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해보다도 ‘다사다난’했던 한해가 지나갔다. 인생은 고통과 슬픔의 파도가 몰아치는 먼 항해 길이라고 하는데 2016년은 1년이 100년 같이 마치 ‘한 사람의 한 생애’가 모두 다 지나간 듯하다.

어제보다 더 경악할 만한 소식이 하루 지나면 또 드러나고, 그것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덧 가슴이 한 맺힌 돌덩이가 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애인복지 현장에서도 충격적인 일들이 발생했다.

반복되는 시설 내 인권침해 사건이다. 특히 거주시설에서 자행되는 생활인에 대한 강제노동, 폭행, 보호의무 소홀, 급식비리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설 종사자들이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근데 좀 억울하다. 종사자들의 사기는 무척 저하되고 솔직히 절망케 된다. 지역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중증의 장애인들을 보호하는 장애인 거주시설(2014년 12월 현재 전국적으로 1,457개소)에서 일하는 사회복지 종사자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와 과도한 업무량을 보면 과연 그들만을 비난할 수 있을까?

세상은 장애인의 인권침해 문제 그 자체만을 보고 종사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아예 또 다른 일각에서는 거주시설을 없애고 지역사회와 가정에 장애인들을 통합시키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도 단정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물론 탈 시설과 사회통합은 하루빨리 달성되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장애인 거주시설을 지금 당장은 없앨 수 없고, 오히려 부족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한 예로 2010년에 발표된 김용득과 송남영, 장기성의 연구에 의하면 장애인 거주시설 이용을 희망하지만 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장애인 수가 107,150명으로 추정되었다. 이는 여전히 장애인 거주시설의 확충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시사해준다.

당연히 장애인은 가정에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스스로의 주체적 결정에 따른 자립적 생활을 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가정에서 생활할 수 없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거주시설에 대한 욕구는 날로 커져가고 있고, 시설마다 대기자 명단이 줄을 잇고 있다.

장애인복지 정책은 소규모 형태로 거주시설이 전환되게끔 이미 그 방향이 설정되어 있으나 기준을 개선하거나 기존 시설을 재보수하는 재정지원과 인력 확충을 위한 예산 편성 등은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장애인 거주시설에서의 1인당 생활공간은 3.3제곱미터, 즉 1평에 불과하며 최대 8명의 이용인이 함께 생활한다. 놀랍게도 3.3제곱미터에는 가구를 설치하는 공간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생활공간 면적은 3.3제곱미터보다 작다.

뿐만 아니라 거주시설의 경우 노동자의 권리인 유급휴일과 연차휴가 등 소정의 휴가를 사용할 경우 1명의 종사자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장애인은 30명에 달한다.

더욱이 장애인 거주시설을 이용하는 장애인들 가운데에 2개 이상의 중복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나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 정신장애를 동반하거나 심각한 문제행동을 표출하는 경우에도 부가적인 지원이나 제도적 고려 등은 일체 없다.

거의 매일 24시간 최소 4명에서 최대 7명의 중증 장애인들과 살아야 한다. 그나마 상황이 좀 낫다는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의 경우에는 1명의 종사자가 4명의 장애인에게 24시간, 365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가혹한 노동에 비해 거주시설 종사자의 인건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창피해서 공개하지 않으려 한다. 한편, 거주시설 운영자는 종사자에게 연간 120일 이상의 휴무와 휴가를 보장해야 하며 거주시설 서비스의 특성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야간근로와 연장근로에 따른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장애인 거주시설은 정부로부터 충분한 수준의 연장근로수당과 야간근로수당 지급을 위한 보조금을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재를 털어 시설을 설립하고 헌신적으로 경영해 왔던 시설 운영자에게만 모든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아울러 거주시설 종사자들에게 봉사와 희생이라는 명분으로 부당한 노동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따라서 장애인들의 대안적 주거에 대한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혁신적인 장애인 거주시설의 확충이 요구된다.

아울러 시설 구조와 설비 기준도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시설 경영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하고, 종사자들의 처우도 크게 향상시켜야 한다.

예산이 없다고! 또 예산 타령을 한다면, 이참에 ‘K 무슨 재단’인가 하는 데에 들어간 돈을 몰수해서 우선 급한 대로 거주시설과 종사자들에게 돌려주면 어떨까? 타락한 방법으로 쌓은 나쁜 돈들을 국가가 환수해서 선한 사업으로 되돌려주는 일환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을 전면적으로 리모델링하는 예산으로 바꾸는 것도 좋지 않을까?

아무리 어려워도 거주시설과 그 속에서 생활하는 장애 당사자들 그리고 종사자들의 복지를 위한 예산 확충은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 당연히 예산을 잘 쓰고 있는지, 권리 중심적인 서비스개입 실천이 수행되는지 등을 철저하게 관리 감독하는 것은 기본이다.

※칼럼니스트 이준우님은 현재 RI KOREA 조사와홍보 분과 위원이며, 강남대학교 사회복지전문대학원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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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 KOREA(한국장애인재활협회 전문위원회)'는 국내·외 장애 정책과 현안에 대한 공유와 대응을 위해 1999년 결성됐다. 현재 10개 분과와 2개의 특별위원회가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인천전략 이행, 복지 사각지대 해소 등 국내외 현안에 관한 내용을 칼럼에 담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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