱 요부분만 들으면 식겁 똥을 쌀 때까지** 죽도록 맞고 한 대 더 맞아도 쌉니다. 제가 자란 곳에선 ‘혼쭐이 난다’를 (** )이렇게 표현합니다.

학령기(전공과 포함)를 막 지나 자립생활 준비를 위해 부모님과 함께 협회를 방문한 발달장애인들에게 “뭐가 먹고 싶어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아무 꺼나요~”라고 대답합니다. 얼마큼의 시간이 흘러도 “무슨 영화 볼까요?” “아무 꺼나요~”, “어디 놀러 갈까요?” “아무 데나요.”, “누가 반장할까요?” “아무나요.”

이런 job것들이~ 참다 참다 “죽고 싶어요? 살기 싫어요?”이러면, “아무 꺼나요~ 어? 죽기 싫어요.” 어라? ‘결정 장애’가 있는 줄 알았더니 요건 또 잘도 피해갑니다.

옛날에 ‘피그말리온’이라는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한 날은 온 정성을 들여 아름다운 여인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얼마나 그 자태가 고왔으면 그만 자신이 만든 그 여인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이고, 이건 뭐 우리가 보면 우사(우세)요, 남이 보면 남사입니다. 세상에 암만 돌덩이가 예쁘기로서니 사랑에 빠지다니요.

그런데 이 돌을 향한 사랑이 얼마나 진실했던지 여신(女神) 아프로디테(비너스)마저 감동시켜버리고 맙니다. 결국 아프로디테는 이 여인상에게 진짜 생명을 주게 되는데요. 진심 부럽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어쩌면 피그말리온을 두고 이른 말인가 봅니다.

훗날 사람들은 ‘누군가의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은 다른 사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킨다.’를 줄여 피그말리온 효과(Pygmalion effect)라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발달장애인으로 돌아와서, 많은 발달장애인들이 ‘결정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 물론 제게도 심각한 결정 장애가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치명적 결정 장애. 바로 “짜장면 or 짬뽕” 수십 년을 고민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 중 난제죠.

이는 선천적일 수도 있으나 상당수 후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님, 친지들 혹은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다 도와주니 애써 ‘뭐 먹지?’, ‘뭐 입지?’, ‘어디가지?’ 등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요즘같이 복잡한 세상에 선택할 필요 없이 알아서 다 해 준다는 것이 어찌 보면 꽤 매력적이고 편하게 보일지 몰라도, 그것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결국 자신의 능력으로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는 문제 앞에서도 쉽게 포기해 버리고 마는 그야말로 무기력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오래전 셀리그만(M. Seligman)이라는 학자는 이를 두고 ‘학습된 무기력’이라 하였는데, 무기력함이 학습될 수 있다는 것은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염두에 둘 때 그 경고성이 농후합니다.

우리는 자립을 이야기 할 때 ‘자기선택’, ‘자기결정’, ‘자기책임’에 비중을 둡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들에게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책임지게 하는 데는 상당한 인내가 요구되는데요. 이 인내의 시간을 참지 못하면 “알아서 떠 먹여 줄 테니, 입이나 벌리고 있으세요.”를 행동으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2015년 초반부터 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에서는 성인발달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한 자조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애초 2년 6개월을 기약하고 시작한 자조모임은 들락날락해도 평균 7명 정도가 꾸준히 참석하고 있는데요. 올 하반기 즈음엔 소박하게나마 경제적인 자립과 물리적인 자립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년 전 오늘, 자조모임을 하기 위해 성인발달장애인들이 모였는데 정말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아무 꺼나요, 몰라요, 안 해요, 싫어요.......” 우씨~ 온 몸을 거꾸로 휘감아 도는 피를 겨우 진정시키고 직원들과 함께 기다려주고 또 기다려주고 한 번 더 기다려주고 미친척하고 기다려주고. 그러길 2년! 이제는 다음 주간의 주간계획은 물론, 매일의 점심식사 준비까지 자기들끼리 머리 싸매고 알아서 준비하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자조모임. ⓒ제지훈

자조모임 참가자들의 변화에 ‘졸도’한 사람들이 있는데, 바로 가족들입니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되거든요. ‘받아먹을 줄만 알겠지’했는데, 알아서 챙겨 먹을 줄도 알거든요.

요즘엔 집집마다 돌아가며 자기 집에 초대하는 것에 재미가 들려, 애꿎은 어머니들이 음식이며 간식 준비하느라 식겁 똥을 싸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이들의 변화에 가장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것도 어머니들입니다.

저는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밑바닥에 깔고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이 ‘피그말리온 효과’라 생각합니다. 늘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자는 것이지요.

물론 안 되는 것은 끝까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끝까지 안 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긍정적인 관심과 지지로 오래도록 기다려 준다면 분명 발달장애인들의 변화를 향한 더 큰 가능성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맨 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사실 전후 사정은 이렇습니다. 집에 가는 태연이를 향해 제가 먼저 “태연아~ 잘 꺼져” “네, 지부장님도 잘 꺼지세요.” 이만큼 관계가 형성된 것에 대해 저는 참 고맙게 생각합니다. 절대로 안 될 줄 알았거든요.

며칠 전, 서울에 간담회가 있어 1박 2일을 보내고 삼일 만에 거제시지부로 돌아왔더니 제일 먼저 태연이가 다가와 반겨줍니다.

“지부장님, 그것도 상판(얼굴)이라고 없으니 보고 싶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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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훈 칼럼리스트 (사)경남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거제시지부장으로 재직하면서 인근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후배 복지사들을 양성하고 있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장애인복지의 길에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가족과,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어 오늘도 행복하게 까불짝대며 잰걸음을 힘차게 내딛는다. (발달)장애인들의 사회통합으로의 여정에 함께하며 진솔하게 일상을 그려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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