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가 마주 보는 그림 ⓒ 최선영

시끌벅적 교실 안은 여느 때 보다 소란스러운 소녀들의 재잘거림으로 술렁입니다. 뚜벅뚜벅 점점 가까워지는 발걸음도 듣지 못한 채 소녀들은 거울을 꺼내들고 머리를 다듬으며 즐거운 재잘거림을 이어갑니다.

일상의 지루함에서 비켜난 소녀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하나 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드르륵~” 교실 문이 열리자 그제야 소녀들은 후다닥 선생님을 맞을 준비를 합니다. 소녀들의 시선은 담임선생님 뒤를 따라 들어오는 청년을 향합니다.

잘생긴 교생선생님 ⓒ 최선영

“와-”

소녀들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표현들로 담임선생님과 그 청년은 미소를 짓습니다.

“너무 잘생기셨어요~”

한 소녀가 첫인상을 그렇게 정의 내립니다.

“나 말이야?”

담임선생님의 말에 소녀들은 손사래를 저으며 꺄르르 웃어넘깁니다. 그렇게 2학년 3반의 소녀들은 교생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 속에 들어 있는 특별한 의미를 모른 채 그들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교생선생님은 많은 소녀들 중 지은이라는 이름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소녀가 불편한 다리를 가진 지체장애인 이여서 더 눈여겨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소녀들 틈에 묻혀 있어도 드러나는 외모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분명 다른데 같은 느낌을 주는 그 소녀의 당당함이 선생님은 좋았습니다. 그 소녀의 미소는 선생님의 어두웠던 마음을 밝혀주었습니다.

지은이를 바라보는 교생선생님 ⓒ 최선영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며 조르던 소녀들에게 선생님은 첫사랑 대신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얘들아~내게 누나가 있는데... 그 누나는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야”

교실 안은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너무 조용해서 서로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소녀들의 시선은 어느새 조심스레 지은이라는 소녀를 향합니다. 지은이는 담담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적막과 어색함이 가득한 분위기에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이야기를 합니다.

“누나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가 불편해졌는데 누나를 위해 가방도 들어줘야 했고 누나를 위해 뭐든 다 양보해야 했어 어릴 때는 그게 싫었고 친구들 보기에 조금 창피하기도 했었어”

선생님은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시다 조금은 울컥해진 표정으로 지은이를 바라보셨습니다.

“누나랑 몇 살 차이신데요?”

선생님이 말을 더 잇기 전에 지은이가 질문을 던집니다.

“어~ 5살 차이”

선생님은 그게 왜 궁금할까? 란 생각을 하며 얼른 대답해 주었습니다. 선생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지은이가 서둘러 말을 잇습니다.

“저도 남동생이 있어요. 4살 차이인데 이 녀석이 어찌나 누나 말을 안 듣는지 맨날 빛자루로 두들겨 패주고 있어요”

지은이의 말에 선생님과 소녀들은 함께 웃으며 어색함을 풀어버렸습니다. 선생님은 그런 지은이의 씩씩함을 보며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늘 힘들어했던 누나 생각이 나서 마음이 더 아팠다는 이야기와 함께 누나 때문에 마음이 많이 멍 들었는데 이곳에 와서 지은이를 보며 치료받는 느낌이라는 선생님의 깊은 이야기들을 편안하게 들려주었습니다.

선생님과 지은이 그리고 같은 반 소녀들은 그 날 이후 더 많은 속마음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으며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했습니다.

그렇게도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학교가 가고 싶어 안달하고 머리도 감지 않고 눈 비비며 가던 학교를 새벽부터 일어나 꽃단장을 하고 가는 곳으로 바뀐 것은 선생님과 보내는 시간들 때문이었겠지요.

영원히 함께 할 것 같았던 시간은 너무도 빨리 끝나고 선생님은 소녀들 곁을 떠나 다시 선생님의 학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지은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지은아 선생님이 군대 갔다 복학하면 지은이가 선생님 다니는 학교에 와 있으면 좋겠다”

선생님은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지은이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선생님 ⓒ 최선영

지은이는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에 담긴 의미를 마음에 담았습니다.

2년 후

지은이는 선생님이 다니던 대학에 들어가 선생님이 남긴 마지막 인사를 마음에서 살포시 꺼내보았습니다.

“선생님… 저 여기 왔어요…”

지은이의 밝고 아름다운 모습에 관심을 보이고 좋아해 주는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들고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집에 바래다주고 집 앞에서 기다리다 함께 학교를 가기도 하고 그렇게 그림자처럼 그 남학생은 지은이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지은이와 그 남학생을 아는 모든 친구들은 그들이 사귀고 있다고 생각을 할 만큼 그 남학생은 지은이에게 좋은 친구였습니다. 지은이는 그 남학생을 밀어내려 했지만 친구라는 자리에라도 머물게 해달라는 남학생의 바람마저 거절할 수가 없어 그렇게 함께 했습니다.

선생님은 지은이와 함께 교정을 밟기 위해 졸업 후 군대 가려던 계획을 앞당겨 군대를 갔었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지은이에게 남긴 그 마지막 인사의 의미를 제발 지은이가 알아주기를 바라면서…

지은이를 좋아하는 남학생과 웃고 있는 지은이 ⓒ 최선영

지은이 옆에 있는 남학생의 존재는 생각보다 컸나 봅니다. 선생님은 지은이 앞에 결국 나서지 못하고 함께 있는 둘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만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무척이나 괴로웠습니다. 장애를 가진 누나와 살았기에 누구보다 지은이를 이해해주며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고 다른 사람 옆에 있는 지은이가 야속하고 그때는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던 선생님과 학생의 신분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렇게 멀리서 지켜보다 지은이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 사람 옆에 있는 것을 지은이는 더 행복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선생님은 지은이의 곁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지은이가 보지 못하도록 꽁꽁 숨어버렸습니다.

눈물 흘리며 멀리서 지은이를 지켜보다 떠나는 선생님 ⓒ 최선영

5년 후

길을 걷다 말고 한 여자가 소리칩니다.

“어머~선생님~~~”

2학년 3반 그 교실에 있던 소녀들 중 한 명이 이제는 숙녀가 되어 선생님을 알아봅니다. 반가운 마음에 차를 마시며 여러 안부를 주고받습니다. 그러다 지은이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렇게도 좋아해 주는 남자가 있는데 지은이는 결국 청혼을 거절했어요.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서… 대체 누굴 기다리는지…“

선생님은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떨어뜨렸습니다. 앞에 나서보지도 못 했던 자신의 얕은 사랑이 부끄러웠고, 너무 늦지 않게 지은이 소식을 듣게 된 것이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과 지은이는 많은 2학년 3반 친구들의 축하 속에 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인사의 의미를 이제야 모든 친구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과 지은의 결혼식 장면 ⓒ 최선영

선생님과 지은이는 신혼처럼 알콩달콩 꿀단지 하나를 안고 사는 듯 달달거리며 보는 사람들을 오글오글하게 만들며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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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영 칼럼리스트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근무하다 미술학원을 운영하였다. 현재는 네이버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며 핸드메이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할 수 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동화형식으로 재구성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언어로 담아 내려고한다. 동화를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이해하는 시선의 폭이 넓어져 보이지 않는 편견의 문턱이 낮아지고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는 어우러짐의 작은 역할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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