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낚시 드리우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무심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이 시는 중학교 3학년 교과서였던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였던가에서 배운 월산대군이 쓴 시조로, 수능을 위해 공부했던 내용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이 시조에서 대구법이니, 서정시니, 풍류를 즐기는 선비의 욕심 없는 마음을 노래한 시조라 배웠고, 청구영언에 실린 작품이라 외웠다.

그런데 월산대군은 불운의 삶을 살았다. 평생 우울증에 시달리는 연약한 왕자로서 스트레스로 인한 잔병이 잦았고, 어머니 병간호를 하다가 35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성종의 친형으로 왕이 되지 못하고, 궁에서 고양시로 내려가 책을 읽고 술을 마시며 낚시를 하며 살았다. 아버지가 병으로 월산대군이 3살 때에 세상을 떠나 아버지는 왕세자로서 임금에 오르지 못하였고, 왕위는 예종에게 돌아갔으나 할아버지 세조는 월산대군을 무척 사랑하였다.

19세에 왕위에 오른 예종조차 왕이 된 후 1년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고, 독살로 죽었다는 소문이 자자하였다. 세조를 왕위에 오르게 한 훈구파들이 예종이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자, 이에 맞섰던 것이다.

훈구파들은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4살이라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였으나, 제안대군이 후에 왕이 되면 아버지의 사건을 파헤칠 것이고, 아버지의 왕권강화를 다시 시도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

월산대군이 후보 2순위였으나, 친동생에게 왕좌를 양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동생인 성종이 한명회의 사위였다는 이유였다. 대비가 동생인 성종에게 왕위를 수락한 이유는 한명회에 의한 권력 하에서 월산대군은 생명조차 안전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폐비윤씨와 같이 왕비조차 자리보전이 어려웠던 시절, 월산대군은 궁을 떠나 세상을 잊고 살았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동생인 왕을 매일 문안하였고, 군신들의 행사에 항상 참석하면서도 겸손을 잃지 않았다. 혹시 구설수에 오를까 염려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조심 또 조심을 시켰다.

자신이 아무리 조심을 하여도 역모사건이 생기면 엮여서 죽음을 면치 못할 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전혀 그런 사건들이 없었다. 세력의 균형이 어느 정도 양분되면 그런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겠으나, 절대적 훈구파들의 권력 앞에 누구도 대항할 수 없었다. 태평성대가 아니라 아첨을 하고 눈치를 보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는 공포정치가 있었기에 역모사건이 없었던 것이다.

월산대군의 시가 정말 선비의 풍류를 노래한 시일까? 왜 가을 한강의 물결이 차다고 했을까? 물은 고요하여 찬지는 눈으로 알 수 없다. 물이 찬 것인데, 물결이 차다고 노래하였다. 물결은 찬 온도의 사물이 아니라 동적인 움직임이다. 암울한 세상의 세파가 냉정하고 차다는 비판이었다.

낚시에 고기가 물지 않는 것은 자신과 정치적으로 뜻을 함께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자신은 왕족이기에 낚시를 하는 사람이고, 뜻을 같이할 선비는 낚아지는 물고기다. 월산대군은 선비가 아니라 낚는 자로서 그래도 갑의 위치였다.

‘무심한 달빛’은 억울한 심정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 잘못되었으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빈 배를 저어 오노라’는 어쩔 수 없이 울분을 억누르고 포기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면, 고기를 잡는 것에 큰 욕심을 두지 않은 선비의 한가로움과 욕심 없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정의롭지 않은 찬 세상에 자신도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를 한탄하는 시다.

이를 은유로 표현하지 않았다면 그는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비란 고고한 모습을 위장한 사실은 사회와 자신의 입장을 비관하는 슬픈 시이다.

한명회는 공직에 있으면서 조선을 좌지우지한 농단을 하였고, 후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하였다. 압구정이란 축제에 의해 쇠퇴하였고, 연산군의 어머니를 폐위한 것으로 죽어서도 벌을 받은 것이다.

요즘 세태가 한명회 시대와 닮아 있다. 최씨는 독일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어 말을 타고 지내려고 하였다. 관직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모든 관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복지부에서는 장애등급제 폐지에 대하여 시범사업 결과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추진방향도 제시하였다. 등급제 폐지는 첫째 비인권적이라는 점, 둘째 보편적 서비스를 제해한다는 점, 셋째, 당사자들의 욕구를 무시하고 의료적 조건만으로 판단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래서 종합판정을 통해 서비스 판정 방식을 바꾸고, 등급을 장애정도라고 용어를 변경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장애인복지 예산이 전혀 늘어나지 않고 오히려 축소되어 서비스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종합판정을 통한 판정 비용이 늘어나 복지 예산의 상당수가 절차비용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자체를 판정창구로 활용하지만 공단을 중심에 둠으로써 판정하는 자와 판정 받는 자의 구분은 변함이 없다. 공단이 통합창구로서 오히려 그 권력은 강화된다. 왜 지금도 공단인지 당위성은 전혀 언급이 없다.

국가 경제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내세운 모든 정책들은 사실상 명분으로 추진과정에서의 특정인들의 축제 수단에 불과하였다. 그래서 경제를 살려야 하는 정부는 오히려 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려 버렸다. 경제를 위해 올인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차기 정부에서 장애인들에게 월산대군의 시조처럼 무심한 달빛만 담고 빈 배를 저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신세로 만들지는 않는지 심히 걱정이 된다.

장애인의 복지라는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 등급제 폐지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그래도 차선은 되지 않느냐고 한다면, 빈 배를 저어도 풍류는 좋다는 해석이 될 것이다. 장애인의 권리가 경제논리에 묵살되는 찬 물결이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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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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