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필자의 곁에는 항상 극단 ‘멋진 친구들’이 있었다. ‘멋진 친구들’은 2010년 창설되어 연극에 재능 있는 발달장애인이 주체인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부설 발달장애인극단이다.

발달장애인, 유아, 학생 등을 관객으로 하여 2016년까지 성교육, 데이트 등을 주제로 한 인형극, 창작극 등을 선보이는 등 공연을 총 300여회 했다. 2014년부터는 비장애학생에게 발달장애에 대해 알리는 장애이해교육 활동을 하는 극단이다.

‘멋진 친구들’은 연구소 내에서 연습벌레다.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거라 멋진 인형극을 선보이려고 아침부터 운동하고 이후 인형을 들면서 연기연습을 하는 등 상당히 열심이다. 요즘에는 감정을 더 섬세히 표현하는 법도 배우고 있다.

멋진 친구들 단원이 연기연습을 하는 모습 ⓒ이원무

이런 ‘멋진 친구들’이 작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오후 3시와 8시, 두 차례에 걸쳐 망원역 근처 성미산마을극장에서 연극 ‘위로받을 햄릿’을 공연했다.

‘위로받을 햄릿’은 발달장애인들이 힘든 상황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아픔을 서로 나누고 같이 위로하며 관객들과 공감·소통하자는 취지에서 기획했다고 한다. 먼저 연극 ‘위로받을 햄릿’이 실제로 공연되었던 내용을 정리하고 이어서 필자가 이 연극을 관람하며 느낀 소회를 나누고자 한다.

‘멋진 친구들’ 극단이 연습하는 연극 ‘위로받을 햄릿’에 햄릿 역을 기명이 맡았다. 기명은 며칠 전 하영과 같이 콘서트를 보았고, 그 날 하영은 기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명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하영의 엄마에게 물어보라고만 말했다.

그래서 하영은 엄마에게 물어봤고 엄마는 기명이를 사귀어도 된다고 하영에게 말했다. 엄마는 기명에게 가서도 하영이를 사귀어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서 ‘위로받을 햄릿’ 공연 바로 전날, 하영은 사귀어도 된다는 엄마의 허락을 받았다고 기명에게 말하려던 차였다. 그런데 기명은 연습하자고 말했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준 하영은 울었다.

하영의 우는 모습을 본 극단 동료들은 하영이를 때린 게 아니냐며 기명을 추궁한다. 이들은 학창시절 동료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기에 때린 게 아니냐며 추궁한 것이다.

하지만 기명은 때린 것이 아니라고 답했다. 기명은 동료 난이에게 하영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자신이 하영을 좋아해도 되는지를 물어보며 난이와 함께 슈퍼로 간다. 이후 하영도 때린 것이 아니라고 같은 답을 했다. 동료들은 혼란스러워한다.

동료 소정은 난이와 같이 슈퍼에서 돌아온 기명에게 하영이 기명과 사귀어도 된다는 걸 말하려 했다는 말을 전한다. 기명은 알고 있다고 했지만 자신이 하영을 사귈 수 없다고 하며 하영이 없는 상태에서 소정을 비롯한 동료들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말한다.

연극 ‘위로받을 햄릿’공연 시작 직전(좌측), 공연 시작 때(우측) ⓒ이원무

기명은 어려서 사고가 나 친구 없이 혼자였다며 아이들이 자신을 놀렸다고 말한다. 한번은 아이 다섯 명이 자신에게 와 친하게 지내자며 자신을 끌고 갔는데, 처음에는 어떻게 사고가 났냐고 물어보고, 힘들겠다며 자기네가 보호해주겠다고 기명이 입은 패딩을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명이 싫다고 하자 아이 다섯 명은 기명을 넘어뜨리고 마구 밟았다. 기명은 움직일 수 없어 두 시간 동안 웅크렸고 아무도 위로하지 않았다며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마친다.

이에 하영을 뺀 동료 모두가 숙연해질 때 난이는 포기하지 말자며, 우리 중에 놀림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있냐고 물어봤고 태환은 놀림 당해 혼자 하는 취미를 찾았다고 말한다.

이어 동료들은 연극연습을 하고부터는 아주 좋다며 자신에게 생긴 강점들을 말한다. 난이는 기명에게 ‘기명아! 넌?’이라고 물었고, 기명은 ‘맞다!’고 답한다.

이후 난이와 소정은 우리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이어 난이는 5년 전에 인형극을 시작해 이제는 우리가 직접 연극을 하게 되었고 연극연습이 힘들었지만 우리는 이겼다고 말한다.

기명은 연습하며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에 난이는 기명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그래! 우리는 용기를 얻었어.’라고 하며 용기와 열정이 생긴 지금의 기명의 모습을 보라며 기명을 위로한다.

이어서 난이는 기명에게 ‘하영이 좋다고 해서 행복하지?’라고 묻자 기명은 ‘행복하다’고 답한다. 난이는 ‘행복하면 충분해!’라고 답하고 다른 동료들도 기명을 위로한다. 기명은 힘을 얻으며 하영에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려 했다.

하지만 기명은 하영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는 대신 연습하자는 말을 한다. 사랑을 고백하는 마음이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지만 위로를 받다보면 어느 순간에는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순간이 온다는 메시지를 암시라도 하듯이 말이다. 이후 햄릿과 오필리어, 광대, 유령이 무대에 나타나 마음을 표현하는 가운데 연극 ‘위로받을 햄릿’은 끝난다.

연극 ‘위로받을 햄릿’공연에서 기명이 동료들에게 자신의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는 모습 ⓒ이원무

이 연극을 보며, 필자도 과거의 아픈 시절이 떠올랐다. 필자는 진담과 농담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어 학창시절 동료들의 놀림감이었다. 동료들이 장난한답시고 필자의 소중한 곳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하거나 심지어는 잘난 척을 한다는 이유로 필자를 괴롭혔던 순간이 떠올랐다. 괴롭힘 종류는 다르지만 연극에서의 기명의 과거 아픔이 백배 공감이 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 등의 장애인이 먼저 사람에 대해 충분히 배운 다음 장애에 대한 생각을 같이 토론하면서 서로의 생각이 같지는 않지만 그 차이가 좁혀질 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

발달장애인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이 되도록 국가, 지자체 등에서 환경을 조성했으면 한다. 발달장애인도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알고 괴롭힘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갖춤은 물론 발달장애인 자신도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난이가 행복하면 충분하다고 말한 거나, 기명과 동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강점을 찾고 스스로 위로하도록 촉진했던 장면 등은 필자에게는 연극 이상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왜냐면 멋진 친구들은 실제로 자기옹호 수업을 오랜 시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성인이 되어 남에게 자기를 편들어 주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이기도 하다. 남들이 편들지 않아도 발달장애인이 자신의 강점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자들이 지원하고 이것이 쌓여 나중에 스스로 자신이 강점을 찾아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도 격려와 위로를 주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자기옹호라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 자기옹호 수업을 오랜 시간 받고 삶에서 경험해서 그런지 멋진 친구들이 이제는 예전에 비해 남들이 뭐라 해도 자신의 강점을 살리려 노력해 스스로 자신은 물론 타인도 위로·격려하게 되는 모습이 필자의 눈에 실제로 강하게 느껴진다. 상당히 부럽기도 하다.

필자는 사실 프로포절을 잘 쓰지 못한다. 직장생활 당시, 속에서는 프로포절을 잘 쓰는 직장동료들이 부러웠고 자격지심도 들었었다. 동료들에게 이런 속마음을 꺼냈다.

동료들은 필자에게 강점이 많다며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과 격려를 주었다. 그런 동료들을 주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너무 자주 꺼내, 한편으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느껴 부끄럽기도 하다. 이런 내 자신을 돌아보며 조금이나마 반성하련다.

연구소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기옹호 지원자 양성과정, 제나문화아카데미, 토론회 등을 통해 자기옹호의 중요성을 조금씩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앞으로는 누군가가 격려를 주지 않고 편을 들어주지 않아도 필자 스스로 강점을 찾아 나 자신은 물론 타인까지 위로하고 격려하는 그런 모습이고 싶다. 그렇게 될 때 험한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기옹호의 중요성, 그리고 발달장애인 차별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 필자가 ‘위로받을 햄릿’을 관람하며 느낀 소회이자 메시지다. 이와 같은 메시지를 담는 연극이 올해에도 또 나왔으면.

연극 ‘위로받을 햄릿’공연이 끝난 후 단체사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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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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