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지적장애인의 빈소. ⓒ서인환

지적장애인들은 늘 웃음을 얼굴에 띠고 살아가니 행복한 것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적장애인 모임에 자원봉사자로 가게 된 어떤 사람이 장애인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면 그들에게 위로가 될까 밤새도록 고민하다가 막상 지적장애인들을 만나보니 순수하고 맑은 얼굴에 오히려 위안을 받은 것은 자신이었다고 말했다.

어떤 지적장애인을 위해 일하고 있는 사람은 지적장애인들은 자신의 불행조차도 모르는 천사라고 말하기도 하고, 자신의 힘든 상황이나 처지, 자신의 불행조차도 모르고 살아가니 얼마나 행복하냐고도 말했다. 가족들은 힘이 들지만 지적장애인 자신은 전혀 불행하지 않다는 말이었다.

지적장애인들은 약삭빠르고 계산에 밝고, 힘을 가진 낯설은 비장애인들을 대할 때에 미소를 지나칠 정도로 띠는데, 이는 자신의 불행을 몰라서가 아니라 언어나 행동으로 의사소통하기에 부족하다고 스스로 느껴 자신을 호감으로 대해달라는 일종의 언어일 수 있다.

굳이 소통을 하고 싶은 자신은 없다고 하더라도 경계를 풀고 있으니 자신에게 적대적으로는 대하지 말아 달라는 의미에서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이다. 몹시 경계가 되는 사람들 앞에서 경계를 풀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자신을 방어하려는 표현일 수 있다. 웃음 뒤에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들어 있다. 웃음은 그냥 만능어인 것이다.

어릴 적부터 도대체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 사람인지 구분도 어렵고,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판단하기도 어려워서 ‘그냥 웃지요.’를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태도에 대하여 사람들은 자신이 불행한 것조차 모르니 얼마나 행복하냐고 말한다. 여기에 살을 더 붙여서 천사라며, 세상의 더러운 것을 보지도 않고, 그러한 더러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하며 행복한 사람들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늘 불안하고, 늘 기가 죽어 있고, 늘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힘들어 하는 지적장애인들의 어려움, 그리고 무시되고 차별 받고, 이용당하는 지적장애인들의 입장에서 진정한 이웃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은 가지지 못하고, 일회성 봉사로 스스로 대단한 일을 했다며 자기만족에 사로잡혀 살아온 것은 아닐까?

2013년 2월 창원의 하모(지적장애인 1급, 60세)씨는 독신으로 노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었는데, 월세 5만원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살고 있었다. 텃밭에서 혼자 일을 하다가 삶을 비관하여 살충제를 마시고 자살을 하였는데, 경찰에서는 등산객이 발견하여 자살 당시의 상황은 알 수 없으나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한 것으로 단정지었다.

중증장애인으로서 60년 동안이나 잘 살았으니 세상은 그에게 행복을 준 것일까? 60년이나 살아보려고 노력했으나 결국 버티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세상은 그에게 잔인한 것이었을까?

그것은 해석의 차이로 사람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겠지만 지적장애인은 자신의 불행도 모르는 천사라는 말은 분명 잘못된 말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자신을 돌보고 지켜온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제 늙은 부모를 모시고 피보호자에서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시점에서 그러한 능력이 없고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그는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최근의 다른 지적장애인의 자살을 전하고자 한다. 최모(26세, 지적장애 3급)씨는 2016년 6월 24일 청주시내의 한 모텔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 최씨는 어릴 적부터 거주시설에 맡겨져 부모를 알지 못한다. 무연고자로서 세상에 의지할 사람이 전혀 없었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시설에서 구박을 받으며 자랐으나, 그 시설에서도 늘 따돌림을 당하고 늘 잘못을 저지르고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되어 ‘너 같은 놈’이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어야 했다.

세상에는 하지 말라는 말과 너는 못한다는 말과, 너 같은 사람은 사회에 폐를 끼친다는 말과 왜 사느냐는 말이 그가 하루 일과 중 가장 많이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최씨가 청소년이 되어 거주시설의 동일 법인이 운영하는 보호작업장에 들어갔으나, 이러한 말은 오히려 더욱 자주 들어야 했다. 사회복지사는 거주시설에서는 그래도 보호자였는데, 작업장에서는 명령자로서 더욱 무서운 얼굴이었다.

한 달에 10만원도 안 되는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해야 했고, 사적인 심부름도 기꺼이 해야 했으며, 외부 지역사회와는 더욱 더 차단되었다.

심지어 같은 법인 내의 시설종사자조차도 근접을 하지 못하도록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담과 눈에 보이는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부의 업무와 사정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입과 귀, 눈은 막고 살아야 했고, 오로지 노예처럼 맞고 일만 해야 했다.

잡일거리 주문이 들어와 야근을 해도, 일거리가 없어 업무와 무관한 심부름으로 하루를 내보내도 월급은 항상 10만원이 되지 않았다. 잔업이 많은 달은 잔업은 장애인들이 했지만, 잔업 수당으로 복지사나 시설장들은 몇 백만원씩 더 가져갈 수 있었으나 장애인들은 항상 고정된 급여를 받았다. 주주와 같은 복지사 그룹 직원과 장애인 당사자인 근로자는 신분이 너무나 달랐다. 작업장 원생은 모두 경계선급 지적장애인으로 생산성과 복종을 고려한 로마시대 노역장이었다.

기회를 잡아 S 식품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었으나, 그곳에서 동료들의 따돌림과 차별적 언행으로 도저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지긋지긋한 작업장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최 씨는 생의 마지막 3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많은 밤들을 보냈다. 그가 세운 생의 마지막 3일은 자립생활이었다. 자신에게 빛과 자유를 주고 자립생활을 해 보는 것이었다. 마지막 3일이라도 자립생활을 해 보고 싶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봉사였다. 세 살에 태어난 의미를 찾고 죽어야 억울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먼저 3일간 묵을 모텔을 예약했다. 그리고는 첫날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자신이 시설에서 다녔던 소풍장소 등 추억에 담을 만한 사람과 장소를 찾아다녔다. 일종의 작별인사를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이 자살을 하지 않고 더 살아야 하는 이유와 자신을 붙잡아 줄 사람을 찾아보았을지도 모른다.

둘째 날은 자신을 위해 조용히 생을 정리하고 자신을 생각하는 날로 정했다. 나의 생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왜 무연고자로서 세상에 혼자가 되었을까? 장애로 살아가는 것에 왜 사람들은 응원이나 지지를 해 주지 않고 이토록 괴롭히고 장난을 치는 것일까? 그들은 재미로 하는 장난이 장애인에게는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 그의 상처들을 스스로 어루만지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식사도 하지 않고 누워서 침잠하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가 마지막 하루로 남겨 둔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었다. 그런데 둘째 날이 되어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기고 나니 마지막 하루는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의미한 세상에 하루를 더 살면 무엇을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3일째를 자살의 날로 정한 것이 스스로 세상에 미련이 남아서는 아닐까 생각되었다. 이러다 보면 자살의 계획은 무산되고 또 세상에 미련을 가지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그는 둘째 날이 가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고 말았다.

그는 3일의 자립생활 기간을 정하면서 대학병원을 찾았으나, 병원에서는 정신과 약처방만 하고는 자살의 의도에 대하여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다. 자살을 암시하는 유사한 말을 흘렸으나 지적장애인은 자살도 못할 것이라고 무시되었다.

그는 평소 연예인을 사랑하고 음악을 좋아했다. 연예인을 우상으로 생각하며 꿈동산에 오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선망의 꿈을 가지면 살아볼 만한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예인의 감성적 목소리와 화려한 무대가 자신의 인생에도 오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그는 작업장에서 하나의 부속품으로 기계가 되어 소모품적 대우를 받으며 살아야 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적에게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처럼 그는 세상의 한 구성원이 아니라 적당히 항복할 수 없는 차별로 인한 적개심에 죽음으로 저항했으나, 세상은 밀물로 발자국을 지우듯 그의 이름조차 말끔히 지워버렸다.

* 최 씨의 마지막 3일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들로 재구성하였으며, 그의 심정을 이해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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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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