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이라고 쓰여진 글씨. ⓒ최선영

아침부터 분주하게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고 벗고를 거듭하다 마음을 정한 듯 널브러진 옷들 사이로 치마와 블라우스를 집어 들어 입습니다.

코트를 덧입는 순간 밖에 인기척이 들립니다.

지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서둘러 밖으로 나옵니다.

민철이 기다리고 있는 밖으로 나오는 지수 그림 ⓒ최선영

“일찍 왔네”

지수는 기다리는 민철에게 짧은 인사를 하고 차에 올라탑니다.

긴장한 듯해 보이는 지수에게 민철은 살며시 손을 잡고 미소를 건네며 긴장을 풀어줍니다.

 

지수가 도착한 곳에는 민철의 어머니와 그의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조심스레 들어서는 지수를 가족들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어머니와 첫인사를 나누는 지수 그림. ⓒ최선영

“반가워요 어서 와요 ”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지수를 꼬~옥 안아줍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품으로 안기며 지수도 인사를 합니다.

 

홀로 두 아들을 키우신 그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강인해 보였지만

활짝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는 따스함에 지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고

첫 만남임에도 조금의 어색함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 흘리며 생각에 잠겨있는 어머니 그림 ⓒ최선영

지수를 만나기 며칠 전

어머니는 그의 아들로부터 지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는 남몰래 홀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번도 어머니의 마음을 무겁게 한 적도 어머니의 말에 어긋나지도 않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아들은 어머니에게는 늘 자랑이었고

힘겨웠던 인생에 대한 보상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선택한 지수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들의 사랑 속에 담겨있는 많은 크고 작은 희생을 생각하며

어머니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루 이틀 삼일... 어머니는 그렇게 흐르는 시간 속에 아들의 마음이 되어 보았습니다.

“그래... 내 아들이라면 그랬을 거야...”

어머니는 혼잣말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같은 반 친구의 휠체어를 밀고 함께 집으로 와서 놀던 아들은 다른 친구와 똑같이 그 친구를 대했었고 그 친구가 할 수 없는 것은 기꺼이 대신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가르침대로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아마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다른 건 보지 않았을 거야 그때처럼...

그랬을 거야... 역시 내 아들이구나... 희생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할 거야... 민철이는...”

어머니는 또 혼잣말을 합니다.

 

어머니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 이번에는 지수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보았습니다

“얼마나 귀한 딸일까... 만약 내 딸이라면...”

어머니는 살며시 눈을 감으셨습니다.

마음 한켠에서 새어 나오는 눈물로 더 이상 혼잣말을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수의 마음도 되어 보았습니다.

“나라면... 나였다면... 나도 그랬을 거야... 너처럼 헤어지자고 했을 거야”

어머니는 아들에게 들은 지수에 대한 이야기들을 떠올리며 지수의 마음이 되었을 때 무언가를 결심한 듯 혼잣말을 하시고는 아들을 불렀습니다.

 

“며 칠 있으면 설인데 놀러 오라고 하렴”

어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아들은 활짝 웃으며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난 지수와 어머니는 가족이 되어 여러 번의 명절을 함께 보냈습니다.

어머니는 지수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더 잘 할 수 있게 살림을 가르쳐 주었고 할 수 없는 것은 나머지 가족의 몫이라 생각하며 배려해주었습니다.

지수는 그런 어머니가 고마웠습니다.

아들만 있는 어머니에게 딸이 되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했습니다.

앉아서 이야기하는 지수와 어머니 그림 ⓒ최선영

유난히 매서운 바람이 창을 두드리는 이 번 명절에도 지수와 어머니는 함께 했습니다.

이제 어머니는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아졌습니다.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어머니의 식탁에는 많은 약병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관절이 안 좋아진 어머니는 걷기가 불편해졌고 그동안 이해한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몰랐던 것 같다고 “이제야 지수 네가 얼마나 불편했을지를

제대로 알 것 같다"라며 더 마음 써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기도 했습니다.

 

항상 강인해 보이시던 어머니도 나이만큼이나 마음이 많이 여려졌나 봅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어머니는 좀처럼 보이지 않던 눈물을 내보이셨습니다. 그 눈물에 담긴 어머니의 이야기는 그녀의 마음에도 비가 내리게 했습니다

 

홀로 아들을 키우며 그녀가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삶의 거센 파도를 온몸으로 맞 부딪히며 살아온 그 세월의 모진 흔적들을 지수에게 털어내며 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닌 엄마가 딸에게 하듯

같은 여자로서 위로받기를 바라는 듯 어머니의 삶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셨습니다.

 

그녀도 엄마에게 친구에게 하듯 자신만의 아팠던 이야기들을 어머니께 나누며 위로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서로 들어주기만 해도... 함께 서로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고 마음에 남아있는 작은 상처들이 어루만져지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지수의 불편함을 더 보듬어주게 되었고

지수는 어머니의 강인함 속에 숨겨진

힘겨운 삶을 보고 어머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만들어낸 지금의 삶... 어머니의 그 눈물 속에는

지수의 이야기도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눈물로 지수를 며느리로 맞아주셨습니다.

지수는 그런 어머니가 고마웠고 이제는 딸에게 하듯 어머니의 마음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 좋았습니다.

 

서로를 향한 이해와 사랑 속에

지수와 어머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를 넘어서서 엄마와 딸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그렇게 살아가자며 두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옷을 고르는 지수와 어머니 그림(좌), 활짝 웃으며 집을 나서는 지수와 어머니 그림(우)ⓒ최선영

지수와 어머니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을 꺼내

입고 벗고를 거듭하며 서로의 거울이 되어줍니다.

지수와 어머니는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 집을 나서며

서로를 향해 환한 웃음을 보냅니다.

그리고 그날 깊은 시간까지 지수와 어머니는 둘만의 추억을 또 만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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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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