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토요일 오후, 꿈꾸는 마을 (사)영종예술단이 주최하고 수도권 자폐성장애 자조집단인 Estas의 주관으로 ‘네덜란드와 한국의 자폐인 이야기’라는 제목의 긴급토론회가 여의도 이룸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자폐인 현실을 말하는 자리라 먼저 자폐가 있는 터키계 네덜란드 여성인 비르센 바샤르(Birsen Basar)씨가 네덜란드 자폐인의 현실에 대해 말했다. 이 분은 네덜란드의 브레다 시청의 한 부서에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이어서 Estas의 윤은호 조정자가 한국 자폐인의 현실을 알렸다, 토론회 후반에는 Estas의 장지용 회원이 자폐인을 포함한 장애인과 청년의 열악한 고용현실 및 이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

네덜란드 자폐인의 현실에 대해 비르센 바사르씨가 말했던 것을 통역자가 통역하는 모습 ⓒ이원무

한국의 자폐인 현실에 대해 수도권 자폐성장애 자조집단인 Estas의 윤은호 조정자가 발표하는 모습 ⓒ이원무

필자는 Estas 회원으로 긴급토론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듣고 배우고 질문하고 느꼈던 것들을 나누고 싶다.

비르센 바샤르 씨는 네덜란드 자폐인의 수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예전에 17세 이전 장애가 발생한 장애 어린이들은 달마다 최고 900유로(약 110만원 수준)의 정부지원금인 와용(Wayong)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자폐인들이 와용을 받았는데 네덜란드 경제가 어려워지는 바람에 와용은 감축되고, 이에 따라 중증의 장애가 있는 사람들만 17세 이후에도 와용이라는 보조금(현재 850유로로 줄어듦)을 수급 받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경증의 자폐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나 장애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들, 그리고 비장애인의 경우에는 17세 이후에는 와용이 끊기고 직장을 찾게끔 정부에서 유도를 한다고 한다. 17세 이후 직장이 없는 경우에는 사회서비스 대출로 매월 850유로를 받는다고 한다. 만약 직장을 구한다고 해도 사회서비스 대출금은 안 갚아도 된다고 한다.

우리 발달장애인들은 직장이 없을 시 소득이라고 하면 고작 장애인연금, 기초생활수급비인데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칠 정도로 액수가 너무 작다. 부양의무자가 최소한의 돈이라도 있으면 부양의무제로 인해 자폐성 장애인 등의 발달장애인의 생계를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 이런 상태에서 인간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그저 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네덜란드의 현실을 듣고 이후 다시 생각해보았다. 직장이 없는 경우에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준다고 하니 네덜란드 정부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요즘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들을 개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우리 정부관료들의 모습까지 생각하니 네덜란드 정부와 국민들이 참 부러웠다.

하지만 부러운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등의 모든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인간다운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도록 정부에게 근거를 대며 충분한 소득보장을 요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또한 네덜란드에서는 자폐성 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고용하는 사람이 자폐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고용해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그 이유란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자폐성 장애를 업무능력의 부재라는 이유로 고용을 꺼리는 현실로 자폐인에게는 고용차별이 상당히 심각하다. 네덜란드나 우리나라나 자폐인 고용문제는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며 전 세계적으로 자폐인 등의 발달장애인 고용문제에 대해 같이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편 필자는 네덜란드에서의 자폐인 혐오발언(Hate Speech)은 어떤지 물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그 때 비르센 바샤르 씨는 ‘네덜란드는 사회가 자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에 자폐인은 살 가치가 없고 죽어야 한다는 식의 혐오발언은 거의 없다.’고 대답했다.

나중에 한국자폐인사랑협회의 남영 운영위원이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만큼 네덜란드는 장애에 대해 이해하는 문화가 성숙한 거예요.’

이 말을 들으며 장애인 당사자가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기회를 꾸준히 가지고 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치관, 생각도 길들여진 게 있으면 한 순간에 바뀌기 어려운데 장애에 대한 부정적 생각에 길들여진 사람의 생각을 바로 바꾸는 게 쉽겠는가 말이다. 우리 사회도 장애 이해 문화가 성숙해지도록 내 자신부터 책임을 다하며 살아야겠다.

비르센 바샤르 씨의 발표가 끝난 후, 윤은호 조정자가 영화 <말아톤>으로 인해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인식도도 높아진 건 아니라며 한국 자폐인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예로 자폐성 장애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을 젊은 남성 누리꾼들이 인터넷에서 놀리는 행위가 늘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전했다. 인터넷 상의 언어적 폭력은 자폐성 장애인들에게 상당히 우려스러운 거지만 장차법 처벌 대상에는 제외되어 있어 이런 폭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거나 개선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장차법 상의 처벌대상에 인터넷이나 모바일 상의 언어적 폭력을 추가하도록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정부에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고 느꼈다. 아울러 언어적 폭력을 가한 가해자에게 강력한 처벌이 내려지도록 장차법의 악의성 요건도 네 개 중 하나만 충족하게 하고, 법에 징벌적 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저녁식사 후 한국의 자폐인 현실에 대해 Estas의 윤은호 조정자가 인터뷰하는 모습 ⓒ이원무

긴급토론회가 끝난 이후에는 이룸센터 근처의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며 서로의 일상생활에 대해 질문하고 답했다. 식사가 끝난 이후에는 비르센 바샤르 씨가 한국 자폐인의 현실이라는 주제로 Estas회원들과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해 회원들이 치킨 집에서 간단하게 인터뷰했다. 인터뷰를 끝으로 서로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하며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나로서는 네덜란드의 자폐인 현실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나와 같은 장애가 있는 네덜란드 사람을 알게 되어 좋았다. 그리고 Estas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친목을 다질 수 있으니 행복했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를 보며 내가 말하고 싶은 마지막 한 가지가 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없이 당사자가 주체, 주인이 되어 열린 긴급토론회였다는 것이다.

비르센 바샤르 씨가 모바일 상으로 Estas의 윤은호 조정자에게 한국의 자폐성 장애인을 만나서 자폐인의 현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한다. 윤은호 조정자를 비롯한 우리 Estas회원들도 열악한 한국 자폐인의 현실을 말할 필요성을 느껴 비르센 바샤르 씨와 만나는 자리를 갖자는 것에 회원 전원이 자발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조정자는 긴급토론회를 가질 장소와 저녁을 먹을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꿈꾸는 마을 정창교 대표가 이룸센터 장소 제공을, 자폐인 사랑협회의 남영 운영위원은 저녁식사 비용지원을 일체 하는 것으로 조정자를 지원했다고 한다.

발달장애인의 당사자활동에 있어 당사자가 주체, 주인이고 지원자는 당사자를 지원하는 역할에 그쳐야 하는 게 원칙이다. 그런데 당사자활동이더라도 부모 등 주변사람들 의지와 생각이 중심이 되어 발달장애인이 활동한다면 그건 참된 의미에서의 당사자활동이 아니다. 그 경우 발달장애인은 주체가 아니라 부모 등 주변사람의 꼭두각시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토론회가 나에게는 당사자 활동은 이래야 한다는 것을 보게 된 소중한 기회였다고 본다. 당사자가 주체가 된 당사자 활동이 많아져 발달장애인들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고 당당하게 요구하며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게 현실이 되길 필자는 바란다.

이번 긴급토론회를 위해 수고한 Estas의 윤은호 조정자, 우리 자조집단을 위해 네덜란드에서 한국까지 날아와 함께 시간을 보낸 비르센 바샤르 씨와 그녀의 남자친구, 그리고 긴급토론회의 원활한 진행을 지원해준 정창교 대표와 자폐인사랑협회의 남영 운영위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앞으로 이런 자리가 자주 만들어져 진정한 의미의 발달장애인 당사자활동이 우리나라에 뿌리내려지는 그 날까지 필자도 함께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국회의사당역에서 필자(왼쪽), 비르센 바르샤(가운데), Estas의 장지용 회원(오른쪽) ⓒ이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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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팝송 감상, 월드컵 등을 즐기고 건강정보에 관심이 많은 반백년 청년이자, 자폐성장애인 자조모임 estas 회원이다. 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 정책연구팀 간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정부심의 대응을 위해 민간대표단의 일원으로 2번 심의를 참관한 경험이 있다. 칼럼에서는 자폐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하고, 장애인권리협약, 장차법과 관련해 지적장애인, 자폐성장애인과 그 가족이 처한 현실, 장애인의 건강권과 교육권, 접근권 등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나눌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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