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여! 할 수만 있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벌써 두 번째 엄마참여수업이건만, 수업 일주일 전부터 나는 이미 십자가를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 드리던 예수님의 심정이 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거리 레슨을 다녀야 했던 나는, 지하철로 이동하는 그 긴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 위해 읽고 싶을 때면 언제든 당당하게 점자 책을 폈고, 심지어 급할 때는 점자판도 꺼내 놓고 숙제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렸을 때부터 당돌할 정도로 남달리 높은 자존감을 장착하고 살아왔던 나임에도 불구하고, 자식 일에는 역시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내가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인지와 상관 없이, 학부모참여수업에서의 나는 그저 많은 평범한 엄마들 사이에서 자기 신발 하나도 찾기 힘들어 어리버리하고, 똑같은 원복을 입은 아이들 사이에서 내 아이를 찾을 수 없어 어리버리하는, 튀어도 너무 튀는 결핍을 가진 비범한(?) 엄마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처음 엄마참여수업에 참여해야 했을 때, 수 많은 고민과 갈등 앞에 마주했다. ⓒ은진슬

처음 엄마참여수업에 참여해야 하며, 유치원에서는 어떤 어떤 프로그램이 진행될 것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장애부모들은 어떤 갈등과 마주치게 될까?

아마도, 내가 참여해야 하나, 아니면 나 대신 과제 수행이 좀 더 용의한 성능 좋은 부양육자 등을 파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 것이다.

나 역시 작년에 초보학부모로서 청사초롱을 만들고, 쌀떡을 뜯어 콩고물에 굴려 간단한 인절미 떡을 만들며, 딱지치기 등의 간단한 전통놀이를 함께 하는 걸로 구성된 유치원 엄마참여수업 내용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야말로 엄청난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무척 흥미로운 프로그램이겠으나,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함께 하기에는 너무 액티브하다!)

며칠 고민 끝에 조심스레 당시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고, 아래와 같은 질문을 드렸다.

‘제 시력으로는 이 정도의 미술활동이나 신체놀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이의 활동을 거의 도울 수 없는 제 입장에서는 여러 엄마들 사이에서 좀 불편하고 자괴감도 느껴질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아이와 함께 하는 수업에 일정 부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으니 아이에게 괜찮을지 걱정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참여하는 것이 나을까요, 아니면 수업활동을 돕기 용의한 부양육자가 참여하는 것이 나을까요?’

당시 담임선생님께서는 의외로 많이 고민하지도 않으시고 이렇게 답변하셨다.

‘어머님 입장에서는 어려움도 있으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응이에게는 우리 엄마가 와 준다는 것, 참여한다는 것이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엄마참여수업에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저희 부담임선생님께 말씀 드려 적절히 돕도록 하겠습니다.’

자르고 붙이는 미술활동과, 몸으로 해야 하는 게임활동 앞에서 시각장애엄마인 나는 한 없이 무력해졌다. ⓒ은진슬

솔직히, 다섯 살 아이와 가위로 자르고 색칠하여 붙이는 미술활동, 그것도 다섯 살 아이 수준에는 너무 난이도가 높았던 청사초롱을 만드는 것, 몸으로 뛰는 게임활동 앞에서 시각장애엄마인 나는 당연히 한없이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말로 아이와 상호작용하는 일 외에는 도울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어 오히려 내 아이와 알고 지내던 옆 자리 엄마와 아이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뜻 밖의 여유 아닌 여유를 가질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당시 놀라웠던 건, 다른 아이들은 거의 스스로 하지 못하는 제법 고난도의 가위질을 내 아이는 스스로 하고 있더라는 것이었다. 당연하다. 어차피 엄마가 못 도와주니 집에서도 이런 미술활동은 늘 혼자 했으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게임을 할 때는, 딱지가 보이지 않아 쭈뼛거리고 있는 나를 아이가 잡아 끌고 다니며 열심히 게임을 했다. 그렇다. 다행히(?) 이응이는 어린 시절의 나보다 더 강한 강철 멘탈, 더 높은 자존감 모듈을 장착한 아이였던 것이다.

작년에는 이렇게 허둥지둥, 우왕좌왕, 좌충우돌 어리버리 엄마참여수업을 치르고는 씁쓸한 자괴감에 그 일을 반추하며 후기 쓸 마음도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순간, 학교나 유치원에서 진행하는 학부모참여수업 문제로 고민하는 장애부모들이 있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비록, 당신에게 한없는 무력감과 자괴감이 따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그 시간, 그 자리에 아이 곁에 있어 주라고. 특히, 아이가 어린 경우,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불편하고 자괴감이 느껴져 힘든 건 엄마 마음일 뿐, 우리 아이들은 그런 엄마라도 곁에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하던 당신, 이제 학부모수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는가?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장애부모의 학부모참여수업 실전대비 팁을 공유해 보기로 한다.

1. 최소한 학부모참여수업 일주일 전쯤에는 어떤 형태의 수업이 이루어질지, 내 장애에 따라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을 담임선생님과 충분히 소통하며 사전 체크한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이러이러한 점이 불편하니 이렇게 이렇게 도와달라거나,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하겠다고 담임선생님께 연락하는 게 결코 편하지는 않다. 하지만, 경험해보건대, 이 단추부터 제대로 잘 끼워야만 성공적인 임무완수가 가능하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청사초롱을 만드는 미술활동 시 내가 아이를 도울 수 없으므로 수업할 때 보조교사의 도움을 미리 요청해 두는 것 등을 사전에 협의해 두는 것이다.

2. 참여수업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활동 중, 내 장애로 즉석에서 할 수 없지만 미리 준비하여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은 사전에 준비해서 참여하도록 한다.

올해 수업의 경우, 아이가 엄마에게 감사한 점을 미리 적어 달아 놓은 감사나무에 나도 즉석에서 답글 메모를 달아 주어야 했었는데, 미리 체크했기에 즉석에서는 글씨를 쓸 수 없는 내가 PPT로 아이에게 감사한 점을 미리 예쁘게 만들어 가져갈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사전에라도 최선을 다해 준비하는 것이 내 아이의 엄마로서의 예의이자 수업에 대한 매너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선생님께 즉석에서 적어 달라고 하면 적어 주시겠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도 선생님들은 수업 운영 때문에 많이 바쁘시기에, 이런 상황을 미리 배려하고 준비하면, 비록 장애가 있지만 개념탑재 센스 맘으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다.

3. 참여수업 프로그램 중,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활동의 경우, 미리 솔직하게 오픈하여 아이의 이해를 구하고, 그 부분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알려준다.

이 역시 껄끄럽고 불편하며,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을 수반하는 과정임에는 틀림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조금 다르고 낯설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아이 마음을 미리 준비시키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들에 미안하고 마음 아파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아주 슬프고 미안하고 무겁고 구질구질하게 할 필요는 없다. 그저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하지만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된다.

‘이번 엄마참여수업에서 청사초롱을 만든다는데, 아무래도 엄마는 잘 보이지 않아서 색칠을 하거나 가위질을 하는 걸 도와줄 수 없을 것 같아. 솔직히 그런 건 엄마보다 이응이가 훨씬 더 잘 하잖아? 아마 엄마가 도와주지 않아도 이응이가 잘 해낼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혹시 혼자 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걱정하지 마. 부담임선생님께서 도와주실 거니까. 괜찮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4. 엄마가 일일 교사 등으로 참여하게 되는 수업의 경우, 무조건 내가 할 수 없다고 규정짓기 보다는 내 장애유형과 수업의 형태에 맞게 내가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찾아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다.

학부모참여수업 중, 부모에게 일일 교사 역할을 하게 하여 진행하는 수업이 종종 있다. 이럴 때, 나는 드러나는 게 싫다고, 안 보여서, 휠체어를 타고 있어서 뭘 하기가 불편하다고 안 된다는 생각만 하지 말자. 교사와 수업의 주제전개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내 장애 특성에 맞게 어떤 방법으로 변형된 수업을 해볼 수 있을지 적극적으로 의논하며 참여하려 노력한다.

동물에 관한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는 수업에서 안내견을 사용하는 엄마라면, 안내견에 대해 소개하고 에티켓도 가르쳐줄 수 있을 것이다.

엄마가 책을 읽어주는 형태의 수업이라면, 점자동화책을 가져가서 읽어주며 점자에 대해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자는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너는 점자가 빠르니까 고려해볼 수 있지만, 자기는 점자도 너무 느려서 안 된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점자가 느려서 그조차 어렵다면 외워서 동화구연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뭐라도 하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엄마의 자세다. 엄마가 노력하면 아이도 자랑스러워하며 좋아한다.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엄마의 장애를 불편해 하며 부끄러워하는 아이 뒤에는 자신의 장애를 불편해 하며 부끄러워하는 엄마가 있다는 걸 기억하자. 장애부모의 비장애자녀들이 장애에 대한 관점을 가장 처음 배우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외부세계가 아닌 부모의 장애관으로부터이기 때문이다.

5. 수업 당일 날에는 자리에 맞는 깔끔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하도록 한다.

장애, 비장애를 막론하고 이 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스타일로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야 하는가의 문제는 모든 엄마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여러 학부모 모임에서의 관찰 결과, 세미정장 내지는 오피스룩 정도의 단정하한 옷차림에 과하지 않은 포인트 액세서리를 착용하는 정도면 무난하지 않을까 싶다. 슬랙스에 깔끔한 흰색이나 블루 계열의 셔츠를 매칭하고 트렌치코트를 입거나, 착용감이 편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느낌의 오페라원피스에 단정한 니트 카디건 내지는 정장 재킷을 매칭하는 정도면 어떨까 제안해 본다.

패션 감각도 별로 없는 내가 굳이 지면에 이런 예시까지 쓰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 시각장애 엄마들의 경우, 패션에 대한 시각적 자극을 받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참고가 될까 싶어서이다. 절대 내 말이 진리도, 원칙도 아니라는 점을 밝혀 둔다. 중요한 건, 너무 과한 것도 문제지만,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장애맘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 함양을 위해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6. 참여수업을 위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갔을 때, 될 수 있으면 내가 먼저 인사하려고 노력한다.

시각장애인인 내 입장에서 이 부분은 참 어렵다. 상대가 먼저 아는 척을 하기 전에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관계 맺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왜냐하면,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엄마들이 초면에 적극적으로 인사하는 게 서로 쉽지 않기도 하려니와 비장애엄마들은 평생에 마주쳐 봤을 일이 거의 없을 장애를 가진 엄마가 낯설고 조심스러워서 먼저 인사하는 걸 어려워하거나 꺼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어 목소리를 익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면 우리가 먼저 인사하는 수 밖에…하지만, 이것도 아이컨텍이 안 되는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자칫 상황 파악을 잘 못해 대화 중에 끼어든다거나 분위기를 깨는 실수를 할 수 있어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그러니, 이 칼럼을 읽는 학부모님들만큼은, 학교나 유치원에서 장애를 가진 엄마, 아빠를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이 어지간하게 비호감이 아닌 한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터놓은 절친맘이 있는 게 아니라면, 유치원에서 도움 받을 일들은, 주변의 교사들이나 직원들을 통해 해결하기를 추천한다. 아무래도 모두 자신의 아이를 케어 해야 하고, 사진도 찍어야 하기 때문에, 경험상 그렇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써 놓고 보니, 지나치게 진지하고 생각이 많아 먹고 싶은 것도 많은 내가 너무 많은 내용을 쏟아 놓아, 오히려 엄마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건 아닌가 싶다. 그래도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조심스럽고 불편한 건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선배맘으로서 그 마음을 어루만지고 실용적인 팁도 주고 싶은 마음에 글이 난해하고 길어진 점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자! 이제 준비되었는가?

비록 예수님의 피하고 싶은 잔과 같은 학부모참여수업이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용기와 까칠한 선배맘의 팁과 함께 당신의 건투를 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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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슬 칼럼리스트 세상이 너무 궁금했던 나머지 7개월 만에 급하게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바람에 시각장애와 평생의 불편한(?) 친구 사이가 되었습니다. 언어로 연주하고, 음악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20년 정도 피아노와 뜨거운 사랑을 했지만 첫사랑은 대게 이루어지지 않듯 그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매던 끝에 지금은 장애, 음악, 보조공학 등에 관련된 글을 쓰고 번역도 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학교, 기업체 등에 찾아가 장애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 역할도 하고 있지요. 가끔은 강의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피아노 앞에 앉기도 한답니다. 다섯 살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저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에서는 장애와 다름이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글을 쓰고, 강의를 하며, 연주도 하고 있습니다. 눈이 나쁜 대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더 예민하고, 커피와 독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다섯살 아이 엄마가 들려 드리는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아이 키우는 이야기 한 번 들어 보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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